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학생회의 장이었던 친구가 임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입학한 이후 끊임없이 학생회 일을 해 왔던 그는 이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편하기 보다는 허탈함을 느끼는 듯 했다. 그는 “그동안에는 아무것도 아닌 적이 없었는데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늘 무언가가 되고 혹은 무언가가 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우리는 어딜 가나 예쁨 받는 신입생이다가, 동아리나 학회, 소모임의 일원이 되기도 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어떤 직함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모두 지나가 버리는 순간은 어느 때고 찾아와 아무것도 아닌 나만을 남겨둔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집-학교의 무한루트를 반복하며 학교를 부유하는 나, 직장인이 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다시 대학생이 될 수도 없는 졸업 직전의 나, 매일같이 지루하고 텅 빈 나날들을 보내는 나…. 그러고 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또 아무것도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한다. 아마 친구가 느끼는 허탈함은 그런 마음들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대학에 입학하고 1년이 지났을 무렵 나 역시 그런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더 이상 마음 놓고 있을 수 있는 신입생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뭔가를 할 거라는 계획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로 존재감 없이 학교를 다니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다 다시 무언가가 되어보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고대신문이었다.

그리고 고대신문에 들어온 지 어느덧 2년이 다 되어 이번 학기가 고대신문 기자로서의 내 마지막 학기다. 고대신문을 나가면 나는 또 다시 아무것도 아닌 나로 돌아갈 것이다. 어쩌면 친구처럼 전과 같이 초조해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조금 다르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에야 비로소 무언가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까닭이다.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네가 아무것도 아닌 그 순간은 또 다른 무언가가 되기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겨울이 되면 다들 한 해를 되돌아본다. 그리고 아무것도 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고 후회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봄을 기다리며 또 다시 무언가가 되는 꿈을 품어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 이 겨울이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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