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기사는 고대신문 1659호에 실린 ‘농구부 2010대학농구리그서 탈락’이다. 박스기사 하나를 쓰기 위해 점프볼(http://www.jumpball.co.kr)에서 수차례 VOD를 돌려보며 선수들 움직임 하나하나를 묘사하려 애썼다. 하지만 기사는 내 노력과 시간이 무색하게 여러 번의 교정을 받고 평범한 기사로 전락했다. 기사는 소설이 아니었다.

완도와 운동부
지난 1월 22일(토) 전라남도 완도로 내려갔다. 의욕 넘치게 운동부의 방학일정을 취재하려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체육위원회는 동행에 난색을 표했다. 처음해본 취재요청이 서투른 탓이었을까. 설상가상으로 직원들에게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취재요청을 하는 바람에 사과를 해야 했다. 사과를 하고 동행을 허락받았다. 다음날 아이스하키부가 전지훈련을 떠나는 시간에 맞춰 함께 차를 타고 완도로 내려갔다. 출발은 설렘이 가득했다. 운동부와 친해져서 좋은 기사를 쓰고 말리라는 기대. 그러나 기대와 달리 우락부락하게 생긴 운동부와 무뚝뚝한 그들의 재미없는 농담을 듣고 있자니 걱정이 밀려왔다. (그들은 우리를 보며 ‘스포츠 서울’에서 온 기자들이라고 후배들을 속였다.) 버스 안에서 한잠을 잔 것 같은데도 완도로 가는 길은 너무도 멀었다. 휴게소를 두 번이나 멈춰 선 버스는 여섯 시간 만에 완도관광호텔에 도착했다. 이동만으로도 피곤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축구부 저녁 훈련을 취재하기 위해 버스에 다짜고짜 합승을 했다. 체육센터에 도착하니 농구부가 이미 훈련을 진행 중 이었다. 덕분에 쉽게 두 개 운동부의 취재를 마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감독과 선수들에게 말을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의 무뚝뚝한 표정이 불편하다. 취재를 많이 했지만 여전히 선수들에게는 말을 걸기가 힘들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음날 새벽 6시부터 일어나 아침 훈련을 하는 빙구부를 동행했다. 카메라를 쥔 손이 떨어질 듯 아려왔다. 차라리 카메라를 던져버리고 함께 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취재를 모두 마치고 나니 돌아가는 길이 막막했다. 돌아오는 길 역시 길고 긴 여정이었다. 왕복 열 두 시간을 차 안에서 있었더니 당분간 여행은 가고 싶지 않았다.

프로농구 드래프트

허재, 강동희, 그리고 이민형 감독

며칠 후 1월 31일(월) 오후 2시에 서울교육문화회관 거문고홀에서 ‘2011 KBL 드래프트’가 열렸다. 하필 그날은 신문사 휴가였다. 다른 기자들이 쉬는 날 취재를 하려니 괴로웠다. 또 버스를 잘못 타 30분이나 드래프트 장소에 지각을 했다. 다행이도 외국인 선수지명이 막 끝난 참이라 본교 선수들의 지명은 시작되지 않았다. 취재도 쉽지 않았다. 전날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본교 선수들 프로필을 공부하고 갔음에도 어리바리한 상태로 드래프트를 지켜봤다. 타 일간지 기자들에 밀려 삼성 썬더스에 지명된 유성호에게는 질문조차 하지 못했다. 사진을 찍는 것도 여의치 못 했다. 일반 농구팬들까지 몰려 카메라를 들이대는 통에 자리도 잡기 힘들었다. 사진은 사진기자에게 맡기고 기자석에서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전문 기자들이 부러웠다. 드래프트를 마친 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허재, 강동희 같은 거장들을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쉬는 날에 취재를 나온 보람은 이정도면 충분히 얻은 것 같았다.

프로 바둑 기사 조혜연
방학 내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조혜연 프로 인터뷰를 준비했다. 인터뷰를 무슨 한이 있더라도 성공시키겠다는 생각에 소속기원을 들쑤셔 연락을 받았다. 바쁜 조혜연 프로를 위해 일정을 조정한 끝에 인터뷰 날짜를 잡았다. 인터뷰를 잘 못하는 편이라 엄청난 준비를 했다. 하지만 하필 인터뷰를 하러가는 도중 턱이 빠졌다. 인터뷰 약속 10분전의 일이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처음에는 턱이 빠진 줄 모른 채 턱이 아픈 상태로 인터뷰를 하려했다. 하지만 도저히 통증을 참을 수 없어 동료 기자에게 연락을 했다. 인터뷰는 무사히 끝났고 고대신문 1663호에 기사가 실렸다. 내가 쓰려던 인터뷰 기사와 방향은 달랐지만 오히려 그녀의 이야기가 더 잘 드러나는 듯 했다. 내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다.

이 이상 취재 중 겪은 이야기를 다 쓰려면, 아니 신문사에서 있던 일을 다 쓰는 일은 힘든 것 같다. 시원한 병맥주를 들이키며 천천히 술술 이야기를 꺼내면 모를까.
내가 쓴 기사를 다시 살펴보니 뒷심이 부족한 것이 아쉽다. 시작은 그럴 듯하지만 마무리가 좋지 않다. 내 삶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다녔던 피아노학원, 미술학원, 태권도학원부터 고3 시절 그리고 고대신문에서까지. 지난 학기 내 기사는 끝으로 갈수록 엉망이 됐다. 개인적인 어려움과 학업의 이중고만으로도 충분했다. 신문사는 더 이상 내게는 짐이었다. 내 뒷심 부족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만년 우승후보인 아스날과 닮아있다. 어쩌면 내가 아스날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언젠가 아스날도 한번은 우승을 하지 않을까. 그때쯤 나도 한번 확실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학기 목표는 우승이다. 아니 마무리를 잘 짓는 것이다. 낙관을 찍는 다는 것은 그림에 자기 이름을 각인한단 이야기고 그림과 자기 이름에 책임진다는 뜻이다. 나 역시 바이라인이 달린 내 기사에 내 이름을 각인하고 내 이름에 책임져야겠다. 그런데 이 기사도 마무리가 영 좋지 못한 곳에 맞았다. 내가……. 내가……. 고대신문기자라니 아…….아니 안 돼! 역시 기사는 소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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