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디지털단지 역 인근에 위치한 한 오피스 빌딩. 층마다 17개의 사무실이 자리 잡은 건물의 12, 13층은 대부분이 애니메이션 제작사 ‘디지털 이메이션’의 작업실로 채워져 있다. 채색 작업실에서 나란히 놓인 컴퓨터 앞에 앉은 사람들이 서로 의논하며 일을 진행하고, 동화(動畵) 작업실에서는 사람들이 칸칸이 가림판으로 가려진 개인공간 안에서 각자의 수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김수경(여·46) 씨는 디지털 이메이션의 제작이사로, 모든 제작 과정을 총괄한다. 김수경 씨는 “배경을 그리는 실무에서 시작했지만 배경에서 연출, 동화까지 여러 부서를 옮겨 다니면서 경험을 쌓고, 현재는 직원을 관리하는 일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고 자신으 소개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콘티→레이아웃→원화→모델체크→파이널→동화→채색(컬러)→합성→촬영’의 순서로 진행되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해 설명했다.

 제작의 시작

▲ ②레이아웃 단계

 콘티는 그림의 시나리오로, 이 단계부터 애니메이션 한 장면에 쓰일 부가적인 캐릭터나 침대, 쿠션 같은 세세한 소품을 모두 구상한다. 디지털 이메이션에서는 주로 미국, 일본 등 외국회사의 의뢰를 받아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외국어로 만들어진 콘티 아래에는 한국어로 번역된 설명이 달려있기도 한다. 레이아웃 단계에서는 어느 구도로 화면을 바라 볼 것인지, 인물, 배경 등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결정한다. 김수경 이사는 “서양학과를 전공하던 대학교 3학년 때 배경팀으로 처음 일을 시작하게 됐다”며 “200호 크기(259.1 × 193.9cm)의 서양화를 그리다가 조그만 종이에 작업을 하려니까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연출, 동화 등을 경험하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고 일을 시작하던 때를 회상했다.

 제작과정의 핵심인 원화
▲ ②레이아웃 단계

 제작과정의 가장 중요한 단계인 원화는 그림의 핵심이 되는 움직임을 원화 작가의 실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디지털 이메이션의 원화 감독을 맡고 있는 김재중(남·55) 씨는 “캐릭터가 팔을 접었다 피는 장면이 있다고 치면, 시작과 끝이 원화에 해당된다”며 “팔을 접은 상태가 하나의 원화이고 핀 상태가 다른 하나의 원화이며 그 사이의 움직임은 ‘동화’ 단계에서 맡는다”고 제작 과정을 설명했다. 김재중 감독은 이어 “아이디어만 그려져 있는 콘티에서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원화 작가의 역할”이라며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기 때문에 다들 예민하다”며 진행 중인 작품을 보여주는 것을 사양하기도 했다.

 모델 체크부터 촬영까지
▲ ③동화 단계

 원화 단계 이후에는 ‘모델 체크’ 단계를 거치게 된다. 여러 명의 사람이 동시에 하나의 작품을 그려내기 때문에, 캐릭터가 일관되도록 모델체커가 수정하는 단계다. 이후 진행되는 파이널 단계는 감독의 연출을 보조하는 조연출과 같은 ‘파이널’들이 동화 계획부터 그림 속 낮과 밤의 명암 차이까지 전반적인 상황을 체크하는 단계다. 동화 단계는 수많은 원화들 사이의 움직임을 표현해내는 과정으로 동화 작업실에는 복도에 붙은 종이에 ‘브라이언이 팔을 올릴 때, 가슴 라인 일부를 지워진 채로 두세요’와 같이 캐릭터를 그릴 때 주의사항들이 적혀져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합성 단계는 레이아웃 단계부터 따로 진행된 배경과 동화가 합쳐지고, 충돌 같은 시각적 효과가 더해지는 과정이다. 마지막 단계인 촬영 과정에서는 이전 단계까지 수작업으로 진행된 결과물 시트를 스캔해 컴퓨터로 옮겨 디지털 작업으로 변환하며 애니메이션 제작을 마무리한다.

 제작전문가의 보람
▲ ④채색 단계

 김수경 씨는 새벽에 작업을 하면서 어느 순간 좋은 결과가 보일 때를 일 하면서 겪었던 가장 짜릿한 순간으로 꼽는다. 그녀는 “밤새 힘들게 작업하면서 생각해낸 효과나 아이디어가 바로 눈에 보이면서 좋은 결과로 만들어질 때 가장 재밌다”며 “낮이 아닌 새벽, 혼자 일에 몰두해 있을 때 그 순간이 오면 희열은 배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외국에서 인정받을 때도 역시 보람 있는 순간”이라며 “최근에 LA출장을 가 의뢰받았던 워너브라더스사의 ‘스쿠비 두(Scooby-Doo)’ 제작 결과물을 인정받기도 했다”고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일하면서 힘든 부분도 있다. 김수경 이사는 “선후배 사이가 있긴 하지만 그림에 있어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경쟁하는 구도”라며 “우리나라는 연세 있으신 분들에게 공경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온전히 실력만으로 그림을 선별해야 할 때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가장 중요한 건 재능
▲ ⑤배경 단계

 애니메이션 제작자는 재능만 있다면 대학의 전공은 상관없다. 김수경 씨는 “직원들 중에는 이공계 계통을 전공한 분도 있고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분들도 있다”며 “평소에 학생들을 보며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과 맞지 않는 전공을 택하고 5,6년을 손해 보는 게 참 안타까웠다. 만약 전공이 이 방면이 아니더라도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심이 있다면 일단 도전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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