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시골길 양 옆으로 눈높이에 맞춘 듯한 작은 집들이 늘어서 있는 강정마을. 집 사이 골목길엔 야트막한 돌담이 늘어섰고 겨울치곤 따뜻한 햇살이 차분히 비치고 있다. 아기자기한 마을건물엔 두 가지 깃발이 꽂혀있다. 하나는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노란색 깃발, 다른 하나는 찬성을 의미하는 태극기이다. 강정마을을 갈라놓은 두 깃발은 서로를 위협하듯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마을을 가로 지르는 도로변엔 서로 다른 깃발의 마트가 마주보고 있었다. 먼저 태극기를 단 ‘코사마트’에 들어가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이유를 물었다. 주인은 해군기지라는 말을 듣자마자 기자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쫓아냈다. ‘코사마트’를 나서 노란색 깃발을 걸어선 ‘유성마트’에 들어갔다. 유성마트 주인은 “마을 주민들이 찬성, 반대로 갈려 가게도 골라온다”며 “해군기지 반대 입장인 한 택배 대리점에선 슈퍼 일로 들어오는 차를 일부러 막기도 했다”고 말했다.

어른들의 싸움은 어린 학생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갈등이 가장 첨예하던 시기 강정마을에서 사춘기를 보낸 이승진(18, 남) 씨는 “총구에 겨눠진 어린 아이의 현수막을 봤을 땐 우리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기겠구나 싶어 정말 무서웠다”고 말했다. 강정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낸 강성현(20, 남) 씨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일하던 아버지가 해군기지 건설 현장으로 뛰쳐나가 몸싸움을 하고 오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진 | 조해영 기자 hae@

그들에게 고향의 모습은 추억을 소진해 버린 곳이었다. 강정마을 주민은 “이제는 옛날의 강정마을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순 할머니는 “매일같이 함께 밥 먹던 친구들도 더 이상 우리 집에 안 온다”며 고개를 저었다. 서로를 물어뜯던 그들에게 남은 건 차갑게 식은 마음뿐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옛날의 끈끈했던 강정마을을 회상하고 있었다. 김정민 강정마을 노인회장은 “예전의 강정마을은 인정이 넘치는 곳이었는데 이젠 결혼식도 찬·반으로 갈려 다른 장소에서 치른다”고 말했다.

마을을 둘러본 후 점심을 위해 공사장 건너편에 위치한 한 식당에 들렀다. 가게에 손님은 전혀 없었다. 기자는 왜 이렇게 손님이 없냐며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가게 주인 김강식 씨는 “갈등이 있기 전엔 장사가 잘 됐고 단골도 꾸준히 있었다”며 “그런데 내가 해군기지에 찬성한다는 이유로 반대 편 사람들이 ‘저 집엔 가지 마라’며 손님들을 채갔다”고 말했다.

공사로 인해 산산이 부서진 바위 조각처럼 강정마을의 공동체도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상처만 남은 이곳은 친구도 이웃도 잃은 마을이었다. 본래 마을이란 ‘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기자가 본 강정마을은 이미 ‘마을’의 의미를 잃은 하나의 ‘군락’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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