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의 사전적 정의는 ‘육류를 피하고 식물성 식품을 중심으로 하는 식사’다. 채식주의자들은 동물의 권리보호나 환경문제, 건강 등 다양한 이유로 채식을 한다. 약 한달 전부터 채식 중이라는 김인수(경상대 경영정보06) 씨는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평생 채식을 했다는 간디의 ‘육식이 사람의 욕심을 불러 일으킨다’는 말을 보고 호기심에 채식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세계 채식인 연합(International Vegetarian Union, IVU)은 채식주의자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소·돼지 등 육지의 동물들의 고기(육고기)는 먹지 않지만 우유, 계란, 생선은 먹는 페스코(Pesco), 육고기와 생선은 먹지 않지만 우유와 계란은 먹는 락토오버(Lacto-Ovo), 육고기와 생선, 계란은 먹지 않고 유제품은 먹는 락토(Lacto), 동물성을 모두 섭취하지 않는 비건(Vegan)이 바로 그것이다. 고대신문이 채식을 직접 체험하고 채식 시 유의해야할 사항을 정리했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파동, 웰빙 문화 확산으로 국내에서도 채식인구가 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채식문화를 다루는 월간 잡지 <Begun>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채식을 위한 여건은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실정이다. 학생식당의 주 메뉴도 고기, 학교 근처 밥집을 가도 고기, 술집을 가도 고기……. 기자는 지난 4일(수)부터 9일(월)까지 직접 안암 주변에서 채식에 도전했다.

채식을 시작하기 전날인 3일(화), 학교 근처에 채식이 가능한 식당이 있는지 조사했다. 본교 학생식당에선 주 메뉴를 제외한 나물 같은 기본 밑반찬들과 국으로 채식이 가능했다. 참살이길과 정경대후문, 정문 근처의 식당 약 120곳 중 채식 가능한 메뉴가 있는 식당은 14곳뿐이었다. 메뉴는 호박죽, 비빔밥, 쫄면, 콩국수 등으로 제한적이었다. 아침밥은 집에서 먹고 점심과 저녁 중 한 끼를 도시락으로 먹기로 했다.

보통 채식주의자들은 식당에서 동물성 재료를 빼고 조리해달라고 주문한다. 멸치 우려낸 물이나 참치를 뺀 된장찌개, 김치찌개를 주문하거나 계란, 고기를 넣지 않고 파스타를 만들어달라는 식이다. 인터넷으로 채식 음식을 주문하거나 채식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 12살 때부터 ‘락토’로 채식을 해온 김유정(정경대 행정08) 씨는 “인사동이나 한남동의 채식식당에서 콩고기로 만든 탕수육이나 자장면, 햄버거, 돈가스 등을 먹을 수 있다”며 “최근에는 웰빙열풍이 불어 던킨도넛의 채식 크리스피·도넛이 나올 만큼 채식메뉴가 조금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채식을 시작한 4일(수) 점심, 서울대 채식뷔페에 갔다. 서울대 제2식당에 있는 채식뷔페는 11시 30분부터 두 시간동안 운영하며, 하루 평균 약 400명이 이용한다. 이날 메뉴는 현미콩밥과 다시마튀각, 흑임자죽 등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채식 입문자를 위한 콩고기 요리도 눈에 띄었다.

서울대 생활협동조합(생협)은 작년 10월, 많아지는 외국인 유학생과 채식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을 위해 채식뷔페를 만들었다. 서울대 전체 구성원에게 이메일로 수요를 조사했더니 주 1~2회 사용하겠다는 답변이 46%로 나왔고, 이를 통해 채식뷔페를 만들 수 있었다. 뷔페를 이용하던 최민석(서울대 컴퓨터공학10) 씨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은 좋은 의도”라며 “신선한 것이 먹고 싶을 때 이용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본교에서도 채식식당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실현되진 않았다. 김철규(문과대 사회학과) 교수가 작년 여름,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함께 채식식당 설치를 계획했으나 큰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이다.

5일(목)에는 학교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저녁에 먹은 비빔밥은 계란을 빼고 주문해야했고, 김치는 젓갈이 들어간 것을 피해야했다.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순두부찌개는 해물이 들어가거나 육수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 주문하기가 곤란했다.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식사만으로는 영양소를 균형적으로 섭취할 수 없었다. 메뉴 중 콩국수를 제외하고는 단백질을 얻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철분과 칼슘도 부족했다.

6일(금)에는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있었다. 채식주의자들은 주변사람들과 식사를 하거나 술자리를 가질 때가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대부분 회식이나 술자리 메뉴가 육류이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의 시선도 부담스럽다. 기자는 친구들에게 ‘비건’ 체험중이라고 말하고 두부김치를 안주로 시켰다. 하지만 김치가 돼지고기와 볶아져 나왔다. 기본안주인 뻥튀기만 먹으며 소주를 마시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친구들이 감자튀김과 과일화채를 시켜줬다. 같이 술을 마시던 김경호(경희대 화학공학10) 씨는 “고기를 제외하니 시킬 안주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락토오버’로 채식을 하고 있는 김민정(이과대 지구환경10) 씨는 “비건은 아니기 때문에 술자리에서는 주로 계란요리와 감자튀김을 안주로 먹는다”며 “친구들이 고기를 먹지 않고 에너지를 어디서 만들어 내냐고 놀려대곤 한다”고 말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채식식당을 운영하기는 어렵다. 채식식당은 이용인원이 그리 많지 않아 적자가 나기 쉽다. 서울대 생협 관계자는 “외국인과 건강에 관심이 있는 구성원에 대한 일종의 서비스로 생각한다”며 “채식식당에서 난 적자를 다른 학생식당의 수입으로 메우며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채식전문식당이 그리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채식주의자가 너무 적은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고용석 생명사랑채식실천협회 회장은 “육식 위주 식습관의 뿌리가 너무 깊어 고기 식단을 줄이자는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며 “하지만 다행히 최근 웰빙열풍이 불고 환경문제가 너무 심각해져 채식에 관한 관심이 조금씩 생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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