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 오후 1시 15분. 4교시 수업을 마치고 김수미(사범대 영교09) 씨가 정경관을 나섰다. 시각장애가 있는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그녀의 옆에는 김혜진(사범대 영교09) 씨가 있었다. 수미 씨와 혜진 씨는 5교시 수업이 있는 운초우선교육관으로 향했다. 수미 씨의 한 손에는 안내견 ‘하루’의 목줄이, 한 팔에는 혜진 씨의 팔이 껴있다. 셋이 하나가 된 이들의 모습이 시선을 끄는지 지나가던 사람들마다 고개를 돌린다.

현재 본교에 재학 중인 장애학생은 안암캠퍼스에 119명, 세종캠퍼스에 31명이다. 이들의 학교생활을 도와주는 학생이 바로 장애학생도우미다. 장애학생도우미에는 수업에 필요한 필기와 전반적인 학습을 돕는 학습도우미, 중앙도서관과 과학 도서관에서의 자료 수집 및 열람을 도와주는 콜도우미, 안암학사 및 4.18 기념관, 학생지원부 등에서 이동을 함께하는 이동도우미가 있다. 혜진 씨는 학습도우미로서 수미 씨를 돕고 있다. 혜진 씨에게 장애학생도우미를 하게 된 계기를 묻자 “원래 친하기도 하고 이번 학기 수업이 많이 겹쳤어요. 수미가 부탁도 해서 선뜻 하게 됐죠. 도우미를 하는데 특별히 어려운 점음 없지만 수업을 잘 듣고 필기를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수미의 학점까지 책임을 져야하잖아요”라며 웃는다.

도우미라고 해서 장애학생에게 도움을 주기만 하는 건 아니다. 혜진 씨는 “필기한 것을 워드작업을 하면서 한 번 더 보게 되고, 수업을 듣다가 졸리면 녹음을 해서라도 나중에 다시 정리해요. 제가 도움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받는 부분도 있죠”라고 했다.

3, 4교시 후에 바로 5교시가 있어 점심을 해결하지 못한 수미 씨와 혜진 씨는 교육관 1층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주문한 머핀이 나오자 혜진 씨가 수미 씨의 가방을 열고 머핀을 넣는다. 가방을 열고 머핀을 넣는 혜진 씨의 모습과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수미 씨의 모습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5교시 수업은 필기가 많기로 소문난 전공수업이다. 혜진 씨는 우선 본인의 방식대로 필기를 정리한 뒤 나중에 워드로 작업을 해 수미 씨에게 워드파일을 보낸다. 수미 씨는 받은 워드파일을 본교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대여한 ‘점자 노트북’으로 읽어낸다. 점자노트북은 USB를 꽂으면 바로 워드파일을 점자로 읽을 수 있는 노트북이다.

이어진 6교시 수업시간. “아까 그 수업은 필기위주인 것에 비해 이 수업은 조별활동 위주의 수업이에요. 저는 수미와 같은 조에 들어가 활동을 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편이에요”라고 혜진 씨가 말한다. 어도선(사범대 영어교육과) 교수가 강의실에 들어와 학생들에게 인사를 건네더니 수미 씨에게 와서 말을 건다. “수미야 어디까지 들었니, 재미있게 들었니?” 혜진 씨에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니 수업교재 점자책을 찾기 힘들어서 교수님이 오디오 파일을 구해준 것이라고 한다.

청각장애가 있는 엄대호(정경대 경제08) 씨도 필기도우미의 도움을 받는다. 청각능력이 조금 남아 있지만 교수의 입모양이 정확하지 않거나 마이크가 크게 울리면 수업 내용을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쉬는 시간에 수업조교가 부르는 이름을 대호 씨가 듣지 못하자 옆에 있던 도우미 김민지(정경대 경제08)씨가 알려준다. 출석을 부를 때마다 이런 식으로 한다고 한다. 대호 씨가 들은 금요일 1교시는 금융경제학 수업이었다. 그래프가 많이 나와 대호 씨는 수업 중간 중간 도우미 민지 씨의 필기를 참고했다.

장애학생지원센터 조교 겸 장애학생도우미인 정연길 씨는 “교과목마다, 교수님 수업방식에 따라서 필기도우미가 하는 역할이 다르다”며 “동영상을 보여주는 강의는 판서 위주의 수업보다 빠르게 읽어주고 필기를 해줘야한다”고 말했다

2008년 4.18 기념관 1층에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생기면서 장애학생도우미제도도 생겼다. 대부분 장애학생들은 도우미 제도에 만족하지만 시행 초기다보니 아직은 부족한 부분도 있다.

장애학생도우미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홍보가 부족한 상태다. 그러다보니 도우미 학생을 구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박지홍(경영대 경영08) 씨는 “아무래도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면 좀 불안하기도 해서 다들 아는 사람 선에서 구하려고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전문 지식이 필요한 전공수업이나 외국어 수업의 경우 도우미 학생이 그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면 서로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박 씨의 옆에 있던 한 장애학생은 "프랑스어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학생이 도우미를 했다"며 "나뿐만 아니라 도우미 학생도 난감해서 힘들었다"고 말했다.   박지홍 씨는 “일본에 간 적이 있는데 필기도우미가 2명인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필기도우미제도도 속기사와 같이 좀 더 전문화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대호 씨는 “장애학생이 수강신청을 하면 강사나 교수가 그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한번은 교수님께 자신의 사정을 설명드리고 수업자료를 부탁드렸는데 거절 당한적도 있어요” 라며 “교수님들이 장애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으신 것 같다”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박지홍 씨의 장래희망은 감사원에 들어가는 것이다. 감사원에 있으려면 스스로 깨끗해야 하는 하는데 그런 부분이 좋은 것 같단다. 엄대호 씨는 조만간 인턴십에 도전할 것이라고 한다. 장애학생으로서 불리한 점은 없겠냐고 물어보니 “사회에 나가면 비장애인들과 더 치열하게 경쟁하게 될 것이고, 지금까지의 차별보다 더 심한 차별을 받을 수도 있죠. 그러기에 더욱 노력해서 이겨내야죠”라며 웃는다. 그들이 가는 길이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혼자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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