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거친 파랑 위를 두 시간 남짓 달리고 의자에서 불편한 새우잠을 자다 눈을 뜨자 뽀얀 물보라 사이로 ‘독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넓지만 몹시 복작이던 갑판 위에 섰을 때, 섬은 조용하게 입을 다문 채 바람으로 우리를 훑었다. 처음으로 직접 본 독도는 사진으로 보고 느꼈던 것보다 더 아슬아슬하고 고요한 땅이었다.
산산이 부서지는 햇빛 속에 서 있는 날카로운 서도의 모습은 마치 서툴게 깎아놓은 연필을 연상하게 했다. 그 곁에 선 동도보다 더 높고 험준한 서도는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다. 더없이 예민한 서도의 윤곽은 그들 두 바위섬이 이토록 험한 바다 한 가운데서 외롭게 버텨낸 시간들을 느끼게 했다.
대한민국 최동단에 있는 섬 동도는 옆에 서 있는 서도에 비해 비교적 둥그렇고 부드러운 모양이었다. 동도의 녹색 골짜기 사이로는 독도경비대가 머무는 건물이 보였고, 한쪽에는 배가 내릴 수 있는 부두 시설이 있었다. 나란히 선 동도와 서도는 푸른 이불 속에서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어린 오누이 같았다.
사람이 함부로 탐낼 수도, 탐내서도 안 되는 동심을 간직한 섬, 우리나라 수평선 끝에 위치한 독도의 첫인상이었다.

독도로 가는 길
8월 18일의 늦은 밤, ‘독도수호국제연대(독도연대)’에서 운영하는 ‘독도아카데미’가 독도탐방을 위해 서울을 떠났다. 대학생 150명, 고등학생 50명, 독도연대 운영진 50여 명, 도합 250여 명이 우리나라 최동단의 섬 독도를 보기 위해 떠난 가슴 벅찬 여정이다.
독도아카데미는 일본의 전략적인 영토침탈에 대비하여 영토주권교육과 독도탐방훈련을 통해 대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영토주권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2007년에 독도연대에서 설립한 대학생 조직이다. 작년부터는 ‘High School’도 운영되어 고등학생들도 함께 독도탐방을 떠난다. 벌써 22번째를 맞은 독도아카데미의 독도탐방에 기자들이 동행했다.
▲ '독도아카데미'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항의 피켓을 들고 있다


독도아카데미의 독도 탐방 경로는 ‘서울→정동진→묵호→울릉도→독도’였다. 학생들은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연신 “날씨 좋아야 하는데!”라며 재잘거렸다. 독도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이 1년에 불과 40여 일에 불과해, 우리가 그렇게 운이 좋을지는 모를 노릇이었다.
해가 뜰 무렵 정동진에 닿았다. 아직 일출 전이라 푸른 어둠이 내린 정동진 역전의 식당에서 아침으로 설렁탕을 먹고 해돋이를 구경했다. 독도아카데미 학생들은 정동진 해수욕장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한 ‘독도스타일’ 퍼포먼스를 연습했다.
“독독독 독도는 한국스타일~ 섹시 아일랜드~”
해돋이를 구경하러 나왔던 사람들도 ‘독도스타일’ 노랫소리를 듣고 주위로 몰려들어 춤을 추는 학생들을 구경했다. 200여 명의 학생들이 다함께 싸이의 말춤을 추는 모습은 우습기도 하고 무척 즐겁기도 했다. 밤새 차를 타고 와서 피곤할 법도 한데, 다들 유쾌한 얼굴로 해변에서 몸을 흔들었다.

정동진을 떠나 묵호에 도착, 울릉도로 가는 썬플라워호에 올라탔다. 날씨는 좋았지만 거대한 파랑은 느리고 묵직했다. 다들 배에 올라타기 전 멀미약을 삼키기에 바빴다. 네 시간 가까이 배를 타고 가니, 드디어 커다란 섬 울릉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온몸을 펄럭이게 하는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그러나 울릉도의 바람은 시원하기보다는, 손가락에 들러붙어 나풀거리는 솜사탕 가락처럼 온몸을 감싸며 끈적거리는 바람이었다. 점심을 먹으며 잠깐 둘러본 울릉도는 생각보다 더 거대한 섬이었다. 가파른 해안가에는 방풍림이 짙었고, 길게 늘어진 방파제 끝에는 여행 책에서나 볼 법한 작고 하얀 등대가 그림같이 서 있었다. 울릉도를 흔히 독도의 ‘모섬’이라고 하는데, 울릉도의 크기를 가늠해보니 독도와 나란히 있으면 정말 ‘어머니’같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바로 독도로 가기 위해 짐을 모두 여객선 터미널에 맡기고 이번에는 씨플라워호에 올라탔다. 학생들의 얼굴에 설렘이 가득 묻어났다. 배에 타기 전 하늘을 보니 몹시 파랗고 햇빛도 맑아 독도에 들어가기에 더없이 좋은 날인 듯 했다.

강인해서 외로운 섬, 독도
그러나 배에 타기 전 날씨와는 달리 파도는 울릉도에 들어올 때보다 더 속도가 빨랐고 그 파랑의 굴곡도 더 컸다. 그렇게 2시간 남짓을 달려, 드디어 독도가 보이는 곳에 다다랐다. 처음 배에 탔을 때 느꼈던 불길한 느낌대로 “기상 상태로 인해 독도에 접안할 수 없으며, 독도 관광은 독도에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배에서 보는 것이 원칙”이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결국 독도 땅을 밟지 못하고, 배가 독도 주위를 돌면서 독도 관광이 시작됐다. 독도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준비한 퍼포먼스는 아쉽게도 볼 수 없게 됐다. 독도아카데미 22기 운영진인 박상욱(공과대 기계공학08) 씨는 “독도에 내리지 못해 아쉽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마음이 벅차다”며 “나중에 개인적으로 꼭 한번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인 ‘나눔스토어’와 독도연대에서 준비했던 두 부부의 결혼식은 아쉽게도 독도의 흙 위가 아닌 선상에서 치러졌다. 이번에 결혼식을 올리는 두 쌍의 부부는 나눔스토어에 독도 결혼식을 신청한 80여 커플 중에서 뽑힌 행운의 부부다. 주례는 고창근 독도연대 집행위원장이 보았고, 함께 간 대학 학보사 기자들뿐만 아니라 MBC, YTN 등 방송사 기자들이 취재에 합세해 더없는 북새통 속에서 결혼식이 치러졌다. 먼저 배 안에서 결혼식을 치른 커플은 천정현 씨와 임지현 씨로, 결혼 뒤 외국에 신접살림을 차릴 예정이다. 임지현 씨는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한국에서 가장 특별하고 중요한 장소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한다는 게 너무 행복해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갑판 위에서 결혼식을 치른 이성준 씨와 한아름 씨는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7년 동안 살다가 독도에서 결혼식을 치르기로 했다. 해군부사관 이성준 씨는 까만 턱시도 대신 하얀 해군 제복을 입었다. 이성준 씨는 “내가 지키고 있는 영해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돼서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독도의 역사를 찾는 사람들
울릉도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도동항에서 가파른 언덕을 따라 꾸역꾸역 20분쯤 올라가면 해도사(海道寺)라는 조그마한 절이 나온다. 이 절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독도에 대한 자료를 연구하고 수집하는 ‘독도박물관’이 있다.
▲ 독도박물관 표지석


1997년 국내 유일의 영토박물관으로 세워진 독도박물관은,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임을 증명하는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고 연구 및 전시를 하고 있다. 1층의 특별전시실에는 ‘세계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동쪽 바다 조선해(Sea of Korea) 재조명’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근세에 제작된 유럽 열강과 일본의 지도에 실제로 동해가 우리나라의 바다로 표기되었음을 전시물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원휘 학예연구사는 “최근 외국인 방문객이 늘어났는데, 특히 이번 전시를 보면서 ‘전혀 몰랐다’며 진지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2층의 제3상설전시실에는 1950년대에 활약했던 ‘독도의용수비대’의 활약상이 전시돼 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1953년 울릉도 주민들에 의해 설립돼 1956년에 경찰에게 임무를 인계할 때까지 독도를 수비했던 순수 민간조직으로, 일본 순시선과 항공기를 격퇴시키는 등 무력 충돌을 감수하며 독도를 지켜냈다. 직접 무기를 들고 독도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은 그동안 단순히 감정적으로만 대응해왔던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했다.

독도박물관 옆에서는 ‘독도전망대’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 망향봉에서는 맑은 날에는 육안으로, 흐린 날에는 전망대에 있는 망원경으로 독도를 볼 수 있다. 울릉도에 왔을 때 독도에 가기는 힘들다면 이곳에서 독도를 보고 가도 좋을 성 싶다.

다시 뭍으로 올라가는 길,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서 어제보다도 더 거친 뱃길이었다. 마침 창가 자리라 울릉도와 그 너머에 있을 독도에 작별 인사를 건넸다. 다시 오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언제 올 수 있을지는 몰랐다. 굼뜬 성격 탓에 취재가 아니었더라면 독도에 와 볼 생각을 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서울에서 심드렁하게 독도에 대한 기사들을 한 번 읽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 비록 독도 땅을 밟아보진 못했어도 그 예민하고 아름다운 섬을 직접 본 순간에야말로 독도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백문이 불여일견,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고 기사를 쓰며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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