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에서 10분이 지났다. 저만치서 양승호 감독(사회학과 79학번)이 허겁지겁 약속장소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10분 늦은 걸 마치 1시간 늦은 것처럼 거듭 사과했다. 그에게서 한국 프로야구 팀 감독이 됐다는 위세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2007년부터 4년 동안 본교 야구부를 이끈 양 감독은 지난 달 21일부로 롯데 자이언츠의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양 감독이 본교 야구부를 맡은 4년 간 야구부는 최상의 위치를 유지해 왔다.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정기전에서 승리해 2년 연속 패배의 사슬을 끊었고, 4년간 본교 야구부는 정기전에서 2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양 감독이 전력 향상을 위해 선수들을 다그치기보다 선수들과 함께 어울린 덕분에 팀 분위기 역시 좋았다. 양 감독은 선수들이 운동과 동시에 학업과 대인관계에 신경 쓰도록 배려했다. 또한 선수들이 훈련장에 남자친구를 데려오면 5만원, 여자 친구를 데려오면 10만원을 준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지난달 25일 고대신문이 부산으로 떠나기 전 본교를 방문한 양승호 감독을 만났다. 양 감독은 “롯데는 강팀이어서 성적을 내기 좋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라며 자신감과 부담감이 교차하는 듯 입을 열었다.

 

Q. 롯데 구단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자마자 그날 바로 계약을 했는데
처음엔 한번 만나 보자고 전화가 왔어요. 형식적인 통화인줄 알았는데 다음 통화에서 감독으로 와달라는 얘기를 들었죠. 전화를 받고 ‘내가 그 정도 능력이 되는 사람인지’, ‘롯데의 연고지인 부산과 특별히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나를 선택한 거지’ 라는 생각을 하며 많이 고민했어요. 그 와중에 장병수 롯데 자이언츠 사장을 직접 만났죠. 제가 공격적인 야구를 즐기면서도 세심하고, 선수를 잘 파악하다는 점을 높이 샀다고 하더라고요. 그날 바로 계약하고 다음날 취임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Q. 롯데의 장점인 화려한 공격야구 대신 승리지향적인 스몰볼을 할까봐 걱정하는 팬들이 많다
그건 잘못 알려진 겁니다. 제가 말하려 했던 건 공격야구도 세심함을 겸비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현대 야구에선 무턱대고 공격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메이저리그도 9회에 주자가 3루에 있으면 번트를 대는 게 요즘 추세일 정도로 세심한 플레이가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Q. 프로와 아마추어를 지도하면서 느낀 차이점은
프로는 무조건 1등입니다. 하지만 아마추어는 대학 선수들이 졸업하고 전부 프로에 갈 수 없는 게 현실이죠. 대회성적에만 집착하기 보단 수업에 참여해 공부도 하고 친구도 사귀는 게 나아요. 본교 감독직을 맡을 때도 학교에 ‘다른 성적은 묻지 마십시오. 하지만 정기전만큼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대회에 신경을 쓸 순 없거든요. 작년 야구부 졸업생 28명 중 23명이 프로에, 나머지 6명은 지도자나 일반회사에 취직했어요. 결과적으로 제 판단이 나쁘지 않았죠.

Q. 야구부를 떠난다고 했을 때 선수들 반응은 어땠나
아직 직접 만나서 얘기는 못했습니다. 애들이 정기전이 끝나자마자 전국체전을 치른 탓에 이제야 휴식을 하고 있거든요. 대신 ‘오늘은 아쉽지만 앞으로의 만남이 더 중요하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감독님 배신입니다’, ‘우리 지금 공황상태입니다’라는 답장이 오더라고요.(웃음)

 

Q. 선수들과 있었던 일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작년 정기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3대 4로 지고 있다가 4대 4 동점 만들고 김상호가 안타를 쳐서 5대 4로 역전을 시켰죠. 제가 잘했다고 사인을 보냈더니 이 녀석이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려서 사인을 해주더라고요. 경기가 끝나고 상호한테 ‘감독님을 사랑한다니 고맙다’고 했더니 ‘감독님 위 관중석에 있던 여자 친구한테 한 겁니다’라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Q. 다시 모교로 돌아 올 생각은 없나
또 오면 선배들이 ‘너만 혼자 두 번 해먹냐’고 죽이려 할 겁니다. 다시 맡고 싶어도 좋은 후배들이 많으니 양보해야죠. 나중에 프로 감독직을 그만두면 중학교 감독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중학교는 야구 선수의 기본기가 갖춰지는 시기거든요. 한국 야구의 미래인 어린 선수들이 기초를 닦는데 도움을 주고 싶어요.

Q. 롯데 감독이 된 후 본교 선수들과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제가 야구부 감독이 돼서 직접 스카우트 한 김상호, 박세혁, 윤명준, 임치영 등이 내년에 4학년이 됩니다. 이 선수들이 매 정기전에서 주축이었고 사실 대학리그 최강멤버에요. 지금까지 해온 만큼 내년에도 열심히 해주면 롯데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겠죠. 내년 시즌을 잘 준비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제 공석이 된 본교 야구부 감독자리에 어떤 스타일의 감독이 오면 좋겠냐는 질문에 양 감독은 팀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코치가 감독이 되는 게 좋겠다며 조심스레 의중을 비췄다. 그는 그동안 야구부를 응원해 준 학생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 “4년 동안 모교 야구부 감독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이 야구부에 많이 신경을 써주고, 송추에도 자주 놀러와 줘서 항상 고마웠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기뻤던 순간도 있었고 아쉬운 순간도 있었는데 4년이란 시간 참 짧은 것 같아요. 내년에는 두산, LG, 삼성만 응원하지 말고 롯데도 많이 응원 부탁드립니다”

양 감독은 김경문(경영학과 78학번), 박종훈(경영학과 78학번), 선동열(경영학과 81학번) 감독을 의식한 듯 마지막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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