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의 퇴조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입. 1990년대 한국미술의 출발은 이처럼 극명한 보색대비를 이루었다. 텔레비전, 광고, 영화, 애니메이션 등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의도적으로 예술의 아우라(aura)를 제거한 ‘키치적’ 취향을 담은 작품들이 대세로 등장했다. 일견 유머러스한 작품의 외피에 미국을 위시한 서구적 취향을 따라가는 데 목숨을 건 이 땅의 현실을 옮긴 최정화의 ‘한국적 팝아트’가 대표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탄생시킨 ‘다원주의적 미술’은 입체설치, 비디오(미디어), 퍼포먼스 등 새로운 장르를 한국미술에 이식시켰다. “대중이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는 미술이 좋은 미술인가”라는 볼멘소리와 “그만큼 세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적어도 1990년대를 놓고 본다면 보는 이에게 ‘불편함’을 자극시키는 미술이 ‘교감’이라는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미술을 압도했다. 대중문화, 도시, 섹슈얼리티, 젠더, 에콜로지 등 이른바 ‘난해한’ 전시가 줄줄이 이어지면서 작가가 잉태한 작품보다 ‘큐레이터’가 제시한 ‘개념’에 무게가 실렸다. 소격동 정독도서관 맞은편에 자리한 아트선재센터를 이끈 ‘김선정’ 등 ‘나는 기획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큐레이터의 존재감이 도드라졌다.

1995년 창설된 제1회 광주비엔날레는 이러한 달라진 1990년대 한국미술을 ‘압축’시킨 사건이다. 이후 한국미술은 급속도로 ‘전지구화’의 물결에 몸을 맡겼고, 글로벌과 로컬이라는 서로 상반된 관점이 몸을 섞은 ‘글로컬(glocal)’이라는 새로운 양상을 당연시했다. 하랄트 제만, 오쿠이 엔위저 등 해외 스타 큐레이터들도 더는 낯설지 않았다. 단순히 점·선·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미술이 아닌 당대(Contemporary)의 문화적 담론을 실험하는 공간으로서의 미술. 1990년대 한국미술은 파인아트라는 홈그라운드를 넘어 ‘비주얼 컬처(Visual Culture)’라는 어웨이 경기에서의 승률을 높이기 위해 몸을 만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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