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간 대학 교단에 서며 알베르 카뮈의 전 작품을 번역하고 소개한 불문학계의 거장(巨匠) 김화영 명예교수. 카뮈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와 프랑스 문학, 그리고 카뮈와의 특별한 인연에 대해 인터뷰했다.


- 프랑스 문학과 인연을 맺은 출발점은
“시작은 문학에 대한 열정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문학이 좋아 시를 쓰고 학생잡지에 내 작품을 투고했다. 문학도 여러 갈래가 있었지만, 20세기 전반을 프랑스문학이 주도한데다가 그 당시 노벨문학상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도 프랑스였기에 ‘문학’을 하려면 불문학을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불문과에 입학했다. 졸업한 후에는 마침 은행에서 불어 문서를 취급하는 직원을 구해 불어를 전공했던 나에게 기회가 왔다. 하지만 2년 후 일을 그만두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 왜 갑자기 일을 그만두었나
“은행에서 돈은 꽤 벌었지만 더 이상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프랑스 국비장학생 선발 소식을 듣게 됐고 좋아하던 불문학을 더 깊게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 갑작스런 유학생활은 어땠나
“유학 초기엔 지금껏 쌓아온 불어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깨닫고 좌절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프랑스에 온 이상 ‘불어만은 잘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개인적으로 프랑스 지식인들처럼 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불어를 현지인처럼 구사하면 뛰어난 작품을 ‘원서로’ 읽고 현지 문학가들과 교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 유학시절 연구 주제로 카뮈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사전을 주로 봤는데 사전에서 드는 예문 대부분이 카뮈의 작품에서 인용한 구절이었다. 현지인 모두 단어를 이용하지만 단어를 ‘잘’ 사용하는 사람은 문학가가 아니던가. 또 사전에 실린 문학가 중 카뮈가 빈도수가 제일 높았다는 것은 카뮈가 불어를 ‘잘’ 쓴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카뮈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다”

- 유학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학위논문을 도와주셨던 교수님이 카뮈 생가에 데려다준 적이 있다. 놀랍게도 그곳에서 카뮈의 부인을 만났다. 부인은 한국에서 카뮈를 어떻게 알고 공부하러 왔느냐며 신기해했다. 나는 신이 나서 카뮈 책 번역본이 많이 있어 쉽게 카뮈를 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의아해하며 아직 한국에서 정식으로 판권을 사고 책을 발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순간 정말 부끄러웠다. 앞으로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저작권에 문제가 있는 책은 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일화는 귀국 후의 카뮈 전집 발간에 영향을 줬다”

- 그렇다면 어떻게 카뮈 전집을 내게 됐나
“사실 카뮈 전집을 처음부터 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교수로 있을 때 한 출판사로부터 카뮈 사후 발간된 책들의 번역 제의를 받았다. 그 때 카뮈 부인과의 경험이 떠올라 저작권이 해결돼야만 번역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저작권을 정식으로 수입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고 출판사 측에서는 이왕 내는 김에 카뮈의 전집을 내자며 전체 판권을 다 사자고 했다. 처음엔 전집이라는 소리에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어느새 지금까지 번역한 책이 20권이 넘었다”

- 번역 당시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나
“문학 작품의 저작권 권리 인정 유효 기간은 작가 사후 50년이다. 카뮈는 1960년에 사망했으므로 2010년 이후로는 저작권이 소멸되는 셈이다. 그래서 2010년이 되기 전에 서둘러 마지막 책을 번역했다. 얼마 뒤, 프랑스에서 카뮈 생가에 살고 있는 카뮈의 딸을 만날 기회를 갖게 됐다. 보존된 카뮈의 책장에 몇 권이 꽂혀있는데, 내가 번역한 <최초의 인간>을 보니 번역자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 번역한 카뮈의 책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어려운 질문이다. 다 좋아하고 애착이 간다. 그래도 굳이 꼽자면 제일 먼저 번역한 <결혼‧여름>과 <이방인>을 꼽고 싶다. <결혼‧여름>은 특히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표현이 너무 아름답다. 첫 줄만 봐도 바로 반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다. 알제리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어우러진 섬세한 묘사가 좋다”

- 전집 발행 순서가 연대순이 아닌 것도 있는데 혹시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좋은 질문이다. 전집 순번을 자세히 보면 연대순으로 번역된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내 좌우명이 드러난다. ‘좋아하는 걸 먼저 한다’는 것이다. 높은 수익이 보장된 은행원 일을 그만두고 유학을 떠난것처럼 나는 내가 좋아 미치겠는 걸 쫓았다. 가짜로 살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고 생각한다. 진짜로 살다가 가기에도 모자라지 않을까. 나는 변덕과 기호에 충실해 그때 번역하고 싶은 것이 떠오를 때마다 번역했다. 문학가는 기분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 카뮈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면
“카뮈는 그의 작품 속에서 ‘잠시 죽은 것처럼 살기’의 가치를 내비친다. ‘인간은 언젠가 죽기에, 지금 살아있는 이 순간의 가치를 절대 무시하지 말고 미친 듯 치열하게 매일을 살라’는 것이다. 이건 특히 젊은 사람들이 명심해야한다. 젊은이들은 지금 너무나 근사하지 않은가. 젊은 체력, 외모 등 못할 게 없다. 이 순간은 곧 지나가는, 무심코 흘려보내도 되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매 순간, 내 살아있는 순간을 기쁨으로 넘치게 살기에도 인생은 아깝다. 공부면 공부, 연애면 연애, 내가 지금 가장 하고 싶고 가장 열의가 불타오르는 일을 찾아 미친 듯이 해보라. 나같이 늙은 사람은 늙어 못하는 것들이 많아 억울할 때가 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그 좋고 젊은 시절을 왜 하기 싫은 일 하고 인상 찌푸리며 허송하며 낭비하고 있나. 내가 수익이 보장된 삶을 버리고 내 가슴을 뛰게 하는 학자의 길을 선택했듯, 가면을 끼고 쇼를 하며 남들이 원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춰가기보다는 <이방인>의 주인공처럼 자신에게 솔직해지면 어떨까. 쇼하며 살기에는 인생은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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