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선생은 수필 <술>에서 술 못하는 당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셨다. “‘술도 못 먹으면서 무슨 재미로 사시오?’하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렇기도 하다.” 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수필은 술 못하는 사람의 한탄을 담았다. “술을 못 먹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울할 때 슬픔을 남들과 같이 술잔에 잠겨 마시지도 못하고 친한 친구를 타향에서 만나도 술 한 잔 나누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슬픔을 술로 달래지 못하는 서러움과 술로 인한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다.

취하지 못해 문제가 생기는 한편 취하는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술좌석에서 맨 먼저 한두 번 나에게 술을 권하다가는 좌중에 취기가 돌면 나의 존재를 무시해 버리고 저희들끼리만 주거니 받거니 떠들어댄다. 요행 인정 있는 사람이나 끼어 있다면 나에게 사이다나 코카콜라를 한 병 갖다 주라고 한다.” 모든 일이 술로 맺고 풀리는 우리나라에서 술 못하는 이는 술자리에서 작아지게 마련이다. “술 못 먹는 탓으로 똑똑한 내가 사람 대접 못 받는 때가 있다.”는 피 선생의 말에서 술 못하는 이가 느끼는 술자리에서의 압박감이 느껴진다.

술을 못하지 않는 나로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술을 못한다고 하면 강권은 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을 다시 쳐다보지는 않았다. 간혹 ‘술을 못하는데 왜왔지’하는 모진 생각이 스친 적도 있었다. 분위기에 못 껴 무료해하는 표정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내가 도와줄 방도는 없다고 생각했다. 강권하는 못된 버릇은 없지만 술 못하는 이에 대한 배려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개강 후, 선후배들과 돈독해지기 위한 자리에 술이 빠질 리 없다. 굳이 행사가 없더라도 술자리를 갖는 건 다반사다. 술이 서로 간의 벽을 허물고 가깝게 해주는 건 맞다. 그렇지만 술자리가 술 마시는 우리끼리만 흥겹고 술 못하는 사람들은 오고 싶지 않은 자리라면 문제다. 술에 몸을 맡기고 즐거운 것도 좋지만 그 틈에 울상인 이가 있다면 사이다라도 챙겨주는 ‘인정 있는 사람’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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