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배심원이라면 계속 비분강개 할 수 있을까
당신이 배심원이라면 계속 비분강개 할 수 있을까
  • 고대신문
  • 승인 2012.09.2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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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제와 법감정

일반인들이 배심원으로서 참여하는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제도(이하 ‘배심제’)가 처음 시작되었던 4년 전에는 재판이 이제 좀 일반의 법감정에 귀를 기울여 납득될 만 한 결론을 내려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알아듣기 쉬우면서도 긴장감 있는 공방을 벌이게 될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지금 배심재판은 이러한 처음 기대에 화답하고 있는가? 얻은 점과 걱정되는 점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일부 사건만 배심재판의 대상이 된다. 일반인이 파악하기 쉬운 살인, 강도, 강간 같은 것 중 일부이다. 이러한 범죄들에 대해 사회에서 어떤 ‘법감정’이 있는지 누구나 알고 있다. 보수와 진보, 노인들과 젊은이들, 남녀 차이 등으로 ‘국론이 분열’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범죄사건을 대할 때의 의견은 거의 통일되어 있다. 정부가 범죄에 더 강경하게 대응하여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달라고 하면서, 범죄자도 최대한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별로 예외가 없다. 이처럼 범죄인에 대한 강한 처벌요구가 사회의 법감정을 이룬다면, 일반인이 참여한 배심재판에서는 더 화끈한 선고가 이뤄지지 않을까? 결과부터 말하면 이상하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기존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된 경우가 제1심 기준으로 3퍼센트 정도인데, 배심재판에서는 세 배 가까운 9퍼센트 안팎에 이른다. 거의 유죄증거가 확실한 경우만 기소되는 우리네 재판에서 이 정도는 의미 있는 변화이다. 무엇을 말해주는가? 오히려 사회의 법감정과 맞지 않는 분위기가 배심재판에서 연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배심원이 되었다고 한 번 생각해 보자. 평소 범죄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갖고 있는 평범한 주부가 배심원으로 참여해달라는 통지를 받는다. 강간사건. 딸을 키우는 중년의 어머니로서 흉악범은 아예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해야 한다고 마음먹고서, 이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생각하니 책임감이 무겁다. 법정이라는 데를 생전 처음 들어서 보니 두렵고 긴장이 된다. 이윽고 용기를 내어 피고인을 쳐다본다... 술을 마셔 의식이 흐려진 여학우를 자취방에 데려와 관계를 가진 20대 중반의 대학생. 등교하려다 들른 것마냥 평범한 차림새로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다. 가끔 한숨을 크게 내쉬며 울먹이는 그 모양은, 의외로 자신이 상상했던 강간범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혼란스러워진다. 이때 배심재판을 잘 아는 세련된 말솜씨의 변호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 혼란을 틈타고 들어온다. ‘과행사여서 같이 정답게 술을 마시게 되었고 피해자가 피고인 집에 스스로 따라들어온 경우’라고 이야기하고, ‘집안이 어려워 장학금을 타서 학교를 다니는 성실한 학생으로서 크게 뉘우치고 있어서 재범의 우려도 없다’고 덧붙인다. 이후 준강간, 고의, 심신미약 등의 법률용어도 있었지만 이미 처음의 비분강개가 누그러진 자리에 대신 들어선 미묘한 감정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런 모습이다. 배심재판에서는 그동안 이론과 실무를 지배했던 전문적인 법률 해석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법감정의 영향이 더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변호인과 검사의 논증도 때맞춰 달라지고 있다. 변호인은 피고인에 대한 동정심을 더욱 자극하기 위해서 그 딱한 처지를 강조하는 한편, 검사는 무죄평결을 막아내기 위해서 범죄의 끔찍한 결과와 피해자의 극심한 괴로움을 역설하고 있다. 범죄행위의 객관적인 평가와는 거리가 먼 이런 논쟁의 결과에는 서로가 납득하기 쉽지 않으니, 배심재판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복하여 항소하는 경우가 기존 재판에 비해 10퍼센트 이상 높아져 약 87퍼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매스컴이나 소설에서 그려지는 괴물이 아니라, 누구나 그 자리에 앉아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피고인임을 보게 된 것, 형사소송이라는 것이 살아 숨쉬는 ‘사람’ 사이 대화의 과정임을 더 많은 이들이 깨닫게 된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해야겠다. 일반인들이 지니고 있는 ‘지혜’에 기존 법관들이 크고 작게 도움을 구하는 모습도 얻게 된 소득이다. 사법의 민주화라는 거창한 표어를 굳이 추가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법감정’이라는 언제든 쉽게 뒤집힐 수 있는 마음이 여태까지의 긴 역사동안 확인해 온 여러 ‘법원칙’보다 앞선 영향력을 갖게 되는 데에 대한 염려는 있다. 정형적이고도 전문적인 법률 해석과 적용을 문제해결의 공식으로 삼아 온 전통적인 사법이, 그동안 더 객관적이면서도 예측가능한 결론들을 내려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되돌아봄도 있다. 그리고 일반인의 법감정에 호소하기 위해서, 이제 설득력 있는 언변이나 세련된 태도 등을 가다듬는 것이 법조인의 새로운 덕목으로 강조되고 있는 현실도 아주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다.


홍영기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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