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성대 학보사 ‘한성대신문’ 492호 1면 메인 기사는 주간 교수와의 마찰로 실리지 못했다.

  한성대 학보사 ‘한성대신문’은 10월 1일 신문의 1면 메인 기사를 백지로 발행했다. 학교를 비판하는 내용이라는 이유로 신문 조판 당일, 주간교수가 특정 기사의 삭제를 요구했다. 이에 불응한 기자들은 결국 1면 메인 기사를 다른 기사로 대체하지 않고, 빈 공간으로 내기로 결정했다. 한성대신문 한재원 편집국장은 “백지 발행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기에 학교 측과 학생들에게 모두 주목을 받았지만, 그 이후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한성대신문의 주간교수였던 이재문(한성대 멀티미디어공학과) 교수는 이 사안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고 일축했다. 이처럼 학교가 학보사의 편집권을 침해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개강 지나 발행된 개강호
  최근 2개월 동안 국민대, 성균관대 등 일부 대학에서 학보사와 학교 측 혹은 주간교수와의 갈등으로 인해 신문이 예정일보다 늦게 발행되는 일이 발생했다. 성균관대 학보사 ‘성대신문’은 주간교수와의 마찰로 9월 1일 개강호 발행이 취소됐다. 개강호 발행 취소 명목은 ‘학내사안 부족’이었다. 성대신문 조수민 편집국장은 “원래 학보사는 보도부만 학내사안을 다루지 기획부는 대개 학내사안을 다루지 않는 편”이라며 “이처럼 학보사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하지 않은 채 기존 16면의 신문을 12면으로 내릴 것을 요구 받았다”고 말했다. 성대신문은 주간교수의 이러한 요구에 불응해 결국 개강호를 발행하지 않았다.

  조수민 편집국장은 주간교수가 성대신문에게 개강호 면을 줄이는 것을 요구한 암묵적 이유는 1면 기사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조수민 편집국장은 “당시 1면 기사엔 성균관대 정문 공사가 학생들의 의견 수렴 없이 진행됐다는 비판적인 내용이 실렸었다”며 “이에 대해 주간교수가 지속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표했다”고 말했다.
 
▲ 국민대 학보사‘국민대신문’은 9월 1일자 신문을 발행할 예정이었으나, 주간교수와 학교 측과의 편집권 갈등으로 이틀 후인 3일에 신문을 발행했다.

   국민대 학보사 ‘국민대신문’은 9월 1일 개강호를 발행할 예정이었지만, 이틀 후인 3일에야 발행될 수 있었다. 국민대신문 박상희 편집국장은 “1면 메인 기사로 총학생회 특혜 기사를, 하위 기사로 학내 공간 재배치 문제 기사를 배치했다. 당시 보도면이 전반적으로 비판적인 논조를 띄고 있어 주간교수와 홍보팀 소속 편집편성국장이 보도면의 지면 배치 변경을 요구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기자들과 편집편성국장, 주간교수 사이에 지면 구성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 9월 3일에야 개강호가 발행된 것이다. 개강호 1면에는 ‘우리학교, 정부 재정 지원 사업 선정에서 큰 성과 거둬’라는 제목의 하위 기사가 실렸다. 국민대신문 장상수 편집편성국장은 개강호 발행이 지연된 점에 대해 “학생기자의 자율권 침해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신문사 내부적으로 논의가 길어져 제작이 늦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편집권 갈등, 하루 이틀이 아니다
  학생 기자와 주간교수 간의 편집권을 둘러싼 갈등은 매년 발생해왔다. 먼저 건대신문은 2011년 주간교수와의 마찰로 1260호 발행이 중지됐다. 1260호 제작 과정에서 학생기자는 학생총회가 무산된 기사를 1면 톱으로 다루려고 했지만 정동우 주간교수는 이를 다른 기사로 교체할 것을 지시했고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이동찬 전 편집국장은 “기자들이 계속 정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자 정 교수가 편집 업무는 미디어 실장이 우선 승인을 한 뒤 본인이 최종 승인을 해서 신문을 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라고 말했다.

  건대신문은 당시 정 교수의 편집권 침해를 이유로 파업을 선언했다. 파업 당시 편집권 침해를 알리기 위해 호외호 신문을 2차례 발간했다. 당시 신문에는 1면에 실리지 못 했던 학생 총학 무산과 건대신문의 파업 이유와 다시 편집권을 회복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글이 실렸다.

  건대신문 발간 중지 와 호외호 발간에 대해 정 교수는 “편집권은 학생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학생들의 의견만으로는 신문을 만들 수 없다”며 “이전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건대신문 김혜민 편집국장은 “새로운 주간교수로 바뀐 현재는 편집권 침해 문제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9월 건국대에는 정 교수의 건대신문 편집권 침해 사례와 관련해 정 교수의 수강신청 철회를 촉구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에는 △건대신문 편집권 침해 △건대신문 사설을 통해 김진규 전임 총장과 법인을 옹호한 사례 △2009년에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강압적인 태도를 보여 적은 학생만이 수업을 듣는 등 3가지 이유를 들면서 정 교수의 수강신청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사례가 있었다. 대자보를 작성한 금준경(건국대 대학원·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씨는 “학생들이 정 교수가 편집권을 침해하는 등의 부적절한 행위를 알리고 싶어 대자보를 작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편집권 침해는 편집국장 해임이라는 방식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한국외대 학보사 ‘외대학보’는 2013년 1월 3일, 당시 편집국장이던 강유나 씨가 권고사직됐다. 학교 측의 통보를 무시하고 신문을 발행했다는 이유에서다. 12월 총학 선거를 앞둔 2012년 11월 28일, 학교 측은 강유나 전 편집국장에게 ‘선거에 관련된 모든 기사를 쓸 수 없다’는 통보를 했다. 당시 강유나 외대학보 전 편집국장은 해당 통보가 불합리하다고 판단해, 외대학보 기자들과 논의 끝에 사비로 2012년 12월 3일 총학 선거에 대한 기사를 냈다. 이에 강유나 외대학보 전 편집국장은 2013년 1월 3일 주간교수로부터 “편집장이 유지될 경우 앞으로의 외대학보의 활동은 어려울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고, 권고사직을 하게 됐다.

 비판 기능 상실한 채 명맥 유지만
  학보사가 이미 학내 비판 언론으로서 기능을 잃었지만, 가까스로 명맥을 이어오는 학보사도 있다. 경기권의 한 대학 학보 1면에는 항상 학교 홍보팀에서 작성한 글이 게시되며, 학교 직원인 간사가 신문의 아이템부터 기사 내용 모두를 검열한다.

  해당 학보사의 편집국장은 “학교 비판 기사는커녕 학교의 잘못을 옹호하는 기사를 쓰라고 지시하기도 한다”며 “기획회의에서 통과한 기사 아이템이 조판 시 학교에 불리하게 서술된 점이 있으면 바로 삭제되고 다른 기사나 사진으로 공간을 메우는 일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편집권을 침해받는데 학보사를 운영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학보사가 사라지면 학교 내 누군가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의식까지 사라져 학교의 행태가 더 심해질 것”이라며 “편집권 회복을 하기 위해선 학보사가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보사가 필요한 자세는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기획국장은 학보사가 학교 홍보지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학보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학교에서 학보사 운영을 비용적 측면에서만 보거나 학교 홍보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게 문제”라며 “학생기자들도 학교가 원하는 방향으로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스스로를 혁신하고 바꿔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생기자가 스스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대 학보사 ‘대학신문’의 유홍림 주간교수는 “학내 공식 언론기관으로서의 학보사는 다양한 대학 구성원들의 활동과 의견을 한정된 지면에 균형 있게 반영할 의무가 있다”며 “학생기사는 학내의 주요 이슈들은 모든 구성원의 관심 대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홍림 교수는 “점점 사라져가는 공론장의 마지막 보루인 대학에서, 대학 학보사가 부분적이고 사적인 이해관계를 넘어서 공동선의 관점에서 공적 정당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기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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