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체육관 뒤에 배추가 심어져있다 3주 쯤 뒤 수확해 김치를 담글 예정이다.(사진=이수지 기자 sjsj@kunews.ac.kr)

하루 식단을 아침은 편의점의 삼각김밥, 점심은 학교 주변 식당에서 제육볶음, 저녁은 유명 체인점의 피자로 ‘해결’했다. 대학생들의 평범한 식단이지만 대다수는 자신이 먹는 음식 재료의 원산지와 재배방식, 조리과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흔히 먹는 음료수엔 옥수수를 농축시켜 당분을 뽑아낸 ‘액상과당’이 들어있다. 많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비만과 질병의 주범으로 액상과당의 위험성을 경고해 왔지만 제품 포장에 버젓이 쓰인 이 성분을 일일이 확인하고 먹는 이는 드물다. 김철규(문과대 사회학과) 교수는 “재료와 조리과정을 신뢰하고 먹을 수 있는 집밥과 달리 현대인은 하루 최소 한끼 이상을 외식으로 해결한다”며 “하지만 먹을거리를 땅에서 수확하는 농민과 단절된 채 정체 모를 음식을 소비하는 헛똑똑이 식맹(食盲)”이라고 말했다.

사회 곳곳에서 귀농운동, 도시농업, 텃밭보급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바른 먹을거리, 신뢰할 수 있는 먹을거리를 우리 가족과 지역에 공급하고 낮은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선 지역농부가 직접 기른 농산물로 급식한다. 학교와 유치원에선 직접 텃밭을 일구거나 주말농장에서 먹을거리를 직접 생산하는 가정도 늘어나고 있다. 텃밭보급소 안익준 사릉텃밭지기는 “도시농업을 찾는 이유는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한 개인적 관심에서부터 환경을 되살리는 실천적 대안운동, 이웃과의 공동체적 삶을 이루는 것까지 다양하다”며 “재미로 텃밭을 가꾸고 수확의 기쁨을 이웃과 나누다보면 이런 목적과 기능은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레알텃밭학교 학생이 배추에 오줌비료를 주고 있다.(사진=김수정 기자 sooj@kunews.ac.kr)

대학생들이 모인 프로젝트 팀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도 본교 내에서 도시농업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도시농업에 관심 있는 학생 6명이 모인 팀으로 지난 1월부터 대학내 도시농업을 기획하고 지난 9월 레알텃밭학교라는 자율강좌를 개설했다. 레알텃밭학교에선 서른 여명이 실제 농부들과 함께 전반적인 농업구조와 먹을거리의 중요성, 실제 농사법을 배운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의 곽봉석 팀장은 “학생들이 과연 올까 걱정했는데 50여명이 모이며 뜨거운 관심을 보여 놀랐다”고 말했다. 레알텃밭학교 수강생 김정재(미디어학부10) 씨는 “작물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포스터를 보고 관심이 생겨 신청했다”며 “농사법을 배워 내가 먹을 작물을 직접 기르는 일이 재밌다”고 말했다.

이들은 레알텃밭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인문사회캠퍼스 농구장 앞과 화정체육관 뒤에 자그마한 텃밭을 만들어 농사를 짓고 있다. 한 사람당 한 평 씩의 밭을 일구는 게 이상적이지만 현재 확보된 교내텃밭이 작아 수강생 대부분은 옥상이나 베란다와 같이 자투리 공간에 상자 텃밭을 만들어 작물을 기른다.

막상 농사를 짓겠다고 했지만 처음엔 농사지을 땅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볕이 잘드는 학교 옥상에서 상자텃밭을 키우려했지만 학교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 공간을 활용해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대부분은 황당하게 쳐다봤다. 결국 텃밭학교 지도교수인 김철규 교수가 시설부에 의뢰해 경작가능한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농구장 앞에 있는 그루터기 텃밭. 왼 편에 보이는 건 스티로폼 상자텃밭이다. 스티로폼은 온도조절 기능이 있어 상자텃밭으로 적합하다. (사진=김수정 기자 sooj@kunews.ac.kr)


레알텃밭학교 수강생들은 텃밭상자 경작일지를 네이버 카페 ‘레알텃밭학교(cafe.naver.com/waithongbo)’에 올리며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다. 여태까지 상자텃밭과 교내 텃밭에서 오이, 토마토, 깻잎, 고추, 감자, 고구마, 당근 등을 수확했다. 손수 기른 먹을거리로 갓김치, 감자조림, 샐러드, 열무김치와 같은 반찬도 만들어 먹었다. 조소담(문과대 사회08) 씨는 “상자텃밭에서 수확한 상추로 상추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는데 굉장히 맛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텃밭엔 배추, 마늘, 알타리 무, 쪽파를 심고, 상자텃밭엔 월동작물인 밀을 심었다. 3주 후 배추 속이 꽉 차면 직접 수확한 배추로 김장도 할 예정이다. 깍두기도 담그려고 했지만 화정체육관에 심어져 있던 무를 서리당하는 바람에 갓김치로 대신할 예정이다.

농사에 이용되는 거름도 학생들이 직접 만든다. 그루터기 텃밭 한 켠엔 구멍을 뚫은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한약찌꺼기, 음식물 쓰레기, 톱밥, 낙엽, 오줌을 넣어 거름을 만드는 중이다. 다른 한 켠엔 2L짜리 생수 페트병 열 개에 오줌비료가 담겨져 있었다. 일주일 이상 된 오줌비료는 질소가 풍부해 잎에 닿지 않도록 해서 밭에 뿌리면 식물생장에 도움이 된다.
줌비료 모아와 농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밭 한 켠에 이정도 양의 비료가 약 열통이 쌓여있었다.(김수정 기자 sooj@kunews.ac.kr)


먹을거리 위기와 유기농 재배 등에 실컷 애기해 놓고도 뒷풀이를 하러 학교 인근 식당에 가면 어김없이 첨가물이 가득한 음식에 노출되는 아이러니가 펼쳐진다. MSG(L-Monosodium Glutamate) 범벅인 음식을 맛있게 먹고있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위해 각자 집에서 음식을 가져와 나눠먹기했지만 몇몇 학생이 케이크나 시중에서 파는 도너츠를 사오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김은하(문과대 영문05) 씨는 “당황하긴 했지만 먹을거리와 요리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우리 모두의 현실”이라며 “지금 우리나라에선 건강한 음식을 해먹기도, 사먹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팀은 지난달 31일, 민주광장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먹을거리를 주고받는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을 열었다. 이날 참여한 농부와 생협조합원, 요리사들은 직접 나와 자신이 직접 기른 작물과 유기농채소, 식품 등을 선보였다. 곽봉석 씨는 “자신이 먹는 음식의 원재료와 원산지, 유통과정, 가공과정, 조리과정을 알려면 경작을 해보는 것이 가장 좋지만 도시에서 농사를 짓기는 쉽지 않다”며 “파머스 마켓을 통해 먹을거리에 대해 배우고, 농부들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계속해서 현재 우리가 직면한 먹을거리 위기 대안을 찾을 예정이다. 지난주엔 일산에 있는 주말농장을 방문했다. 텃밭이 아니라 제대로 된 농장에서 삽질과 호미질을 제대로 하며 농사의 참맛을 느꼈다고 한다. 이지은 씨는 “계속 농사를 짓고 싶지만 5명이 졸업을 앞두고 있어 걱정”이라며 “텃밭학교가 정규강좌로 개설되면 공간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사람들이 계속 모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철규 교수는 “레알텃밭학교 학생들은 수억 마리의 미생물, 비, 바람, 햇볕과 땅을 일구며 자연과 관계를 회복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스펙과 점수보다 생태적, 대안적 삶에 고민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화정체육관 뒤의 텃밭.(사진=이수지 기자 sjsj@kunew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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