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삼성라이온스에서 데뷔한 양준혁은 올해까지 18년 간 2135경기에 출장해 통산타율 0.316, 안타 2318개, 2루타 458개, 홈런 351개, 루타 3879개, 1389타점, 1299득점, 4사구 1380개를 기록했다. 일일이 열거하기 벅찰 정도로 양준혁의 선수시절은 화려했다. 특히 경기 수, 안타, 2루타, 홈런, 루타, 타점, 득점, 4사구는 역대 최다기록이다. 역대 최다 올스타전 출장(15회), 역대 최다 골든글러브 수상(8회) 기록도 빠지지 않는다.

사진=황세원 기자 one@kunews.ac.kr
지난 9월 은퇴 후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강연에 양준혁은 요즘 정신이 없다. 모교인 영남대를 시작으로 대구가톨릭대와 경북대, 서울대, 본교까지 벌써 대 여섯 군데 강연을 다녔다. 서울, 지방 할 것 없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다. 그리고 ‘운동선수’이기 전에 인생의 ‘선배’로서 학생들과 소통했다. 23일 과학도서관 5층 강당에서 열린 ‘청춘문화센터:청춘의 용기’ 강연이 끝나고 양준혁과 마주 앉았다. 강연이 끝나고 따라오는 수많은 학생들을 힘겹게 뿌리치고 난 후였다. 마침내 ‘양신’을 만나고 긴장을 풀 겨를도 없이 인터뷰를 시작했다.

- 강연에서는 주로 어떤 얘기를 하나
제가 운동을 하며 살아 온 얘기를 솔직하게 풀어놔요. 그 얘기를 듣고 젊은 친구들이 ‘다시 한 번 해보자’ 하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저로서는 굉장한 보람이죠. 보통 강연하는 사람들이 박사, 정치인이잖아요. 저는 편하게 얘기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오히려 더 좋아하더라고요.

- 양준혁 선수의 대학시절은
사실 대학생활이랄 게 별로 없었어요. 만날 야구만 하느라 그 흔한 MT한번 못 가봤죠. 아, 미팅은 몇 번 해봤어요. 결과가 안 좋아서 그렇지. 어쨌든 나처럼 살라고 권하고 싶진 않아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청춘을 즐기면서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어요. 살면서 돈이나 명예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자기 할 일도 하는 사람이 최고죠.

- 최근 트위터에서 활발히 활동하던데
올해 9월쯤 시작했어요. 과거에는 팬들하고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마땅히 없었죠. 트위터를 하니까 저의 일상이나 덕아웃에서 벌어지는 일 등 팬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바로 알려줄 수 있더라고요. 트위터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셈이죠.

-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야구대표팀 후배들 가운데 추신수 선수를 MVP로 꼽는다는 글을 남겼던데
지금까지 이승엽 선수가 대한민국 대표였다면 이제는 추신수가 그 뒤를 잇는다고 생각해요. 연예인도 한류스타가 있듯이 신수가 야구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줄 거라 기대합니다. WBC우승,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등의 성과를 통해 이제 한국야구가 일본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해요. 추신수가 메이저리그에서도 한국야구가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고요.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 메이저리그에서 그만큼 활약 한다는 게 절대 쉬운 게 아니거든요. 나는 그 정도까지 못할 것 같은데(웃음).

- 별명이 많은데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준혁학생이 말하기도 편하고 가장 친근감 있는 것 같아요. 팬들이 ‘양신’이라 부르기는 하는데 내 입으로 양신이라고 하긴 좀 민망하잖아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양신이 더 맘에 들어요(웃음).

양준혁과 삼성라이온스
프랜차이즈 스타. 해당 팀에서 데뷔해 팀을 대표할 만큼 성장한 선수를 일컫는 말이다. 양준혁은 자타가 공인하는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그만큼 삼성라이온스와 양준혁의 관계는 남달랐다. 그는 1993년에 삼성에 입단한 해 신인왕을 차지했고 1998년까지 3할대의 타율과 세 자리 수 안타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1999년에 삼성이 양준혁을 해태(현 기아)의 임창용과 맞바꿨기 때문이다. 2000년엔 해태에서 LG로 거처를 옮겨 선수생활을 했고 2002년 드디어 꿈에 그리던 삼성으로 복귀했다. 그해 양준혁은 삼성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의 주역이 된다. 삼성에 울고 웃었던 그가 지난 9월 삼성라이온스 홈구장 대구에서 은퇴식을 열었다. 그는 “야구를 좋아하고, 야구선수를 해서 행복했다”며 “다른 팀에서 더 선수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삼성에서 마치고 싶었다”는 은퇴사를 통해 삼성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오죽하면 그의 피가 파란색이라는 말도 있을까.

- 양준혁 선수가 은퇴하면서 삼성에는 이렇다 할 스타플레이어가 없다. 대구구장에 관중이 줄어들까 걱정되진 않나
그런 부분은 구단이 알아서 할 일이지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에요. 구단에서는 스타플레이어를 보유하는 것도 좋지만 우선 젊은 선수를 육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물론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줄 스타를 만들어야겠죠.

- 젊은 선수들이 주축인 삼성에서 10년 가까이 리더를 맡아왔다. 어떤 리더였나

사진=황세원 기자 one@kunews.ac.kr
잔소리를 하기보다는 먼저 솔선수범 하는 편이에요. 나는 안 하고 후배들한테만 하라고 말할 순 없죠. 내가 안하고 잔소리만 하면 말발이 안서잖아요. 내가 모범을 보여도 못 고치는 후배들한테는 대놓고 직접 얘기를 하기도 해요.

- 내야 땅볼을 쳐도 1루까지 전력질주하는 걸로 유명하다. 안 뛰는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화나죠. 후배들에게 항상 끝까지 뛰라고 잔소리를 해요. 행운도 최선을 다했을 때 따라오는 거지 대충해서는 안 오거든요. 3할을 못 찍고 2할9푼9리에서 시즌 끝나는 선수들도 많은데 안타 1~2개 차이로 그런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조금만 더 최선을 다했다면 3할이 될 수도 있는 건데 아쉽죠.

- 올해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SK에게 4경기를 내리 패했다. ‘내가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해본 적 있나
제가 경기 나갔으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겠죠. 하지만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고 쉽게 얘기하기 힘듭니다. 야구라는 게 워낙 알 수 없는 스포츠라서요.

- 당시 김성근 SK감독이 은퇴한 선수가 덕아웃에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해 선수단 버스에서 경기를 봤다던데 섭섭하진 않았나
그 사건을 두고 얘기가 많던데 정작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김성근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 전혀 틀린 것도 아니었고 원칙을 지키자고 하신 거니까요. 그날 SK 덕아웃에 찾아뵙고 감독님께 인사도 드렸어요.

감독, 그리고 야구 아카데미
선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양준혁은 이제 최고의 감독을 꿈꾸고 있다. 머지않아 메이저리그로 가서 지도자 연수도 받고 올 계획이다. 한국이나 일본보다 더 큰 시장에서 선진야구를 직접 경험하고 오겠다는 결심은 이미 오래 전에 다졌다. 공부를 마치면 감독을 하면서 유소년과 청소년을 교육할 수 있는 ‘양준혁 야구 아카데미’도 만들겠단다.

- 야구와 함께 어떤 것들을 가르치겠다는 건가
야구에는 인생이 담겨 있어요. 그 안에는 실패도 있고 희생도 있고, 또 선후배간의 위계질서와 예절까지 모든 게 담겨있어요. 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하는 것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내가 가르친 애들이 이승엽, 박찬호 같은 훌륭한 야구 선수가 될 수도 있지만 시장도 할 수 있고, 대통령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공부만 했던 친구들보다 야구를 한 친구들이 사회에 나가서 적응도 빠르고요.

- 어떤 감독이 되고 싶나
김성근 감독님 특유의 선수들 마음을 사로잡는 스타일과 자율적인 야구를 중시하는 로이스터 감독의 스타일을 반씩 섞고 싶어요. 물론 가장 기본적으로는 야구에 열정을 품은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이날 강연에서 양준혁은 학생들에게 꿈과 열정이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좇으라고 당부했다. 중간에 그만두는 게 가장 나쁘다고 덧붙였다.

“깨어있으십시오. 살다보면 시련이나 고난은 누구나 겪게 돼 있어요. 그러나 그런 시련들을 뚫고 나가느냐 마느냐 그런 차이거든요. 여러분은 시련이 오면 그걸 발판으로 삼고 끝까지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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