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노조 사태로 교내가 시끄러운 지금, 고대신문이 지난 9일과 10일, 이틀 간 미화노조원을 만났다. 미화노조원들의 노동량은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노동량과 임금은 비례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건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인간으로의 대우’였다.

문과대 앞 9일(수) 새벽5시. (사진=조정표 기자 jjpman@)
매일 오전 5시 출근...추가수당은 없다

매일 오전 5시 출근...추가수당은 없다미화노조가 총파업을 진행한 다음날인 9일(수) 새벽 5시. 미화원 김형수(가명) 씨가 학교에 들어서는 모습이 보인다. 오전반인 김 씨의 근무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 하지만 아침 식사시간인 9시까지 일을 끝내기 위해 1시간 일찍 나온다. 김 씨의 집은 학교에서 도보로 1시간 거리인 삼선교 근처다. 워낙 이른 시간이라 대중교통도 없어 학교까지 걸어서 온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난다. 여간 힘든 게 아니지만, 일찍 와서 일해도 추가수당은 없다. 그런데 오늘은 1시간 더 일찍 나올 걸 후회가 든다. 어제 하루 쉬었을 뿐인데 쓰레기가 산더미다. 김 씨는 “날씨가 춥다”며 허연 입김을 뿜고선 묵묵히 일에 집중했다. 어둠이 내려 한적한 교정에는 김 씨가 내뿜는 숨소리와 쓰레기통 비우는 소리만 울렸다.

 

쓰레기 청소중인 미화원과 신효식 기자.
9일(수) 새벽 5시 30분 (사진=조정표 기자 jjpman@)
바닥에 붙은 휴지는 잘 떨어지지 않았다
바닥에 붙은 휴지는 잘 떨어지지 않았다중앙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앙광장 지하 한 귀퉁이에는 벌써 큰 쓰레기봉투 열 개가 쌓여있었다. 중앙광장 입구에 있는 책상에 ‘1만 고려대인 서명’ 명단이 보인다. 

넓은 제1열람실 쓰레기통에 쌓인 쓰레기 높이가 의자에 앉아있는 학생 키와 비슷하다. 공부하고 있던 졸업생 이재민(국어국문학과 04학번)씨는 “미화노조 분들이 없으니 하루 만에 차이를 확연히 느꼈다”며 “오늘도 더러울까봐 학교를 오면서 걱정했다”고 말했다.

열람실 옆 화장실에서는 여성 미화원이 바닥에 널려있는 휴지뭉치들을 쓸고 있었다. 휴지뭉치 아래에는 흙먼지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찍혀있었다. 그녀는 “중앙광장은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 하루만 청소를 안 해도 이 난리네”라며 한숨을 쉰다. 기자도 보고만 있기 미안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청소를 도왔다. 물에 젖어 바닥에 달라붙은 휴지는 잘 떨어지지 않아 손으로 직접 떼어내야 했다. 미화원은 중앙광장 화장실을 ‘70년대 서울역 화장실 같다’고 표현했다. 화장실에서 나와 라커룸으로 가니 한 남성이 꽉 찬 쓰레기통을 힘겹게 비우고 있었다.

“많이 힘드시죠?”
“...”

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물 내리는 사람 따로 있다
그날 저녁, 오후반 미화원을 만나기 위해 다시 중앙광장 휴게실을 찾았다. 마침 쉬는 시간이었는지 휴게실에는 미화원 2명이 쉬고 있었다. 전날 총파업에 대해 묻자 아직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는지 박명숙(가명, 59세·여) 씨가 “우리는 잘 모르고 분회장이 잘 알지. 우리는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거지 뭐”라고 툭 내뱉는다.

태릉 부근에 거주하는 박 씨는 6년 전 본교에 왔다. 나이가 들기 전에는 보석사우나에서 보석을 박아 하루에 6만원 씩 벌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소득이었다.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지만 모두 결혼해서 나가고, 지금은 남편과 단 둘이 살고 있다. 남편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박 씨가 버는 돈으로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박 씨가 받는 한 달에 100만원이 채 안 된다. 그렇다고 자식에게 의존할 수도 없다. “자식들 사정을 빤히 아니까 생활비 달라고 못해. 육체적으로 힘들고 그런 건 어쩔 수 없는데 한 달에 딱 100만원만 받았으면 좋겠어” 옆에서 묵묵히 있던 김숙자(가명, 65세·여) 씨도 서운한 점을 털어놨다. “학생들 때문에 가끔 서운할 때가 있어. 저번에 한 학생이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려서 한 소리 했더니 ‘우리 때문에 먹고 사는 거 아니냐고’ 그러더라고. 또 한 남학생이 볼일을 보고 물을 안 내리기에 한마디 했더니 ‘물 내리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하고(웃음). 학생들 대부분이 착하고 예의바른데 몇몇 학생들한테는 좀 섭섭해”


반찬냄새 때문에 쉼터에서 쫓겨나기도
다음날 아침 9시, 문과대로 향했다. 1층에 있는 휴게실 문을 여니 막 아침 식사를 끝냈는지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불과 3평 남짓한 공간에 미화원 4명이 쉬고 있었다. 지금은 모든 건물에 쉼터가 거의 다 있지만 예전에는 없는 곳도 있었다. LG-POSCO경영관에서 일했던 이옥자(가명, 53세∙여) 씨는 “경영관에는 쉼터가 2층에 있었는데 반찬 냄새가 나서 교수님이 총무부로 연락했나봐. 그래서 구경영관 지하로 쫓겨났지(웃음)”라고 말한다.

외풍이 있는지 박성희(가명, 57세∙여) 씨는 이불을 돌돌 말고 있었다. 손가락에는 흰 반창고를 두르고 있다. 물을 많이 만져 손끝이 갈라졌다. 쉬는 곳은 편하냐고 묻자 “여기는 그래도 호텔이야. 1층이잖아. 다른 건물 쉼터는 주로 지하에 있거나 계단 밑 창고에 있어”라고 말한다.

총파업 다음날 청소가 힘들지 않았냐고 얘기를 꺼내자 황태순(가명, 61세∙여) 씨가 말도 마라며 고개를 젓는다. “화장실마다 화장지는 다 떨어지고 휴지통은 휴지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더라니까” 강의실도 더러운 건 마찬가지. 평소에는 9시면 끝났던 일이 10시가 넘어서야 끝났다고 한다. “그래도 고맙게도 한 여학생이 ‘오늘은 청소해주시는 거죠?’라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고맙습니다’ 하면서 세 번이나 인사를 하지 뭐야. 학생들한테는 항상 고마운 마음뿐이야. 학생들이 안도와주면 파업 못해. 엄마들이 무슨 힘이 있겠어. 우리가 맨 밑바닥인데. 청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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