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85학번 고대여자입니다. 고대와 저의 인연은 이른 1985년 겨울 입학원서 접수 마감일늦은 오후에 시작됩니다. 평생 처음 고대를 방문했던 저는 고만 어둑어둑해진 캠퍼스에서 길을 잃었는데 그 낯설던 교정 반대편에서 마침 걸어오던 어른같이 뵈던 두 명의 고대 남학생이 초조해하며 길을 묻던 제게 친절하게 갈 길을 일러주었습니다. 고마움에 가득 차서 인사하고 급히 원서접수처로 뛰어가는데, 그런 제 등뒤로 그들의 힘찬 목소리가 너무나 유쾌하게 울렸습니다. ‘합격을 축하합니다!!!’ 미리 합격인사까지 건네는 그 따뜻한 격려에 웃음이 터지면서 그 때 결심했습니다. “나, 고대 올래.”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은 사라진 고대 운동장 위 본관 앞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센스있는 고대 선배들, 그들 덕분에 제대로 박힌 고대에 대한 첫인상은, 마치 첫 정을 준 양 애틋한 ‘고대바라기’로 제 마음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졸업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 간 제가 공부하러 간 학교에서마다 S대나 Y대 등 (잘 뭉치지 못하는!) 타학교 출신들의 시샘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고대졸업생들과의 모임을 시작하고 꾿꾿이 지속해왔는지, 게다가 미국서 보낸 학창시절에 비하면 고대에서 보낸 시절은 고작 4년이라 솔직이 신기합니다. 그런데 그건 아마도 386세대 특유의 의식, 즉 지식인이 아닌 지성인으로서 가져야 할 한국사회에 대한 책임을 묻던 당시 학교 정서가 제게 남긴 고대다운 기상과 자긍심 덕분으로 미국땅에선 더 그리워지던 고대정신 탓이기도 했습니다.  
 
간호학이 뭔지 모르고 어려서 읽었던 나이팅게일 이야기 하나를 밑천으로 간호학과에 발을 들여놓았던 제가 지금은 교수가 되어 간호학을 가슴과 머리로 가르치다니, 문득 저와 간호학의 인연도 신기해집니다. 사실 저는 간호학이 저와 맞지 않는 듯해서 저학년 때 방황을 많이 했었습니다. 지금도 열악하지만 당시에 더 열악했던 간호학과의 교육환경이나 타 학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륜이 짧은 간호학의 수준이나 갈 길을 보여줄 만한 role model의 부재를 접할 때마다 간호학에 대해 가졌던 호기심은 실망으로 채워지곤 했었습니다. 그렇게 2학년이 끝나가던 어느 날, 진로에 대한 여전한 갈등으로 깊어져 가던 고민과 복잡했던 제 머리가, 어느 순간 생각을 바꾸니 신기하게도 머리가 맑게 개이고 결연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즉, “role model이 없으면 내가 그 role model이 되자. 길이 없으면 내가 길을 만들어가면 된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자연계와 인문◦사회계의 특성을 고루 갖춘 임상학문인 간호학이 의학처럼 산 경험과 산 지식을 바탕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더 나은 차세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임상실무경험을 충분히 쌓은 후 석사와 박사과정을 밟기로, 그리고 한국의 간호학이 benchmarking하는 미국에 가서 임상경험과 학업을 계속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조국에 돌아와 내 첫 정을 준 할 일 많은 모교에 내가 가진 좋은 것을 보태자고 뜻을 세우고 나니 동기부여가 되어 그때부터 개척자의 마음으로 간호학을 진지하게 대할 수 있었습니다. 졸업 후 미국의 손꼽는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의 임상현장에서 십 수년간 간호사(RN)로 일하면서 저는 ‘간호학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비로소 “간호는 caring”이라고 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제대로 돌보고 돕는데 필요한 간호학 지식과 skill은 사실과 근거에 기반한 science지만 이를 온전히 적용하는 데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compassion이 전제되어야 하기에 그 행함은 Art이기도 한 것입니다. 오늘 날 세상은 약자가 아닌 강자가 되라고, 섬
김보다 다스림의 자리에 서라고 끊임없이 우리를 부추기지만, 이와 달리 간호학은 섬김의 영향력을 가르치는 용기있는 귀한 학문입니다. 약자를 돌보고 대변하기 위해 강해지기도 하고 약자든 강자든 차별 없이 인간애로 포용하는 윤리의식 높은 실천적 학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석사과정 2개와 박사과정을 미국 동남부의 University of Virginia와 중서부의 University of Michigan at Ann Arbor에서 각각 마쳤는데 미국의 간호학 석사과정이 임상중심인 덕분에 미국서 쌓은 수년의 임상경력을 토대로 심혈관계질환과 재활 및 만성질환관리를 specialty로 하는 전문간호사과정을 밟았고 미국의 board certified nurse practitioner 자격증까지 갖춘, 현재 한국에는 불과 몇 안 되는 간호학교수 중 한 명입니다. 석사과정이 임상중심인데 반하여 박사과정은 연구중심이어서 저는 오랜 임상경험에서 갖게 된 질문을 주제로 하고 싶었던 임상연구를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우울증 전문간호사이자 소속감 이론의 대가인 지도교수님을 비롯하여 저명한 심장내과 의대교수님들의 지도를 받는 등, 제 관심영역인 심장질환과 우울증으로 인한 사망률과 유병률이 매우 높은 미시간 주에서 공부하면서 그 분야 대가들의 영향까지 받는다는 것은 과연 미국 동료들도 부러워하는 인연이요 특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도교수님이 암 투병 중이라, 저는 때때로 황량한 광야 길을 혼자 터벅터벅 걷는 막연한 심정으로 박사과정을 지치고 힘겨워하기도 했습니다. 지도교수가 한창 활동적이어서 자신의 박사학생을 여러모로 잘 밀어주는 경우를 보면 부럽기도 했지만, 제 마음을 지키며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였을 때 다른 길이 열리는 경험도 했습니다. 즉, 교수님만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라 저 혼자 힘으로 노력해서 연구비를 따온 신나고 감사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실험실에서 하는 순수실험연구와 달리 사람을 대상으로 그것도 치명적인 급성 관상동맥증후군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이들을 일일이 만나 자료수집을 진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아 의기소침해질 때,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는 마음으로 저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기 위해 박사과정을 선택했던 제 초심을 기억하게 해준 건 바로 연구에 참여한 환자분들,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의미 있는 연구를 하라며 격려해준 많은 환자분들이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박사학위를 무사히 받을 수 있었는데, 이후 이어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걸어가는 것 같던 2년간의 post doctoral fellowship 과정 또한 인내심이 부족한 저를 위한 훈련의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미시간 대학 박사과정에 올 때 full scholarship이라는 큰 선물을 받고 온 저에게 이런 광야체험이 없었더라면 저는 가난한 마음과 낮아짐이 주는 insight를 배울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허탄한 욕심을 분별하여 버리고 자족을 배운 덕분에 경쟁적이고 황폐해지기 쉬운 풍토에서도 초심을 지켜갈 수 있었고 나아가 학업 외 영역에서도 초심에 기반한 저의 역량을 실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예로, 미시간 대학 한인 학생회의 최초 여자 회장으로서 servant leadership을 실천하여 수년 간 이기심과 불신으로 와해되어있던 학생회를 회복하고 학연에 치우치지 않은 teamwork과 성의 있는 communication으로 구심점을 마련하며 나아가 미시간 대학 캠퍼스에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등 민간외교도 해냈습니다. 또한 소외된 Asian minority group과 노인들의 건강을 위한 연구도 진행하였고, 언어장벽이 있는 한국 환자분들을 위해 미시간 대학병원의 통역사로 자원하여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충분히 가치 있는 저의 산 교훈은 귀국한지 4년이 되어가는 제게,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 여기고, 일도 중요하지만 사람은 더 중요하며, 다양함과 개성이 존중되는 inclusive한 풍토를 세워가라고, 비록 그 길이 좁은 길일지라도 소신 있게 정성을 다해 걸어가라고 오늘도 그 길 위에 저를 세웁니다.
신나미 간호대 교수 간호학과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