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전이 벽면 책장에 빼곡히 들어찬 연구실에 수염이 멋드러진 노신사가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정복심의 <사서장도>(四書章圖)를 발견한 이승환(문과대 철학과) 교수다. 원나라 학자 정복심의 <사서장도>는 성리학 핵심내용을 도표로 정리하고 대학, 중용 등의 사서에 대한 주자 및 제가의 주석을 모은 책이다. 국내에서는 그 동안 유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승환 교수는 20년 전 남명 조식의 <학기유편>에 있는 도표 중 일부가 실제로 조식이 그린 것이 맞는지에 대해 의문점을 가졌다. 문헌에 실린 도표 중 상당수가 그 아래의 부속설명과 맞지 않는 점과 퇴계 이황이 조식의 직접 그린 도표라고 알려진 <심통성정도>를 정복심의 작품이라고 말한 점 등이 이유였다. 이 교수는 해외학술회의를 다녀올 때마다 도서관과 고서점, 박물관을 들러 사서장도를 찾는 노력을 했다. 2011년 이 교수는 일본 학자 미야 노리코가 쓴 논문을 통해 <사서장도>가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있는 것을 알았다. <사서장도> 발견은 <학기유편>에 있는 24도 중 14도가 정복심의 그림임을 증명하는 근거가 됐다.

논문 발표에 1년이 걸린 것을 두고 이 교수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끌어내리는 것이라 주저할 수밖에 없었어요. 또 한국학자들과 중국학자들이 국제 남명학회를 창설하고 연구를 해온 상황에서 사실을 알릴 때 중국학자들이 남명을 폄하할까 걱정됐습니다” 이 교수는 곧 중국학자가 <사서장도> 영인본을 출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영인본 출판 시 중국학자들이 남명의 무단도용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남명이 정복심의 도표를 도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하루 빨리 밝혀야 했다. 수개월에 걸쳐 연구한 끝에 근거를 찾아냈고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다.

이 교수의 우려대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남명학자도 있었다. “논문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자신이 남명학자라며 굉장히 기분 나쁜 어투로 심사평을 적더라고요. 존경하는 사람의 업적을 깎아내려 화날 만도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남명과 그의 후학들을 보호한 것인데….”

그는 남명학자들의 학문을 대하는 태도를 지적했다. “학문연구에서 첫 번째 할 일은 문헌학, 판본학적 연구인데 우리의 학문의 태도는 아주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또 정복심의 사서장도가 사라졌다는 학계의 발표에 어느 누구 하나도 정말 그럴까 하고 의심하고 찾아보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 점에서 철저한 회의의식과 비판의식이 부족했습니다”

사서장도는 남명뿐 아니라 퇴계 이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교수는 “조선 성리학 초기 정립과정을 명료하게 밝힐 중요한 자료”라며 사서장도의 지속적인 연구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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