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부터 ‘학부생시절 꼭 읽어야 할 책‘에 대한 원고를 부탁받고 별 생각 없이 응했다가 이내 후회를 했다. 우리 학생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이 너무 많기도 하고, 꼭 읽어야 하는 책의 의미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기도 했다. 꼭 읽어야 하는 책이란 어떤 책이어야 할까? 그런 책을 읽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무엇보다 꼭 읽어야 하는 책이 주는 감동과 교훈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을까 하는 우문에 가까운 걱정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꼭 읽어야 하는 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의 책읽기 습관은 잡식성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이 많고 알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경제학을 전공하지만 전공 관련 서적보다 소설 읽기를 좋아하고, 시도 좋아한다. 술에 대한 얘기나 화가에 대한 얘기도 좋아한다. 수시로 꺼내들고, 집어 들어 읽는다. 무협소설도 읽고, 과학에세이도 읽는다. 때론 뜻밖의 재미를 만나 혼자 미소 짓기도 하고, 방금 마친 책이 주는 감동의 여운이 아쉬워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물론 돈이 아까운 책들도 있다.  

 책은 사람을 만든다. 사람은 어떤 책을 읽었는가에 따라 만들어진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책, 꼭 읽어야 할 책은 없는 것 같다. 모든 책이 다 의미가 있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책이 주는 감동과 재미는 달라진다. 그러니 그저 많이 읽는 것이 좋다. 전공이나 학습에 필요한 책뿐 아니라 모든 영역의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 것이 좋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만큼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책이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책들이 있다. 화들짝 정신을 깨우는 책이 있다. 인생을 바꾸거나 세상만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그런 책들도 있다. 내겐 고등학생 시절에 읽었던 <놀라운 신세계 A Brave New World(올더스 헉슬리)>와 대학시절에 읽었던 <만다라(김성동)>, 그리고 <제3의 물결 The Third Wave(앨빈 토플러)>이 그런 책이다. 1932년에 출간된 <놀라운 신세계>는 과학기술로 인간과 세상을 완전히 통제하는 암울한 미래를 그린 책이다. 이 책을 읽던 1970년대 무렵 40년 전에 쓰인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황당하면서도 흥미로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80년이 지난 지금, 헉슬리가 상상력만으로 그렸던 그런 세상이 현실이 되고 있다. 생명공학과 나노과학으로 통제된 세계가 머지않아 보인다. 로봇이나 투명 망토 등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상상으로 인류의 미래를 이끄는 소설가들이 경외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1980년에 출간된 <제3의 물결>도 경이로운 책이다. 이 책은 <미래충격 Future Shock>, <권력이동 Power Shift>과 함께 3부작으로 기획된 시리즈의 두 번째이다. 인류의 역사를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그리고 정보혁명으로 나누고, 세 번째 물결인 정보혁명 시대의 세상과 인간사회의 모습을 조망한 이 책은 토플러 자신이 스스로 감탄했듯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모습을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제3의 물결에 담겨 있던 폭넓은 통찰과 논리 정연한 예측은 나를 학자의 길로 이끈 결정적 계기의 하나가 되었다. 
  군부독재 정권 하에서 무력감과 수치심으로 방황하던 젊은 날 내 정신을 후려 쳐 깨운 책이 있다. 인간으로서 항상 깨어 살아야 하며, 인간의 본성을 알기 위해 평생을 정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책이 김성동의 <만다라>다. 승적을 박탈당한 구도자의 처절한 자전소설인 만다라는 철저하게 인간을 주제로 한 책이었다. 내 젊은 날 그 책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생들도 그런 책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책을 만나야 한다. 바람둥이처럼. 바람 피기 좋은 날들이 왔다.   

양승룡 생명대 식품자원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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