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영화를 몇몇 평론가들이 이렇게 평가한다. '소비적이고 쾌락적이며,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감정의 표현이다.'라고... 물론 맞는 표현일 수 있지만, 그 시대 통제 위주의 문화정책에서 꿋꿋하게 표현해낸 감정들이 진실이고 위로일 수도 있다. 국민들은 억눌림을 분출하고 싶었고, 그런 감정들을 노동력을 변환해서 사용해야 했지만, 그 표출되지 못하는 감정이 못내 '불행'으로 일상에 묻었을 거라 생각된다. 그 시절의 통제는 그 '진실'이 두려웠기에 웃음과 눈물이라는 옷은 입었지만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시작이 끈끈히 버무리 된 영화들이 두렵고 또 두려웠을 것이다.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진한 육수 같은 감동을 자아낸 쎄시봉 사단의 송창식의 노래 '왜불러'가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삽입되었다가 금지곡이 되었다고 한다. 장발 단속을 피해 달아나는 청년들이 경찰의 호각소리에 '왜불러' 노래가 나오면서 ‘반항적’이라고 금지했다는 것이다.

1970년대는 이렇듯, 유신체계의 표현을 제한하는 억압 정책이 70년대 그 이전보다 한국 영화계를 침체되고 암울하게 만든다. 유신 정부는 1973년 2월, 제 4차 영화법 개정을 시행하면서 영화사 등록 여건을 엄격하게 규정하여 암암리에 활동하던 개인 영화업자들의 활동을 막아버렸으며, 1년에 4편의 영화를 제작하게 하는 의무를 두면서 동시에 모든 영화에는 유신이념을 구현하도록 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를 제대로 반영한 영화가 아닌, 극단적인 감정 표현이 가미된 상업적인 영화들이 양산될 수 밖에 없었고. 이런 면에서 호스티스물과 하이틴 영화는 오히려 영화계의 돌파구였다. 사회로부터 소외된 호스티스 여성을 내세워 은연 중에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영자의 전성시대]의 영자나 [별들의 고향]의 경아의 직업 변천과 변두리 삶, 그리고 사랑에 끝없이 목마르면서도 돈을 위해 몸을 내던지는 그녀들의 삶을 통해, 공업화로 인해 도시 노동자 계층이 되어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게다가 이 호스티스 영화들의 특징은 해피엔딩보다는 비극적 죽음을 맞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거나 등등 비극적인 요소로 점철되어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사실, 대놓고 상업적으로 피력했다고 비판하기보다 그 시대의 첨예한 배경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필요하다. 오히려 그러한 사회적 억압 속에서도 영화의 명맥을 이어온 것에 대한 박수를 보낸다.
70년대 그 시절의 '위로'는 직접적인 수 없었고, 동감적일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적으로 우회된 영화를 통해서 희망찬 삶을 믿어낼 수 밖에 없었으리라. 그래야 대중문화가 허락되었을 테니까...

아직은 세상을 모르는, 혹은 아직은 나만큼 세상의 좌절과 타협하지 않은 주인공이 당하는 타박과 실패스러운 사건들과 쉽게 이입되면서, 주인공이 끝내 이겨내 주기를 바라고 바랬으리라.

그래야만 나 또한 이 모진 삶을 무디게 살아낼 자신이 생길 것 같았을 테니까.

▲ 1970년대 영화 포스터-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원은정 영화 칼럼니스트

한국기업문화연구소 소장/수석강사, 청소년비전연구소 소장/수석교수, 케이엘넷 영화칼럼 연재 中 / 기업문화매거진 칼럼 연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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