순수한 언어를 추구한 순수한 비평가
순수한 언어를 추구한 순수한 비평가
  • 김경민, 장민석 기자
  • 승인 2010.08.30 2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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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교수 인터뷰

 

▲ 사진 | 조상윤 기자 chu@
한국의 비평·번역에 큰 족적을 남기고 있는 황현산(문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내일(31일)부로 정년퇴임한다.

황현산 교수는 <말과 시간의 깊이>, <아폴리네르> 등 10여 권의 학술도서를 저술했다. 문예지 <작가세계>, <포에지> 등에서 주간으로 활동하며 100여 편의 비평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기욤 아폴리네르나 말라르메의 시와 같은 난해한 작품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번역할 수 있는 한국의 거의 유일한 불문학자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논문이나 저서보다는 삶의 방식에서 찾아야 한다. 황 교수는 가장 열정적으로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다루는 비평가 중 한명이다. 2006년, 황병승 시인의 <여장남자 시코쿠>를 해설한 비평<완전소중 시코쿠>는 늙지 않는 그의 시선을 잘 보여준다. 황 교수는 1987년도 이후 20여 년 동안 비평가로 활동하며 미당 서정주 논쟁 등 한국 문단의 여러 굴곡에서 주요한 관점을 제시했다. 한 비평가는 그를 두고 ‘순결함과 무한한 언어를 추구했던 비평가’라고 말했다.

지난 26일 인사동에서 그를 만났다. 황 교수는 현대사회가 소비문화에 묻혀가고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년퇴임을 하시는 감회가 어떤가요
공부하는 사람에게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학문을 한다는 것이 끊임없이 도전하고 싸워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선 퇴임 할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의무만 챙기며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아 기쁩니다.

퇴임강연에서 ‘요즘 시대에는 삶의 깊이가 부족하다’고 지적하셨는데
산업혁명 이후 모든 게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면서 현대 사회는 소비위주로 짜여 있습니다. 경쟁이 과열화되면서 눈앞에 있는 것만 보며 살게 됩니다. 깊이를 확보할 시간이 없어진 것이죠.

대학에서도 생산보다는 소비에 집중합니다. 가령 ‘문화콘텐츠’라는 학과가 있다고 할 때 어떻게 문화를 만들어 내느냐가 아니라 문화를 어떻게 소비하느냐를 주로 가르칩니다. 이런 현상은 농산물 가격이 올라도 농사꾼은 돈을 벌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문학을 다루는 학과 내에서도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학계가 소비적인 내용의 글이라도 깍듯하게 논문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면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문학잡지에 게재한 글이나 비평글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합니다. 한국 학계의 위선이라고 할 수 있죠. 교육당국에서도 형식을 갖추면 평가 해주지만, 번역은 기초자료로 생각해 평가를 안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근래의 한국 비평계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신인 비평가 현상공모를 보면 응모작의 90%가 자기 연령대의 작가를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는 문화적 산물이 전통을 만들어 갈 가능성을 낮추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헌책방이 몰락했습니다. 10여 년 전의 책을 잘 찾을 수 없어요. 문화가 그 자리에서 소비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젊은 비평가들이 자기와 같은 연령대의 작가에 몰두해 있는 것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전 세대 문학이 재생산되지 않아 사회에 문화적 내용이 쌓이지 않는 거죠.

비평의 질적인 면에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자기 연령대의 작가를 다루면 평가를 할 때 일정 거리를 두기 힘들기 때문이죠.

요즘은 인터넷에서 너도나도 비평이라며 문화에 관한 글을 올리고 있는데요
문화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런데 소비위주의 비평이 많아졌기 때문에 독자들이 혼란스러워 합니다. 비평이라면서 자기 의견은 없고 이런저런 의견을 끌어와 쓰고 버리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소비에 머물지 않고 문화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사회가 전체적으로 일을 좀 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는 일을 많이 하는 사회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지쳐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공부를 안 한다고 뭐라고 할 때, 저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좀 덜하라고 말합니다.

눈앞에 있는 일에만 신경 쓰지 말고 당장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라고 권해주고 싶습니다.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해 난리치기보다는 학점을 좀 덜 따더라도 다른 일을 많이 하라고 권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이런 현상을 학생들의 탓으로 돌리긴 어렵습니다. 올바로 살기 위해서는 심각한 자기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남에게 자기희생을 강요하긴 힘들고 그냥 그렇다고 말해둘 뿐이죠.

지금 자기희생을 감수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하자면
열심히 하라고 말해주고 싶고 스스로 귀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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