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생각하지 않는 인간’ 아이히만을 말한다. 평범한 가장에, 주위 사람들에겐 친절했고, 동료들에게 평도 좋았던 아이히만은 나치 당원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아이히만은 유태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법정에 서게 되지만, 그는 반론한다. “저는 제 일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법정은 끝내 아이히만에게 ‘생각하지 않은 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사형을 집행한다. 아이히만은 철저한 악한도 아니었고 오히려 모범적인 시민에 가까웠지만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유태인 대학살에 일조했다. 이처럼 ‘무사유’의 위험성은 엄청나다.

  최근 제로센 전투기의 개발자 호시코지 지로의 일생을 담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 <바람이 분다>가 논란이 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지로는 전투기 제작자라는 신분에도, 전쟁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인물이다. 꿈을 이뤄준 제로센이 태평양 전쟁에 투입될 때도 그는 비행기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에 기뻐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지로의 순수한 ‘꿈’을 부각하며 그에게 면죄부를 주길 원하는 듯하다.

  어쩌면 지로는 일본의 아이히만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어린 시절 품어온 자신의 꿈을 위해서 노력한 평범한 남자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참혹한 전쟁에 기여한 그런 사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지로와 아이히만이 가지고 있던 ‘생각하지 않는 죄’, 그리고 그들의 ‘평범한 악’이 모일 때 뿜어나오는 광기의 위력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선택은 일본 전후 세대의 향수를 상징하는 제로센에 대한 헌사(獻辭)였다. 그의 헌사는 같은 정서를 지닌 일본인들에겐 잘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해자인 우리가 헌사를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아픈 과거와 그 안에 내포된 ‘무사유’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마음에 걸린다. 한 순간의 오판이 거장의 마지막을 불미스럽게 만드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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