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정식 사죄하라. 국제법에 따라 피해자에게 배상하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주한 일본대사관을 향해 목 놓아 외쳤다. 울음 섞인 외침에는 지난 수 십 년간 켜켜이 쌓인 한이 가득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수요시위는 지난 1992년 시작됐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 열리는 수요시위는 14일 1000회 째를 맞는다. 지난 11월 30일 제 998회 수요시위를 찾았다.

기온이 뚝 떨어지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궂은 날씨에도 6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언제나처럼 주한일본대사관 앞 천막에 자리했다. 이날은 수요집회에 앞서 故노수복 할머니의 추모제가 있었다. 마치 할머니들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추모제와 집회 내내 하늘도 함께 울었다. 노수복 할머니는 70년 전 21살의 나이로 일본군에 끌려가 싱가포르와 태국에서 위안부를 생활을 강요당했다.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태국에 머물었던 노 할머니는 지난 11월 초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윤미향 대표는 “할머니들이 당하고 겪었던 역사와 아픔을 고스란히 저희 몸으로 살아내겠습니다”라며 “역사를 같이 나눈 할머니의 친구들, 동생들과 해방된 세상에서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영결식에 참여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노수복 할머니의 영정과 유골함을 앞에 두고 “할머니, 할머니, 안녕히 가세요. 부디 편히 가세요”라며 오열했다. 한 많은 세월을 뒤로하고 먼저 떠난 노 할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에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운구차로 영정과 유골함을 옮기는 사이 노수복 할머니가 생전 즐겨 불렀던 아리랑이 고인의 육성으로 울려 퍼졌다. 타국 생활을 오래해 한국말을 거의 잊었다는 노 할머니는 아리랑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아리랑에 맺힌 노수복 할머니의 한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두의 마음 한구석까지 전해졌다. 할머니들은 고인의 유골함을 실은 운구차가 떠나갈 때까지 붉어진 눈시울로 배웅했다. “잘가요, 할머니. 잘가요. 우리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요” 고국으로 돌아온 노수복 할머니의 유해는 부모가 뭍인 경북 예천군 선산에 안장됐다.

이윽고 수요시위가 시작되자 윤미향 대표가 “일본정부는 정식 사죄하라”며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궂은 날씨에도 추모제와 수요시위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6명 △정대협 여성단체 △시민단체 △일반 시민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일본정부의 정식 사과와 배상,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문제해결을 요구했다. 윤 대표는 “아직도 우리와 할머니만이 문제 해결 요구를 주장하고 있다”며 “대통령의 입을 열게 할 사람은 국민”이라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구했다.

올해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4명이 세상을 떠나 이제 65명밖에 남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1000번의 수요일이 1000번 외면당하더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1001번 째 수요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세상이 아무리 할머니들을 외면할지라도 언제까지고 외칠 것이다. “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올바르게 임하라. 한국 정부는 국가로서의 책임을 다하라”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