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언제쯤 / 반상위의 멋진 꿈 / 그릴 수 있을까? /
난 언제쯤 / 내 손바닥에서 / 바둑알 냄새나는 / 고수가 될까?’

1995년, 11살의 나이에 이 동시를 지은 꼬마아이는 감성을 노래하는 시인이 아니라 ‘바둑알 냄새를 풍기는 고수’가 됐다. 만 12세의 어린나이로 입단(최연소 3위)해 여자바둑대회 우승, 2004년 제9기·제10기 여류국수전 우승, 2010광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까지. 단지 고수를 꿈꿨지만 지금은 국내 최강, 세계 최고를 넘보는 실력자가 된 조혜연 9단 이야기다.

“엄마 바둑 두는 꿈을 꿔요. 다시 바둑 배우러 갈래요”

바둑과의 첫 만남은 뜻밖이었다. 하루 종일 그림그리기와 글쓰기를 하는 어린 그녀를 걱정한 부모님이 6살이던 조 씨에게 바둑을 권유했다. 바둑교실을 1년 정도 다닐 때쯤 바이올린을 전공하길 바라던 어머니의 뜻으로 잠시 바둑을 그만뒀지만 자면서도 바둑 꿈을 꾸던 그녀는 바둑을 포기하지 않았다. 작은 인연으로 시작해 운명이 돼버린 그녀의 ‘바둑 인생’을 물었다.

- 상당히 어린 나이에 프로로 입단했는데 특별한 비결이 있었나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채택된 바둑

바둑교실을 다닐 때 한창 인기가 많았던 PC통신의 한 바둑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했어요. 아마추어 강자 분들과 프로 분들이 지도해주셨죠. 원래 지도를 받으면 지도료를 드렸어야했는데 어린 아이가 바둑을 공부 하는 모습이 예뻐 보이신다며 절 많이 아껴주시고 조건 없이 도와주셨어요. 그분들이 초청해주셔서 단기간이었지만 강자들도 만나고 대구에서 리그전도 치렀어요.

- 학창 시절은 어땠나
힘들었어요. 바둑도 좋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학업에 대한 열정도 컸어요. 책 읽는 것도 좋아해 공부도 하고 싶었죠. 프로로 입단하고 중학교에 진학하는데 학교에선 학업과 바둑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요구했어요. 결국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접고 바둑 명문이라는 충암중학교에 바둑 특기생으로 입학했어요. 고등학교도 바둑부가 있는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진학했고요. 학교에서 많은 배려를 해줘서 감사했지만 학업에 대한 갈망은 계속 남아있었던 거 같아요.

나가는 대회마다 좋은 성적을 거두며 승승장구하던 그녀에게 뜻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왔다. 주일에 대국을 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소신에 대한 비난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 이번 아시안게임 페어경기에서도 출전을 포기해 논란이 많았는데
주일에는 예배를 드려야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제 소신에 대해서 비 기독교인이나 일부 바둑 팬들은 거세게 비난하죠. 그러다보니 바둑계에서 살기가 힘들다는 생각도 하고 바둑에 대한 회의감도 느꼈어요. 원래 더 시간이 흐른 후에 대학진학을 하려했는데 예전부터 학문에 대한 갈망도 있었고 다른 길을 가더라도 길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에 대학 준비를 시작했어요.

- 대학 진학 후 학업과 바둑을 병행하느라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대국을 하면 수업에 못 들어가요. 이런 날엔 한국기원에 요청해서 대국 확인증을 받아 제출했어요. 추가 레포트도 빠지지 않고 냈죠. 물론 공문을 드려도 받아주시지 않는 수업이 있어서 어려웠지만, 대부분의 교수님이 과제로 대체해주시는 등 바둑과 학문을 병행하는 상황을 이해해주셨어요.
지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할 때는 학업도 같이 병행하니까 압박감도 상당해서 한 학기 동안 굉장히 지쳤었죠. 그런데 전에 저를 비난했던 사람들이 이런 저의 모습을 보고 따듯하게 위로해 주시더라고요. 애쓴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 루이나이웨이 9단과의 질긴 인연도 바둑계의 큰 이슈다. 타이틀 전적이 2승 13패로 열세인데 학업과 바둑을 병행하지 않았으면 이길 수 있지 않았을까
2004년 여류국수전이 승부의 시작이었죠. 그 분은 순전히 바둑만 하시는 분이세요. 핑계는 아니지만 학업을 병행하면서 바둑을 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것입니다. 루이나이웨이 9단에게 배운 것도 많아요. 패배했을 때 더 많이 배울 수 있죠. 이겼을 때 느끼지 못하는 것들도 느낄 수 있고요.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채택된 바둑

지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바둑은 모든 종목 금메달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중국의 위협도 있었지만 혼성복식과 남녀단체전 동반 우승을 하며 명실상부 바둑 최강국이 됐다. 조혜윤 씨에게 이번 광저우 아시안 게임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 금메달 따고 나서 어떤 생각을 했나

(사진=구민지 기자 wow@)

금메달을 못 땄으면 스스로가 괴롭고 자격지심에 시달렸을 것 같습니다. 국가대표로서 금메달을 딴 것은 개인적으로 큰 영예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저를 격려해주시고 배려해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해드린 것 같아 기쁩니다.

-같이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이슬아 선수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는데, 섭섭하진 않았나
전혀 섭섭하지 않았어요. 이슬아 선수가 바둑 얼짱으로 언론에 알려지면서 바둑선수단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어요. 그냥 재미있는 현상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둑 말고 다른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선수들의 집중력이 흐려지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은 했었죠. 결과적으론 잘 됐지만요.

- 태릉선수촌에서 합숙을 하면서 아시안게임을 준비했는데 바둑 선수단 분위기는 어땠나
원래 바둑은 합숙을 잘 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번에 태릉선수촌에서 훈련도 하고 전지훈련을 같이하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녀 구분도 없이 모두 친해졌죠. 너무 분위기가 좋다보니 훈련하기 전엔 농담반 진담반으로 선수단에 연애 금지령이 내려졌어요. 코치님이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연애든 결혼이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죠.

- 바둑은 스포츠인가
저는 바둑이 스포츠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4년 인천아시안 게임엔 바둑이 들어가지 않았어요. 바둑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으면 퇴출되고, 또 승자와 패자에 주목하는 스포츠와는 다릅니다. 바둑을 스포츠로 정의하는 것은 바둑의 정체성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둑은 ‘문화’입니다.

- 바둑 기사로서, 특별히 영문과에 진학한 이유가 있나
바둑은 지금 동양의 정수를 이어나가고는 있지만 동양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바둑에 대한 저서나 정보 같은 것이 부족한 서양에서도 바둑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훌륭한 고유의 문화로서 바둑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바둑의 발전을 위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습니다. 고뇌, 애환 등 바둑의 특별함을 이야기로 풀어 사람들이 편하게 접근하도록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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