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 추억
사랑스런 추억
  • 유명빈 기자
  • 승인 2011.01.10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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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때’를 기다리는가

화사한 파스텔 톤 봄빛이 가득 차오르던 3월 즈음, 학교 곳곳엔 0911선임기자들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운 고대신문 수습기자 모집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이를 보고 나는 주변에 고대신문 수습기자 지원에 대한 뜻을 밝혔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애써서 시간낭비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20대의 젊음이 이것저것 따지며 고민하는 것이 오히려 시간낭비란 생각에 과감히 고대신문 수습기자 모집에 지원했고, 약 2주 뒤 간단한 논술시험과 면접을 통해 인턴기자 생활을 하게 됐다.

'때'는 어느 순간 찾아오는 우연이기보다 항상 주변에 존재하는 기회라 했다. 다만 우리는 대개 부족한 지식과 경험 때문에 대부분의 '때'를 놓친다. 혹, 알아채더라도 '때'를 선택하면 자연히 따르는 기회비용과 선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핑계를 들어 이를 회피하곤 한다. 그러나 ‘때’는 본인이 찾아 선택하는 것이다. 스스로 찾아와 선택되는 피동의 존재가 아니다.

수습기자 생활을 마쳐갈 때 즈음 다음 학기 수습기자에 지원하고자 하는 친구들 중엔 시간 낭비라는 주변의 위협(?)을 듣고, 이것저것 조건을 따지고 ‘때’를 기다리다 결국엔 포기하고 마는 이들이 너무도 많았다. 안 하고선 못 배길 때를, 다른 어떤 것도 선택할 여지가 없을 때를 기다리는 것인지? 왜 남들보다 먼저 할 수 있을 때, 앞서갈 수 있을 때,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지? 고대신문 수습기자든 그 어떤 것이든 비전을 갖고, 그에 따르는 Risk를 감당하며 도전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후에 결과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 젊은날의 자세다.

어김없이 찾아온 방황

고연전 특집호(1649호) 제작을 마친 9월,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교육과 경험을 통해 추상적이었던 신문사의 일의 형체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고, 3주간에 걸쳐 진행했던 고된 고연전 특집호 제작을 통해 취재와 기사작성에 자신감이 붙었다. 취재부로 돌아온 9월 중순엔 여전히 같은 꿈을 지닌 채 끊임없이 전진하는 나의 모습이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한창 취재부 수습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한 2010년 10월. 내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어느 순간 살펴본 내 생활의 중심엔 고대신문이 있었고, 평소 학업에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나는 신문사 핑계를 대며 학업을 조금씩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남들 다하는 토익-토플 공부도 안하고, 학점에 목매지도 않으며, 인턴십이나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며, 공모전에 참가하려 준비하지도 않으며, 학과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란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겨우 나태를 허락하고 만 내가 수치스러웠다. 나의 하루하루는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속으로 빠져들었다.

뿐만 아니라 취재원으로 만났던 이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까지 갖게 됐다. 나는 나름대로 편하게 다가가기 위해 일반 기자들과는 다르게 취재원에서 취재수첩을 들이대며 끄적이거나 녹음기로 언급하는 것 하나하나 녹음하려고 하기보단 눈을 마주치며 말하고 그 내용은 최대한 기억해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에 취재원들에게 나는 학생이나 학우라기 보단 (다소 비꼬는 말투의)‘기자님’일 뿐이었고, 자신들의 약점을 찾아내고 지적하는 존재로 여겨 기 싸움에서 이겨야만 하는 존재였다. 사람 대 사람의 긍정적이고 밝은 관계를 꿈꿨던 내가 이런 사실을 지각하게 된 것은 충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이런 고민들에 대해 들었던 가장 좋은 조언은 다름 아닌 취재원이었던 <워낭소리>의 이충렬(교육학과 85학번) 감독이다.

이 고민은 취재원을 대하고, 사람 간의 관계가 형식적이고 방어적인 것을 보고 안타까워한 마음이 있는 학보사 기자라면 누구나 할 법하다. 물론 이에 대한 해답은 스스로 찾아내야한다. 때문에 애써 포장한 나의 말은 아끼고자 한다.

사랑스런 추억

지난 수습기자시절 오갔던 고대신문 편집실의 분위기는 인턴기자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와 여지없이 닮아 있었다. 어떻게 시간이 그렇게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는지. 끊임없이 오고가는 중국음식 냄새, 쓰레기통에 마구잡이로 쌓여있는 쓰레기더미, 프린터에 이면지를 넣었다가 막혀서 투덜대는 1005동기의 불평. 모든 것이 예전과 변함없었다.

신문 마감을 앞둔 금요일 밤은 늘 생동감이 넘쳤다. 마감을 앞두고 우리는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렸고, 이것저것 자료를 모아 정리하고, 기사의 방향을 다시잡기 위해 취재부장과 상의를 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늘 어느 시점엔 사진 리터칭을 보내기 위해 사용할 사진을 골라서 사진부 컴퓨터에 옮겨놓으라는 목소리가 들렸고, 다른 쪽에서는 몇 번째 재생되는지도 모르는 성시경과 델리스파이스의 노래가 마치 미니 콘서트를 하듯 반복 연출되고 있었다. 새벽 2시가 지나면 우리는 한 테이블에 모여 야식을 먹으며 가벼운 주제의 대화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마저도 새벽 4시가 지나면 하나둘씩 마실과 숙소로 사라져갔다. 우리는 이 시간에 잠들면 토요일 오후까지 일해야 끝마칠 수 있단 것을 알면서도 밤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렇게 밤과 겨루며 일을 해야 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보람을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 일했던 고대신문의 유능하고 인간미 넘치는 기자들이었다. 고대신문은 어느 면으로 보나 속도경쟁에 미치거나 권위주의, 엘리트의식에 도취된 집단이 아니었다. 각자의 고된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친분을 쌓으며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의 따뜻한 태도에 나는 적잖이 감동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믿는다. 고대신문 수습기자로 활동하며 많은 사건을 목격했고, 그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또한 고대신문 내에서 유능하고 인간미 넘치는 1005동기와 선임기자들을 만났다.

사건은 시간이 지나가면 언제든 잊혀질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쩌면 동기, 선임기자들 개개인의 얼굴과 이름을 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과 공유한 시간, 함께 나눴던 생각, 따뜻한 기억은 나에게 절대 잊지 못하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사랑스런  추억  -  윤동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트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東京)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
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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