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11년도 1학기 마지막 신문을 만드는 기자들 (사진 =김슬기 기자 kimsg@)

 

 수습.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학교 행사가 열릴 때면 그 곳에 달려가야 했고, 수업과 겹치는 일정이 잡히면 수업을 포기해야 했다. 결강계가 나온다고는 하지만 학업에 대한 부담감은 언제나 날 뒤따라 다녔다. 목요일, 금요일 컴퓨터 앞에 앉아 아침 해를 보며 잠들었다. 여기에 익숙해진 내 몸은 평상시에도 밤 열두시를 낮 열두시인 것 같이 인식했고 작동했다. 내 자신이 로봇 같았다.

하지만 체력적으로 힘든 것 보다도 사람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기사에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내 무능력함이 더욱 날 짓눌렀다. 학생회장단 삭발식 기사를 쓸 때였다. 본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 총학생회장단이 머리카락을 잘랐다. 절박한 학생들의 목소리, 머리카락을 자르며 눈물을 참는 여학생대표들..왜 늘 이런 모습들이 반복돼야 하는지..열심히 기사를 쓰고 싶었다. 좋은 기사를 내고 싶었고. 하지만 목요일 새벽 기사 초고를 완성하고 부장님께 제출했을 때 심한 자괴감에 시달렸다. 내 능력 부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미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눈을 붙이려고 누웠지만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 학기 동안 써내려간 모든 기사가 나를 채찍질했다.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더 많은 의문을 갖게 했다. 특히 ‘선배어디서일해요’ 코너 기사를 쓰기 위해 기자 선배들을 찾아 뵀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선배님은 기자는 지성인이라고 했다. 시민들의 눈을 대신해서 사회 곳곳에 파견된 감시견의 역할을 한다고 말씀하셨다. 난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가진 적이 없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학보사 기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선배님이 해준 말씀을 이곳에 다 옮길 수 없겠지만 인생 선배로서 해준 선배님의 많은 조언들은 내 삶을 전환시켰다.

한 학기동안 나에게 여러 고비가 찾아왔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지난 학기 마지막 호 신문을 제작할 때였다.

한 주 동안 ‘선배어디서일해요’코너를 위해 기자 선배님 두 분을 인터뷰해야 했고 상담센터특집에 실릴 인터뷰기사와 체험기를 완성해야 했다. 약대 개교선포식도 가야했다. 또 총학중간평가라는 어찌 보면 한 학기 가장 중요한 기사도 써야했다. 시간이 없었다. 일주일 내내 압박감에 시달렸다. 이렇게까지 일이 몰린 적은 없었는데, 너무 힘들었다. 목요일 저녁까지 취재에 매달렸고, 금요일 새벽까지 추가취재를 했다. 목요일 아침부터 토요일 오후까지 단 한 시간도 눕지 못했다. 기말고사 전 마지막 수업도 들어가지 못했다.

난 슬퍼도 눈물은 잘 흘리지 않는데, 모든 게 서러워서 몇 시간을 울었던 것 같다. 잠깐 열린 회의가 끝나자마자 동기들 손에 이끌려 1층으로 내려왔다. 옆에서 날 안아주고 다독여줬다. 국장님, 부장님까지 내려왔다. 한 학기동안 날 쪼고 쪼던 부장님이 한없이 미웠는데 이 때 처음으로 선후배사이처럼 속 터놓고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부장님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꾸 미안하다고 하니까 더 눈물이 났다. 고른 햇살에서 부장님과 떡볶이를 먹으며 기운을 차렸다. 눈물의 떡볶이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몇 시간이 지나있었다. 어느 것 하나 내리면 안 되는 기사였기에 퉁퉁 부은 눈에 인공눈물을 넣어가며 기사를 썼다. 토요일 아침 8시, 세종총학중간평가를 시작했다. 지금 마감해도 늦을 시간이었다. 기사를 못 내면 나 때문에 세종이 소외될 수도 있다는 죄책감에 미친 듯이 학우들 설문을 분석하고 기사를 썼다. 토요일 저녁, 자취방에 돌아와서 눈을 붙였다. 일어나보니 일요일 밤 11시였다. 한 학기가 진짜 마무리 된 순간이었다. 기사를 다 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제대로 빽도 못 봤기에 기사가 걱정되고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남은 일주일동안 시험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막막해졌다. 한편으론 만약 다음 호가 남아있었다면 그만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학보사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체력적으로 지치고 정신도 피폐해져갔다. 신문사라는 핑계로 학업도 소홀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언제나 기대 이상으로 나에게 많은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헌혈왕, 바둑 금메달리스트, 신춘문예 당선자, 모형 항공기 동아리, ROTC학군단장, 학생총회, 상담센터, 낙산사 봉사활동, 삭발식, 부총장님 등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하고 많은 것을 경험하면서 나 자신이 자라는 게 느껴졌다.

대학사회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를 반증하듯 학내 언론의 영향력이 전보다 많이 줄어들었고, 고대신문을 손에 들고 있는 학우들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학보사는 대학사회 내에서 학생과 학교의 소통창구역할을 해야 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존재이유를 갖고 있다.

이제 여름 방학이다. 취재부 수습기자에서 특집부 기자가 됐다. 다음 학기가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내 삶에서 기자로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싶다. 물론 이번 학기엔 신문사라는 핑계를 걷어내고 학업에도 충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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