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박물관’ 대표이자 헤세 컬렉터인 이상영 대표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헤세 관련 기념물을 수집해왔다. 현재 1800여 점에 이르는 수집품은 양은 물론 질적인 면에서까지 세계적인 수준이다. 축적된 수집품은 2011년 파주출판단지의 노벨문학상 110주년 행사에서 성황리에 전시되기도 했다. 아직 정식 박물관을 갖고 있진 않지만 내년 5월 정식으로 헤세 박물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독일 칼브, 스위스 몬타뇰라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다. 무엇이 그를 헤르만 헤세에 빠져들게 만들었을까. 이상영 대표를 만나 순수한 애호가의 눈으로 헤세를 바라봤다.

- 헤세 박물관에 대해 소개해달라
“헤세 박물관은 헤세의 작품 초판본, 친필 사인이 담긴 책, 그림, 관련 기념물을 전시할 예정이다. 처음엔 헤세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에서 컬렉션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2000년 무렵부터 더 이상 혼자 힘으로 구매하기 버거운 상황이 됐다. 2001년,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헤세 컬렉터가 800점에 달하는 컬렉션을 내놨지만 당장 돈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예술을 사랑하는 한 기업가와 인연이 닿아 그의 후원으로 컬렉션을 거둘 수 있었다. 개인적인 수집을 넘어 박물관 개관이 가능했던 것도 그 후원가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헤세에 매료된 계기는 무엇인가 
“베트남 전쟁이 끝나갈 무렵, 미국에는 반전 분위기가 일면서 히피족이 주도하는 데모가 끊이질 않았다. 그 히피들이 하나의 바이블처럼 갖고 있던 책이 헤세의 <황야의 이리>였다. 그것이 ‘타임(TIME)’ 기사를 통해 알려지면서 헤세가 다시 한 번 세계적으로 부각됐는데 나도 그 무렵 <황야의 이리>를 접했다.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는 주인공 하리할러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의 삶은 마약, 간음, 폭음 등 피폐함으로 얼룩져있었다. 하지만 그 희망 없는 삶 속에서 헤세는 평화와 자유를 꽃피워내더라. 그 전까지 <데미안> 등 아름다운 성장소설 작가로만 알았던 헤세가 이런 글도 썼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이 작가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1970년대 중반에 대학을 졸업하면서 헤르만 헤세 관련 수집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 수집 과정에서 알게 된 헤세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들은 헤세가 까다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는 굉장히 인간적인 사람이다. 과거 독문학자 전혜린 교수가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타지 생활이 고달프고 외로워 헤세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헤세는 전혜린 교수와 일면식도 없었지만 기꺼이 답장을 보냈다. 한국이라는 먼 나라에서 독일까지 온 데는 목적한 바가 있을테니 그걸 이뤄야 하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유학생활을 하는 한 학생의 처지에 가슴이 아팠던 것이다”

- 컬렉션 수집과정에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나
“히틀러의 부관으로 있던 중위에게 컬렉션을 샀던 게 기억난다. 헤세가 일찌감치 히틀러의 야욕을 꿰뚫어보고, 비판하는 책을 출판하자 히틀러는 부관에게 헤세 책을 모아 불태우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부관은 그 중 일부를 남몰래 보관해왔다. 최근 베를린의 한 지역신문에 우리 전시회가 소개된 기사가 있었는데 이 분이 자신이 가진 것을 팔고 싶다며 나에게 연락했다. 그 때 <데미안> 20년도 판, 헤세의 그림 등 60여점을 굉장히 싸게 샀다. 또 헤세 주치의의 따님에게 컬렉션을 모아들인 것도 기억에 남는다. 노년의 헤세는 지병으로 손이 끊임없이 떨렸다. 약을 먹어야 하는데 약값이 너무 비싸서 헤세는 주치의에게 약값 대신 책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주치의는 헤세의 최고 컬렉터 중 하나였다”

- 헤세의 그림은 어떤가
“작가들 가운데 그림도 잘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헤세도 그 중 하나다. 헤세는 40대 무렵 그림에 빠지는데 그림을 그리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2차 대전이 막 끝나면서 많은 독일 병사들이 러시아에 포로로 끌려간다. 혹독한 날씨와 부족한 배급으로 독일 포로의 처지는 매우 열악했다. 이에 헤세는 포로지위향상협의회를 만들고 수채화를 팔아 포로를 위해 사용한다. 헤세의 그림을 모으다보면 헤세가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헤세 대부분의 그림에는 사람이 안나온다. 꽃, 나무, 구름 등 자연만 그린다. 꽃도 야생화만 그릴 정도로 분명한 자연주의자다”

- 헤세 컬렉션의 의의는 무엇인가 
“우리나라가 피카소 작품전을 열려면 대금만 100억씩 들어간다. 빌리는 입장에선 남는게 없지만 빌려주는 측에선 돈도 받고 문화도 전파하고 일거양득이다. 그러니 빌릴 바에는 차라리 피카소 작품 한 점을 사자는게 내 생각이다. 문학 작가의 귀중본도 마찬가지다. 제임스조이스의 <율리시스> 초판본 중 작가의 친필 사인이 담긴 작품은 100부다. 2001년 크리스티 경매에 한권이 나왔는데 25만달러에 팔렸다. 지금 사려면 못해도 한화 7억원 이상은 할 거다. 나중에 작가 전람회를 하려면 다 돈 주고 빌려와야 한다. 루브르 박물관 하나를 팔면 7000만 프랑스 인구가 30년간 일안해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문화 자산을 모으는 건 국부에 이바지 하는 일이다. 앞으로도 헤세 관련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모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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