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충일에 6.25 전사자 유가족들이 서울국립현충원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
  6·25전쟁, 월남전의 전쟁터도 이렇게 더웠을까. 6월 6일, 제 58회 현충일은 올해 서울 최고 온도 31도를 육박하며 무더운 날씨를 보였다. 하지만 더운 날씨에도 추념식에 참여하려는 사람들과 고인에 참배하러 온 유가족의 인파가 서울국립현충원에 몰렸다.

  현충원에는 예상외로 교복을 입은 생기발랄한 중·고등학생들이 많았다. 사회봉사활동시간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나마 학생들에게 현충일의 의미를 되새겨주려는 국가보훈처의 뜻은 알겠지만 이날 학생들의 태도는 국가보훈처의 의도를 무색하게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진지한 참배의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 하늘 전체를 울리는 조포가 추념식 시작을 알리는데도 자리에 착석치 않고 나무그늘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떨었다. 식장을 나와 마실 것을 사러 가는 모습도 보였다. 그들의 불량한 태도는 노인들과 대조 됐다. 현충일을 기념하러 온 많은 노인들이 사전 신청을 하지 않아 추념식장 출입을 통제 당했다. 하지만 현충일에 관심없는 어린 학생들은 ‘추념’이라고 적힌 주황색 배지를 달고 자유자재로 그 옆을 오갔다.추념식 이후 참여 학생들은 느낀 바가 있었을까. 여중생 무리에 추념식에서 뭘 느꼈냐고 물었다. 우물쭈물하던 그들 사이에서 교정기를 낀 한 학생이 한말은 “대통령을 봐서 좋았어요”였다. 추념식이 끝나자마자 묘소 한 번 둘러보지 않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학생들의 모습은 오직 봉사활동 점수만을만을 보고 추념식에 참가한 듯한 인상을 줬다.

  이날 현충원에서 가장 찾아보기 어려웠던 연령대는 20대였다. 간혹 보인다고 해도 가족단위에 껴있거나 종종 보이는 ROTC가 전부였다. 4·19와 5·18에 순례단까지 꾸려지는데 비해 현충일이 학생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확연히 작았다. 4·19와 5·18은 민주화 과정에서 학생들이 앞장선 부분이 있어 부각된 측면이 있는 반면 현충일은 학생사회에서 무관심해 보였다.

  추념식이 있었던 현충문 앞 광장에서 안으로 더 들어가면 호국선열들의 묘소가 나온다. 할아버지부터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손자까지,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아이고 조심혀, 애비야 네가 한 번 가봐라” 정해기(67세·남) 씨의 세 살 쯤 보이는 손녀, 손자들은 묘비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이터라도 되는 듯 신나게 놀고 있었다. 정해기 씨는 “매년 빠지지 않고 현충일마다 이렇게 가족들이 모이고 있어. 우리는 연례행사처럼 현충일을 기념하고 있지만 일반사람들은 그저 기억이라도 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현재의 대학생들은 현충일을 단순히 휴일로 여기고 ‘기억이라도 해달라는’ 할아버지의 바람을 저버리고 있다. 애국선열이 친지 중에 있다면 간만에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 함께 기념해야 한다. 유가족이 아니라면 민족을 위해 스러져간 영령들을 기리고 현재의 호국에 대해 생각해 봐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봉사점수를 줘도 현충일을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청소년들과 휴일을 줘도 현충일을 기념하지 못하는 대학생들은 무엇이 다를까.

▲ wdh@ 우다현 시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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