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탑춘추(石塔春秋)는 1952년 6월 6일자에 발간된 지령 17호에 처음 연재되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고대신문의 대표적인 가십란이다. 석탑춘추는 고대의 상징물인 석탑(石塔)과 역사서를 뜻하는 춘추(春秋)가 결합한 것으로 고대의 역사를 기록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석탑춘추는 매주 학내외에 일어난 사건이나 소식에 대해 편집국장인 춘추자(春秋子)가 학생인 호형(虎兄)에게 풍자조로 메시지를 전한다. 석탑춘추를 보면 당시 학내외 이슈와 학내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이 <석탑춘추>에서 바라본 고려대의 모습은 지난 반세기 동안 어떻게 변화했을까. 당시 시대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과거의 표기형태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50년대>
1952년 6월 6일 17호 석탑춘추(6.25때 쓴 춘추)
십년지계는 애림에 있고 백년지대계는 교육에 있다는 말은 벌써 진부하리만치 상식화 된 말.
그러나 상식이란 것은 원래 어려워선지 상식화되지 않는 것이 또한 상식.
모든 부문이 침체 그대로 있고 일선에선 적군이 눈을 겨누어 보고 있는 판에
백년지대계는 무슨 비현실적인 말이냐고 딱 보면 그만이지만
이 성전을 치르는데 군사면에서는 UN군과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고
기타부분에서도 우방들과 같이 보조를 맞추어야 할 우리나라의 딱한 사정.
그러나 교육만은 아직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우리의 오직 하나의 유산.
이러고 보니 백년지대계가 우리에겐 가장 현실.

1955년 10월 3일 83호 석탑춘추
관영요금은 인하되는데 아래하자 하숙비는 상승일로
학기말시험도 종막을 내리고 신학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신학기는 누구에게나 맞이할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나간 학기에는 이백여 명의 선비들이 신학기를 맞이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번 학기에는 그 신학기를 맞이할 수 없는 선비들이 얼마나 될는지.
관영요금 환원이라는 소식 끝에 학생들의 신학기납입금도 예상보다는 액수가 감소된 것이 사실이니 궁핍한 농촌경제를 면학의 유일한 기본재산으로 하는 농가출신선비들에게는 희(喜)소식에 또한 희(稀)소식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단 한 가지의 기현상은 관영요금이 인하되었다고 하는 것을 이유로 해서 상승에 상승을 거듭하였던 학생들의 하숙비는 대통령의 긴급명령으로 일반 관영요금이 다시금 환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환원은커녕 현 상태에서 다시금 상승될 우려성이 농후한 형편에 있다.
강물은 흘러내리기만 한다더니 하숙비는 오르는 것밖에 모르는 모양, 두어라 이퇴계 선생이 출생하실 때는 강물이 역류하여 퇴계가 되었다고 하는데 아래하자 붙은 하숙비 언젠가 내릴테지.
하늘에 계시는 옥황상제의 우특명으로나 인하될까.

<60년대>

1960년 5월 3일 239호 석탑춘추(4.18의거 관련)

1960년 5월 3일 239호 석탑춘추(4.18의거 관련)

 

1960년 5월 3일 239호 석탑춘추(4.18의거 관련)국가 운명은 고대로 통한다
화창한 봄날 오후 1시, 하늘은 맑고 캠퍼스의 백화는 화려한 웃음을 삼키는데 이제 이 나라에는 새로운 역사가 태동하고 있었다.
기성정계를 규탄하는 학생은 명도로 고조된 여세 속에 아우성쳤으나 초조와 당황으로 동분서주하는 교우들의 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웠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역사의 윤전은 막지 못했으니 철책을 부수고 뛰쳐나온 호랑이떼의 기개를 그 누가 막을소냐.
장하도다 고대건아들의 정의감이여!
오직 캠퍼스 우뚝 솟은 인촌동상만이 우리들의 진의를 알고 내일의 역사를 목견하였으리니 4월 18일 이 날의 그 여세 그 기상 영원히 간직하소서.






 




<70년대>

1975년 4월 8일 718호 석탑춘추

1975년 4월 8일 718호 석탑춘추데모 얘기 또 하나.
강의와 시위를 병행하다가 생겨난 신용어.
강의가 끝난 정확히 어제 오후 4시 30분 대강당에 집결한 행동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극적인 친구 내뱉듯이 한마디.
「이것은 데모 역사상 최초의 오후반 데모다」
글쎄요 데모가 오전, 오후의 2부제로 진행되는 것도 아닌데 이러한 표현이 정확한지....

 

1975년 6월 3일 석탑춘추
긴급조치 9호로 학생 자치활동이 전면 중지됨에 따라 50여개에 이르는 써클이 문을 닫게 되었는데 어느 문대생 「면학의 특징은 스스로 공부함에 있는데 TIME반 등 몇몇 이른바 건전한 써클은 남겨두어 학생들의 의욕을 꺾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글쎄요 「면(勉)학」이 결코 「면(免)학」이 될 수는 없기에 어떤 반가운 조치가 내려지지 않겠소이까.



<80년대>

1980년 2월 26일 석탑춘추
이번에 入試後聞(입시후문)하나. 조치원분교에 학생들이 임시방편으로 本校(본교)교양관을 中心(중심)으로 곳곳에서 수업을 받아야할 형편이라나. 아직도 分校(분교) 마스터 플란이 나오지 않아 현장 공사가 불가능한 상태라는데… 아무쪼록 우리 새끼호랑이들이 너무 시달리지 않도록 조속히 시설을 이룩해놓아야 할 것 같소.

1989년 11월 27일 1112호 석탑춘추
전자오락의 열풍이 안암골을 강타하고 있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특히 여름방학 이후 정대후문 근처의 식당, 가게들이 속속 오락실로 전업한 것은 시대의 대세라 한다해도 지나친 감이 없지 않구려. ‘저렴한 비용으로 스트레스를 풀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장점은 인정하더라도 최근 양상은 정도를 넘어 전자오락에 ‘중독’된 호형들이 간혹 있다는 소문이오. 전자오락의 선호품목도 서너달전 ‘理球(이구)’가 맹위를 떨치다 ‘테트리스’의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데 얼마전에는 ‘배구’란 신종기계가 등장, 판도변화를 예고중.
춘추자, 호형들의 사생활까지 간섭하고 싶지는 않소만 국적불명의 오락기계앞에서 단추를 두드리는 순간에도 공권력에 의해 차가운 거리를 떠도는 호형들과 호제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말기를 간곡히 당부하는 바이오.

<90년대>

1990년 3월 19일 1116호 석탑춘추

1990년 3월 19일 1116호 석탑춘추安岩(안암)에 여자기숙사가 건립된 뒤 생겨난 새로운 풍속도 중의 하나가 바로 ‘방팅’이라고 하는 것. 세상에 떼미팅에 科팅까지는 들어봤어도 방팅이라니….
바로 남자기숙사와 여자기숙사의 안면있는 ‘房長(방장)’들이 신입생 ‘房卒(방졸)’들끼리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을 이름하여 ‘房팅’이라 한다고. 기대에 찬 대학생활을 갓 시작하는 善男善女(선남선녀)들의 만남에 초를 치고 싶은 마음이야 있겠소만 다른 관계도 아니고 울타리 맞대고 사는 虎兄 들끼리의 만남이 이렇게까지 형식절차를 따져야 되는 것인지 의문이 가는구려. 더구나 방팅이 기숙사에 들어가면 으레 거쳐야하는 入舍儀禮(입사의례)처럼 생각된다면 이 또한 간과못할 문제 아니겠소? 이러다가 ‘房팅’에 ‘棟(동)팅’까지 생겨나는 건 아닐지… 걱정이오.

 

1991년 2월 25일 1129호 석탑춘추
‘폭력시위 범죄단체죄’ 적용. 과격한 시위를 공권력에 대한 테러로 규정해서 처벌하겠다는 치안본부장의 豪言(호언)이 있던날. 때를 맞춘 듯이 安岩(안암)에서도 아침부터 춘추자는 최루탄을 마셔야만 했소.
30명의 虎兄(호형)들이 ‘페만전쟁 반대’를 위한 선전도중에 약3개중대(3백명)의 전투경찰이 투입되었다고 하오.
‘범죄와의 전쟁’에 수고하시는 민중의 지팡이께서 앞으로의 ‘화염탄(?)’을 사용한 과격한 테러범 ‘高麗파(?)’ 조직원을 색출하느라고 수고하실 것 같소만. 허나 반문하지 않을 수 밖에 없구려.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수서문제’는 물론이고 계속되는 정치권의 비리속에서 수괴는 사형, 무기,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처할 수 있는 ‘범죄단체죄’를 누구에게 적용해야하는지 정중하게 묻고 싶소.

<2000년대>

2002년 11월 4일 석탑춘추

2002년 11월 4일 석탑춘추春秋子, 지난 여름 안암1구역 철거민들의 소식을 듣고 많이 착잡했소. 그런데 이번에는 며칠 전 虎兄들의 무관심 속에 한 虎兄이 30여 년 간 살아오던 전원주택이 당국의 재개발 방침에 의해 철거돼 이 추운 날씨에 거리로 쫓겨났다고 하는데…. 다행히 당국에서 철거민을 위해 새로운 집을 마련해줬지만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 콘크리트덩이 가운데서 밤을 지샌다고 하오.
 30여 년을 살아온 집을 하루 아침에 빼앗긴 그 虎兄, 처음에는 분노도 일고 야속도 했지만 재개발을 통해 ‘자유‧정의‧진리’의 역사를 기념하는 건물을 짓는다는 말에 섭섭한 마음 모두 잊기로 했다고 하오. 더군다나 마음 넓은 虎兄, 곧 새로운 집이 완공된 후 집들이에 당국의 관계자들과 虎兄들을 모두 초대한다고 하니 公私多忙(공사다망)하시더라도 참석들 해주시구려. 아, 그 때 시간이 되지 않는 虎兄들도 너무 괘념치 마오. 매일 밤 본관 앞 잔디밭으로 술 한 병 손에 들고 오시면 春秋子와 虎象(호상)이 기꺼이 말동무 해주겠소.

 

2004년 4월 12일 석탑춘추
虎兄들! 잘 지내고 계시오? 지난주는 비상총회, 본관점거로 그 어느 때보다 학교가 어수선 했던 것 같소. 춘추자, 지난주는 참 ‘존경스러운’ 학생들은 보았소이다.
그 학생들은 다름 아닌 ‘본관 사랑파’학생들과 ‘교직원 사랑파’학생들이었소.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본관을 지키느라, 교직원분들을 지키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았겠소. 거기다가 교직원분들까지 본관 밖으로 ‘모셔다’ 드리느라 그 얼마나 노고가 많았소.
그런데 본관과 교양관을 지켰던 虎兄들! 교직원분들에게 ‘최소한의 대우’는 해드렸소? 춘추자는 ‘아버지뻘’ 되는 교직원들을 ‘끌어내는’ 몰상식한 짓은 하지 않았으리라 굳게 믿고 있소. 우리는 학내 구성원 간의 돈독한 정을 자랑하는 ‘民族高大’ 아니겠소? ‘지킬 것을 지키는’ 우리 虎兄들 아니겠소?

<현재의 모습>

2012년 9월 24일 석탑춘추

2012년 9월 24일 석탑춘추요새 인터넷상에서 ‘안암역’이라는 페이스북 가계정이 출몰하여 인기몰이 중이라 하오. 지하철역답게 안암역의 첫차, 막차 시간표 제공은 물론이고 고대생들을 위한 고려대의 각종 소식들까지 전해준다니 고맙기 그지없소. 또다른 가계정 ‘법대후문’은 응원OT와 고연전 당시 응원단을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올려 수많은 학우들의 지지를 받은 바 있소. 좋은 말 해주는 가계정들이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왜 사람이 먼저 말할 수 없었나 싶어 씁쓸하기도 하오. 이를 본 한 호형 말하길,
“사람 대신 얼굴없는 지하철역과 문들이 옳은 소리를 하니, 이 어찌 페이스북(Facebook)의 역설이 아니겠는가”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