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감상하거나, 애무를 할 때 왜 눈을 감을까?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각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어서, 하나의 감각이 약해지면 다른 감각이 두드러진다. 음악을 감상할 때 눈을 감아 시각을 차단하면 음악소리를 정확히 들을 수 있으며, 성적 감각도 눈을 감으면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책상 모서리에 발가락을 부딪치면, 반사적으로 발가락을 문지른다. 촉각과 통각도 서로 경쟁관계에 있다. 아픈 곳을 문지르는 것은, 촉각자극이 통증을 완화시킨다는 것을 알고 하는 행동이다. 아주 어린 아이도 아픈 곳을 문지르는 것을 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 진통방법을 알고 있는 듯하다.

모기에 물렸을 때, 가려운 부분을 피가 날 정도로 긁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피가 난다는 것은 피부라는 방어벽을 무너뜨린 것으로 가렵지 않다면 상상도 못할 자해행위이다. 통각과 가려운 감각, 이 둘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싫어하는 피부감각의 쌍두마차이다. 당신은 어느 것이 더 싫은가? 통각과 가려운 감각이 모두 불쾌하지만, 둘 다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방어정보이다. 통각은 우리를 위험한 자극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며, 작은 기생물에 의해 유발되는 가려운 감각은 긁어서 이 기생물을 떼어내게 만든다. 통각과 가려운 감각도 경쟁관계에 있다. 가려운 부분을 피가 나도록 긁으면 아파지면서 가려움증이 사라진다. 통각이 가려운 감각을 완화시킨 것이다. 이런 경험적 증거 외에도, 통각을 유발할 정도의 열 자극 또는 냉 자극도 가려움증을 완화시킨다는 연구결과가 통각과 가려운 감각의 경쟁관계를 증명하고 있다. 즉, 어떤 자극이든 그 강도가 강하여 아파지게 되면, 가려움증이 사라진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전공학적으로 통각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 생쥐에서 가려움증이 나타나며, 진통제인 모르핀은 통증을 완화시킴과 동시에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통증과 가려움증 중 어느 것을 더 싫어할까? 가려운 부분을 피가 나도록 긁는 것을 보면, 가려움증이 더 싫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과도하게 긁으면 피부가 상하고 통증이 유발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려우면 긁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피가 나게 아프도록 긁었음에도 계속해서 긁게 되며, 손이 닿지 않는 곳이 가려우면 미치도록 고통스럽다. 이를 생각하면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을 긁기 위해 만든 ‘효자손’은 최고의 발명품임에 틀림없다. 가려운 부위를 긁으려는 집착에 가까운 행동은 어디서 오는 걸까? 긁고 난 후, 아슬아슬한 통증과 함께 오는 시원함, 누구나 경험했을 이 쾌감(hedonic sensation)이 긁으려는 욕망의 근원이라 추정된다.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논란의 대상이 되고는 있지만, 이 시원함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쾌감 중 하나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결국, 이 쾌감은 긁어서 난 상처에 대한 보상이고, 그로 인한 통증마저 감수하면서 가려운 피부를 긁는 것이라 생각된다.

긁을 때의 쾌감은 만성 가려움증 환자에게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의 경우, 긁는 행동의 종료가 가려움증이 해소되는 시점이 아닌, 긁어서 통증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더 이상 쾌감을 느끼지 못할 때까지라는 임상연구결과가 보고되었다. 또한, 최근 최첨단의 뇌영상 진단기기(PET 또는 fMRI)를 통해 쾌감과 관련이 있는 전두엽 부위가 가려움증 및 긁는 행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가려움증-통증-쾌감으로 연결되는 감각도미노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통각과 가려운 감각은 서로 다른 신경섬유에 의해 정보가 전달되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감각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만성상태의 통증과 가려움증이 서로 비슷한 기전에 의해 유발되는 것으로 알려져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향후 치료제 개발에 단초를 제시하고 있다.

나흥식 의과대 교수·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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