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자 신문이 26일인 지금까지 배부대에 쌓여있다. (사진=위대용 기자 widy@)
며칠 전 일이다. 신문사를 가려고 정경관을 나서는데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해 어떻게 할까 주저하는데 지나가던 학생들이 고대신문 가판대에서 고대신문을 집어 들었다. 기사를 보려고 집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고대신문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지. 하하하”
고대신문이 모든 독자의 사랑을 받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씁쓸했다. 일주일동안 나름대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쓴 내 기사가 비에 젖은 채 쓰레기통에 구겨진 걸 보며 누구를 위해 고생을 했는지 회의가 들었다.

지난주 편집회의 때 나에게 미화노조 총파업 다음날 미화원 분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오라는 일이 주어졌다. 총파업으로 학교가 평소보다 더러울 것이고, 일을 하시는 분들의 소회도 남다를 것이라는 이유였다. 르포기사를 쓰는 것은 처음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9일 새벽 4시, 일단 무작정 학교로 향했다. 워낙 이른 새벽이라서 그런지 오전반 미화원 분들은 말이 별로 없었다. 붙임성이 원채 없는 나는 그렇게 4시간 동안 미화원 분들을 따라 어설프게 청소를 도우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분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맙다고 말해주셨다.

잠시 눈을 붙이고 오후반 분들을 만나기 위해 중앙광장의 미화노동자 휴게실을 찾아갔다. 쉬고 있던 미화원 분들은 처음에는 조금 경계하셨지만 이내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젊었을 때 공사판에서 일했던 이야기, 독립해서 떠나간 자식들 이야기, 남편이 직장을 잃어 자신의 임금만으로는 생활하기 어렵다는 이야기... 이때까지 그들의 이런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이 있었을까. 그들을 청소하는 사람으로만 쳐다봤지 그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게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저녁 편집실에서 취재한 내용을 정리하고 기사를 쓰기 위해서 책상 앞에 앉았다. 하지만 기사는 써지지 않았다. 무엇이 부족한 걸까.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다음날 아침 문과대 쉼터로 다시 찾아갔다. 가서 처음부터 다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 쪽 구석에 이불을 돌돌 말고 계신 분에게 힘드시냐고 물었다. 그 분이 대답하셨다.

“힘들지. 화장실마다 화장지는 다 떨어지고 휴지통은 휴지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더라니까. 그래도 고맙게도 한 여학생이 ‘오늘은 청소해주시는 거죠?’라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고맙습니다’ 하면서 세 번이나 인사를 하지 뭐야. 학생들한테는 항상 고마운 마음뿐이야. 엄마들이 무슨 힘이 있겠어. 우리가 맨 밑바닥인데. 청소부”

그동안 학교에서 들었던 ‘미화노동자 분들을 위해 서명해주세요’나 ‘실제 고용주인 학교는 각성하라’는 구호보다 이 한 마디가 몇 십 배는 더 마음을 울렸다. 나는 이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다른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2만 명 가까이 미화노조 총파업지지 서명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들 중 몇이나 진정으로 미화원 분들을 이해했을까. 이걸 독자들에게 생생히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편집실로 돌아와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물론 마음을 먹었다고 기사가 한 번에 잘 써질 리가 없었다. 취재부장과 수없이 상의를 하고 의견을 나누며 기사를 다듬고 또 다듬었다. 결국 신문 지면에 실린 기사는 내가 처음에 썼던 글과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내가 무엇인가를 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동안 고민했던 고대신문의 존재이유에 대해 얼핏 어떠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대신문은 단지 64년의 명맥을 이어나가기 위해 신문을 찍어내지도, 학교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나팔수 노릇을 하는 것도 아니다. 고대신문은 ‘소통’을 이야기하고 ‘울림’을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지난해 사범대 정인철 교수님이 돌아가셨다. 여기에는 성희롱 논란이 겹쳐져 있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정인철 교수님의 말에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갈등은 심화됐다. 만약 그들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 가능했다면 한 사람의 ‘죽음’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고대신문은 대학 구성원들의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위해 비록 우산으로 쓰이는 신문일지라도 한 주 한 주 최선을 다해 뛰어다닌다.

고대신문 기자는 힘들다. 주위에서는 언제 그만둘 거냐고 빈정댄다. 모순으로 들리겠지만 힘들수록 더욱 그만둘 수 없다. 내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신문사에 처음 입사할 때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그만두는 것은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버나드 쇼의 말이 있다. 우리들은 무엇이든지 적어도 하나는 치열하게 매달려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으로 고대신문을 선택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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