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다르지 않다. 스티브 잡스의 명언을 수첩에 붙이고 고3 시절을 보냈다. 안주하지 말라는 강력한 주문은 ‘오늘의 할 일’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갔다. 요새는 1시간 반이 넘는 통학시간이 아까운 것 같아서 책 한 권을 갖고 다닌다. 문제는 버스에서 책을 안 읽은 날이면 괜히 우울하다. 시간을 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탄 버스에서조차 맘 편히 쉬지 못한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옭아맨다. 정신없이 바빠야 알차게 사는 것 같고, 조금이라도 쉬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불안하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피로사회>에서 현대인들은 긍정성이 지배하는 ‘할 수 있는’ 사회에서 과잉활동을 하게 된다고 분석한다. 만약 긍정의 힘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인들에게 한병철은 과잉활동에 맞서 ‘깊은 심심함’을 느끼고, 사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고3 시절 자신을 채찍질하던 문구가 있을 것이다. 그 채찍질이 버릇이 됐는지 지금은 쉬는 시간도 뉴스피드를 확인하기 바쁘다. 명사들의 명언이 올라오면 ‘좋아요’를 누르고 또 한 번 긍정의 힘을 발휘해보겠노라 다짐한다. 우리는 언제쯤 깊은 심심함에 빠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