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정태산 기자 fluff@
‘랩 보여 달라고요? 여기서는 곤란한데요…’ 하얀 얼굴, 나지막한 목소리에서 역동적인 래퍼의 모습을 찾긴 힘들지만 정대건(철학과 05학번) 씨는 한때 열정 넘치는 ‘힙합 키드’였다. 한창 힙합 붐이 일던 중·고등학생 시절, 인터넷 모임을 통해 친구들과 그룹까지 결성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슈퍼스타가 되리라 의심치 않았지만 현실에 쫓기며 힙합과 점점 멀어져갔다.

대건 씨는 이루지 못한 꿈을 다시 마주하려 마이크 대신 카메라를 잡았다. 제작부터 연출, 촬영, 편집에 출연까지 1인 다역을 자처한 끝에 영화 <투 올드 힙합 키드(Too old hiphop kid)>를 완성했다. <투 올드 힙합 키드>는 서울독립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 등 6개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고 13일 본교 KU시네마트랩에서도 개봉했다. 영화에서 대건 씨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10년 전 같이 힙합의 열정을 불태웠던 친구들을 찾아간다. 10년 전 꿈을 좇았던 이들은 이제 무엇을 좇고 있을까.

-<투 올드 힙합 키드>는 어떤 영화인가
“꿈을 가진 사람들을 응원하고,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영화에요. 저 같은 경우는 후자에 속하죠. 한동안 스스로를 미워하고 자격지심도 많았어요. 그래서 한 때 같은 꿈을 꾸었던 친구들을 모아서 자기 긍정을 하고 싶었습니다”

-영화의 등장인물이 실제 10대 때 같이 힙합을 하던 친구들이다. 그들의 현재는 어떤가
“어렸을 때는 다들 그저 멋있어서, 인기 있고 싶어서 힙합을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가치관이 달라져있더라고요. 현실적인 부분을 포기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고, 반대로 물질적인 부분은 신경 쓰지 않고 행복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친구들도 있고요. 영화에서는 누가 더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각자 행복을 좇는 방법이 다를 뿐이죠”

-꿈을 좇는 성공담을 들이밀지 않는 영화라 더 색다르다
“미국식 히어로 영화에서 주인공은 꼭 재능을 가지고 있고 결국 어려운 환경 속에서 꿈을 이뤄내죠. 그런데 제 영화는 아니에요. 모두가 다 성공할 수는 없는데 요즘에는 성공을 당연시 여겨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친구들은 자책하곤 하는데 그러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중요한 건 행복해지는 거예요. 꿈 때문에 불행해져서는 안 되죠”

-영화를 찍으면서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어머니가 저를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 등장해요. 찍는 법을 모르니 옆으로 찍고, 흔들리게 찍고 엉망진창인데 관객들이 그 장면을 좋아하더라고요. 다들 진짜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생각을 안 하고 찍었어요. 술‧담배에 욕설까지 나오니 스크린에 못 담은 장면이 많죠. 총 150시간을 찍었는데 러닝타임은 96분이에요” 

-래퍼의 꿈을 포기하고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고등학교 시절 음악하는 친구들은 공부는 뒷전이었는데 저는 대학에 먼저 가서 하고 싶은 걸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오니 힙합하는 게 생각만큼 수월하질 않았어요. 제 재능이 꿈을 이루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죠. 결국 스스로 힙합과 멀어졌어요. 그때 영화 분야가 눈에 들어왔고, 제대 후 영화동아리 ‘돌빛’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어요”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주인공 대사 중에 ‘난 음악을 사랑해. 하지만 돈도 사랑해’라는 말이 있어요. 저 또한 영화에서 ‘꿈을 좇는다고 해서 불안한 삶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말합니다. 미래에 행복해질지를 묻지 말고 지금 하는 것이 행복하고 후회가 없는지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그러면 답이 나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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