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성 전국대학노동조합 고려대학교지부장
제가 연세대를 졸업하고 대한항공에 입사하였던 때나 대한항공을 그만두고 고려대의 행정직원으로 이직할 때만 해도 교직원은 그리 선망의 직장은 아니었습니다. IMF 이전에 대학교를 다닐 때에는 취직걱정 따위는 한 적도 없었고 저의 꿈은 당연히 글로벌기업의 CEO였습니다. 

그러나 IMF가 터진 1998년 어렵게 들어간 대한항공에서 저를 비롯한 직원들은 고통분담을 핑계로 월급이 동결되고 삭감될 때, 최고경영자 일가는 1조원이 넘는 탈세로 구속수사를 받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노동자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우리는 재벌일가의 배만 불리게 하는 역할에 불과하며, 기업의 꽃이라는 임원도 재벌일가에 충성을 다할 때만 인정받는 허울 좋은 노동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회의감이 저를 정의와 진리가 살아있을 법한 고려대학교로 오게 만들었습니다. 미래의 인재를 키워내는 대학교에 근무하면서 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의지로 이직을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은 대학교도 철저히 계급중심의 사회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장과 이사회부터 교수, 사무직원, 기능직원, 계약직원, 용역직원의 순서로 기업보다 더 구조화된 계급사회이며 계급을 절대로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번에 신입 교직원 8명을 뽑는데 1100명이 넘게 지원하였고, 평균 경쟁률은 140대 1이 넘었습니다. 신임 교직원 중 대부분이 고려대 졸업생이며 불합격된 지원자 중에도 많은 고려대 졸업생들이 포함되었습니다. 또한 지금도 본관 앞에서는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이하 강사노조)의 천막농성이 진행중입니다. 교수가 되지 못하고 시간강사로 전전하는 고려대 졸업생도 역시 많을 것입니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바로 몇 년 후에는 계급사회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예비노동자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의 이상은 크고 높을 것입니다. 저의 대학시절처럼 기업의 CEO를 꿈꾸거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적어도 노동절에 서울광장에 나와 총파업 투쟁을 선언하는 노동자가 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대부분의 여러분이 실제로 되는 것은 기업의 노동자입니다. 그나마 IMF 이후 14년간 이어진 취업난은 명문사학인 고려대 졸업생마저도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는 것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올해 초 졸업식 때 본관 앞에서 장기간 힘들게 농성하는 강사노조를 지지해주기는커녕 졸업사진에 나올까봐 철거를 요구하고, 총학생회의 2012 교육투쟁(안)에서 강사노조와 미화노조(청소용역노조)의 투쟁 지지를 폐기하는 모습을 보며 고려대 학생들이 예비노동자로서의 자신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교직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 본부에서는 교직원마저도 정규직의 채용을 최소화하고 비정규직을 계속 늘리고 있습니다. 정규직이 440명이지만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많은 470여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여러분이 지원할 수 있는 고려대 교직원마저도 줄어들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이 아무리 좋은 직장에 다니더라도 몸뚱이 하나로 먹고살며 다치거나 해고되면 생계가 막막해지는 것은 청소노동자나 마찬가지입니다. 고대생 들이 학내에서부터 노동과 노동자에 대해 편견을 버리고 관심을 갖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미래를 개선해 나가는 시작일 것입니다. 강사노조의 강사료가 현실화되는 것이, 청소아주머니의 월급이 인상되는 것이, 비정규직 교직원이 정규직 되는 것이 바로 여러분이 먹고 사는 일이 나아지고 세상이 살만해지는 첫걸음이라는 것임을 우리는 노동절을 보내며 반드시 알아야 할 것입니다.

박종성 전국대학노동조합 고려대학교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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