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김수영 시인의 <사령(死靈)>중 나오는 이 구절은 어떤 말보다도 올 겨울 내 가슴을 후벼 팠다.

 2013년 끝자락 고려대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이슈라면 바로 ‘안녕들하십니까’가 아닐까 싶다. 나에게 대학생의 사회 참여란 소위 운동권 학생만의 이야기였지만 ‘안녕들’ 대자보에서는 내가 가깝게 알던 사람의 이름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자 한 자 손글씨로 써내려간 내용도 평범하지만 불편한 일상과 같았다.

 대자보는 언론에 연일 보도됐다. 처음 대자보를 시작한 학생부터 대자보를 보도하는 각 언론사의 시각 자체까지 모든 것이 화제가 됐다. 학보사에서 일하면서 대자보 시대의 종언을 전하는 기사를 읽어도 보고 페이스북 등 온라인으로 소식을 전하는 총학생회를 보면서 대자보가 반향을 일으킬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무언가 전에 없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쏟아내는 안녕하냐는 물음에 나는 동조하지 못했다. 시험 기간 전 토요일, 안녕하지 못한 학생들이 정대 후문에서 만난 그날 나는 도서관에 있었다.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포탈 사이트를 새로고침 해가며 기사로 정대 후문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폈다. 10분 거리도 안 되는 곳을 직접 볼 용기가 나지 않는 비겁한 나에게 ‘나의 영(靈)은 죽어버렸나보다’를 되뇌기만 했다. 고대신문 기자라는 자격으로 참여하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당장의 과제에 자신이 없어지고 무기력해졌다.

 방학이 된 지금 ‘김치녀’에 대한 대자보가 다시 붙고 있다. 비합리적인 여성 비하와 혐오를 꼬집는 이번 대자보도 실시간 검색어를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고 있다. 이번에도 내 영혼은 살아있는가 알아볼 수 있는 멍석은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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