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년 고려대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함께 역사를 만들며 지켜가고 있는 중앙동아리들이 존재한다. 개교기념을 맞아 고대신문이 거의 반세기 가까이 선배들의 정신을 충실히 이어가고 있는 교육봉사동아리 운화회(雲火會)와 흑백사진동아리 호영회(虎影會)를 취재했다.

‘교육’을 기부합니다, 운화회(雲火會)
1960년대, ‘공부’란 모든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가혹하고 살기에도 벅찬 환경은 공부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배우지 못한 자들에게 미래는 암담하기만 할 뿐이었다. 본교 중앙동아리 ‘운화회(雲火會)’는 이렇듯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낮에는 구름으로 햇빛을 가려주고, 밤에는 불기둥이 되어 길을 밝혀주자는 뜻을 가졌다. 운화회는 ‘교육 기회 불평등 현상 해소’라는 목표를 가지고 46년간 달려오고 있다.

시작은 단출했다. 운화회는 종로구청의 요청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관내의 신문팔이, 구두닦이 소년들과 학교에서 급사로 일하던 소녀들 60명을 모아 1967년 ‘종로직업소년학교(종로야학)’을 개교했다. 본교 재학생 1~2학년과 복학생 등 20여명이 중학교 과정을 가르쳤다.

오로지 공부에 대한 열정만 가득 찬 사람들에게 참된 교육을 실천해 나가던 운화회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당시 종로야학 과학 담당교사였던 방흥복(생물학과 71학번) 씨는 70년대 후반을 떠올리며 당시를 운화회 46년 역사상 최대 고비라 말한다. “1979년~80년 사이 대부분의 회원들이 노동야학을 하겠다고 ‘새벽광장’ 으로 개명하여 노동자를 위한 계몽활동을 했어요. 운화회는 교내 동아리방도 빼앗겼고, 약간의 복학생들을 중심으로 야학을 운영했죠”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은 졸업 선배들의 도움을 통해 타개할 수 있었다. 운화회는 졸업 선배들과 복학생들이 모은 후원금으로 학교 밖에 방을 얻어 야학을 유지시켜 나갔다. 1981년 동아리방을 다시 얻기 전까지는 이 조그만 방에서 열띤 가르침과 배움은 계속됐다. 최근에는 근처 상점들의 직접적인 도움 또한 큰 힘이 되고 있다. “베나레스, 고른햇살, 영철버거 등의 상점들이 저희 학생들에게 저녁거리를 제공하는 등 물질적인 후원을 많이 해주고 있어요”이렇듯 운화회는 여러 곳의 의미 있는 후원으로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종로야학’은 ‘반디청소년공부방’으로 명칭을 바꿔 저소득층(기초생활수급대상자, 차상위 계층) 가정의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환경은 놀랍도록 발전했지만 아직까지 교육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았다. 황순호(공과대 신소재12) 운화회 회장에게 교육은 나눔의 직접적인 표현이자 행동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교육 기회마저 소외되어 버린 사회계층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배운자는 베풀 줄 알아야 하기에 교육봉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40명의 재학생으로 구성된 운화회는 매해 신입생만을 모집하여 한 학번이 1년의 임기를 가지게 된다. 질 높은 교육을 위해 신입교사로 교생활동을 통해 경험을 쌓아 현직교사자격을 얻게 된다. 현재 11명의 재학생이 ‘반디청소년공부방’에서 현직교사로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현직교사들은 저소득층 가정의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주말 및 공휴일을 제외한 거의 매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수업을 진행한다. 또한 한 달에 한 번 토요일에는 학생들과 함께 체험학습과 같은 테마교육에 나서기도 한다. 힘들고 빡빡한 스케줄이지만 학생들이 지식을 쌓아가는 것에 흥미를 느끼며 노력하는 학생들을 보면 쌓였던 피로는 싹 가신다. “공부방 활동을 하면서 가르치는 학생이 공부에 재미를 붙이는 것을 보면 대견스럽고 힘이 납니다. 스스로의 노력이 가장 컸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이 뿌듯합니다”

운화회가 46년간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던 이유는 비단 체계적인 시스템과 학생들의 책임감과 성실성 때문만이 아니다. 500명 이상의 든든한 선배들의 물심양면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매년 5월 산행과 체육대회 등으로 계속되는 일에 지친 후배들을 격려하고 넉넉하지 못한 예산으로 운영되는 공부방을 위해 운영비도 지원해준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교육봉사 활동의 결과를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며 자신들의 꿈을 키워나간다. “야학 졸업생들이 선배님들께 연락하고 가정을 꾸려 아이와 함께 찾아와 감사하다고 하는 것을 볼 때, 선배들이 사회에서 이뤄낸 역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운화회 회원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사회는 ‘교육 봉사’라는 단어가 사라지는 사회다. 그들은 그 목표를 향해 46년을 달려왔고 앞으로도 달려갈 계획이다. “야학의 목표가 야학의 폐지였던 것처럼 ‘반디청소년공부방’의 목표 역시 공부방의 폐지입니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이러한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기회가 균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저희는 오늘도 46년간 이어온 ‘교육’을 하러갑니다”

흑백사진, 호영회(虎影會)
본교의 역사 속 수많은 사건을 반세기동안 카메라 렌즈로 지켜보고 기록해온 동아리가 있다. 바로 흑백사진 동아리 ‘호영회(虎影會)’다. 호영회는 50년 동안 고려대와 함께하며 역사적 순간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선배들이 아직도 기억하는 순간으로는 4.18과 4.19, 79년 계엄령 선포, 6.29 민주화 선언 등이 있다. 삼엄한 검열과 억압 속에서도 호영회 회원들은 몰래 촬영한 사진을 개인이 소장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역사를 기록했다. 호영회 18기 박종일(전기공학과 82학번) 동우회장은 지금도 그 때의 상황을 떠올리곤 한다. “역사 현장을 포착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현장에 나가 사진을 촬영했어요. 이러한 역사적 순간의 사진들은 개인별로 소장해 1980년대까지 교내외에 전시하며 민주화를 갈망한 학생들의 의지를 계속전달했어요”

민주화가 이뤄진 1990년대 이후에는, 일 년에 두 차례 ‘축제 보도 사진전’, ‘고연전 보도 사진전’을 열어 전교생의 뜨거운 반응을 얻기도 하였다. 이렇듯 이들에게 ‘흑백 사진’이 주는 의미는 더욱 크다. 컬러 사진이 대세를 이루는 최근에도 호영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흑백사진을 고수하고 있다. 사진을 자기 손으로 직접 현상하는 작업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성과 기다림의 미덕이 있기 때문이다. 김수빈(문과대 언어11) 현 호영회 회장은 흑백사진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을 찍고 바로 확인해보는 디지털카메라와 달리 필름카메라에는 찍고 현상 작화를 하며 그 결과물을 기다리는 설렘이 존재해요”

호영회가 50년 전통을 유지하게한 가장 큰 원동력은 ‘상상력’과 ‘감수성’이다. “예체능 학과가 발달하지 않은 고대의 특성상 예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이를 표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호영회를 찾아오는 것 같아요. 본인이 가진 예술성을 바탕으로 아름다움을 마음껏 표현하는 구심점에는 호영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입 회원들이 여는 ‘흑백사진전’과 사진에 보다 능숙해진 선배들이 여는 ‘보도사진전’과 같은 전시회를 통해 회원들은 내면의 예술성과 아름다움을 사진으로서 형상화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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