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났다. 저 어딘가에 은지가 있겠지. 나는 망원경을 들고 야트막한 언덕을 올랐다. 발목까지 오는 성긴 풀밭을 헤치며 걷다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시가지에서 한참이나 걸어왔는데도 네온사인 불빛은 타오르듯 내 눈까지 날아들었다. 나는 적당한 곳에 멈춰 서서 삼각대를 세우고 숨을 깊게 들이켰다. 어둡고 조용했다. 둥그렇고 하얀 경통 위에 뽀얗게 쌓인 먼지가 눈에 띄었다. 손을 뻗어 경통을 쓰다듬었다. 손가락이 움직인 곳을 따라 작은 길이 생겼다.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밤하늘은 여전히 어두웠고, 별은 여전히 희미하게 반짝였다. 나는 망원경의 가대를 북쪽으로 돌리고 파인더에 눈을 갖다 댔다. 투명한 렌즈 너머 어둑한 밤하늘을 뚫고 별들이 하나 둘 툭툭 터져 나왔다. 데네브는 찾기 쉬웠다. 다른 별보다 약간 더 밝은 정도로 남서쪽 하늘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 근처 어딘가에 지금, 은지가 있겠지. 나는 떨리는 별빛을 바라보며 손으로 경통을 움켜쥐었다. 오금에 찬 땀이 종아리를 따라 오싹하게 흘러내렸다.
 
    넌 안 가? 은지가 물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교실에서 가장 바깥에 있는 자리는 내가 앉은 창가 자리이다. 더운 여름에는 아무도 창가에 앉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내 작은 조망권을 쉽게 보장받을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은지가 앞에 서서 일부를 가리고 있긴 하지만. 눈부신 햇살이 나무를 상쾌한 초록빛으로 비췄다. 나무뿐만이 아니라, 바깥에 있는 것들은 모두 하나같이 눈이 시릴 정도로 빛났다. 자동차 유리에 맴도는 햇빛, 뛰노는 아이들의 머리카락. 교실 안쪽과는 판이하게 다른 세계였다.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희미하게 아까 본 햇빛이 눈꺼풀 안쪽에 어른거렸다. 왜? 눈에 어린 빛의 얼룩에 은지의 이해할 수 없어하는 얼굴이 겹쳐보였다. 그냥. 생각 좀 해보게. 교실 안은 불이 꺼져있어 어둑했다. 분필가루에 파묻힌 칠판, 책상 위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는 같은 반 여자애의 얼굴 따위가 잔뜩 널브러져 있는 곳. 풀어버린 치마 호크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내 치마가 배를 조여 왔다. 며칠 안 남았어. 은지는 나를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침묵이 흘렀다. 은지는 내가 대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고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애의 눈에는 저 빛나는 세계만 들어오겠지.

    안 가는 사람들도 있어, 한참 후에 내가 말했다. 은지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난 표정이었다. 그거야 뭔가 있는 사람들 얘기지! 은지는 뭐라 더 할 말을 찾더니, 나를 흘겨보고는 인사도 없이 교실 앞문으로 뛰어 나갔다. 쿵쿵, 불친절한 발걸음 소리에 잠들어있던 여자애가 부스스 고개를 들었다.

    나는 다시 바깥을 바라보았다. 멀리 운동장에서 생기 넘치는 웃음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나뭇가지에 잔뜩 매달린 푸른 잎사귀들이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넘실거렸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창문, 이 거기 있었다. 창문이 바깥과 안을 가르고 있었다. 이것 때문이었다, 교실과 바깥세상이 이토록 다른 것은. 손을 뻗어 창문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따스하게 데워진 창문이 와 닿았다. 그건 나에겐 창문이 아니라 벽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아버지는 술을 잔뜩 마시고 있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어둑한 밤거리를 지나 집으로 오는 동안 나는 하늘을 줄곧 바라보았다. 새카만 하늘에 몇 남지 않은 별이 흐릿했다. 심야 뉴스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지구를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알려주었다. 신청자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고, 이 원인은 다양하다고, 유가 폭등, 양극화, 우주 관광…. 아버지 손에 들린 초록빛 소주병이 쪼르르 하고 잔으로 제 몸을 비웠다. 나는 다녀왔습니다, 하고 아버지께 인사했다.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아버지가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할아버지, 돌아가셨다. 작년 설, 치매에 걸려 할아버지가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한다고 고모가 늘어놓던 불평이 떠올랐다. 나는 돌아다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지금 울고 있겠지. 내일 결석계 내고 나하고 같이 내려가자꾸나, 아버지는 말을 마치고는 잔을 들이켰다. 탁 하고 잔이 탁자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나는 작게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불 꺼진 방 안에서 형광별들이 반짝였다. 나는 닫힌 방문에 등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섯 개의 꼭짓점을 갖춘 만화 같은 별들이 노란 빛을 은은히 뿜고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 묻힌 방이 온전히 보일 때까지 불을 켜지 않았다.

 어렸을 적 섬에 가본 적이 있었다. 겨울바람이 매섭던 바닷가, 숙소에서 나와 한참을 걸었다. 형광등 빛이 희미해질 무렵, 아버지는 드러누워 하늘을 보라고 했다. 막막하던 어둠을 뚫고 별이 하나둘 툭툭 터져 나왔다. 아버지가 아는 것은 큰개자리와 오리온자리뿐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오리온자리의 붉은 별, 그리고 쌀가마니가 터져 쏟아지듯 내 눈에 들어오던 수많은 별이었으니까. 나는 성도와 천체브로마이드를 아버지에게 졸랐고, 아버지는 천체망원경을 구해왔다. 한동안 나는 밤하늘을 더 잘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흥분해있었다. 별자리를 찾는 법과 망원경을 다루는 순서를 수없이 반복해서 익혔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별들이 다르게 보였다. 아버지는 가대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이윽고 눈을 들어 내게 손짓했다. 나는 접안렌즈에 눈을 갖다댔다. 오리온자리를 이루는 별 다섯 개만 빈 밤하늘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빛나지 않았다. 네온사인 불빛에 눌려 위태롭게 흔들리는 별빛은 오히려 초라해보였다. 나는 집에 돌아와 망원경을 창고에 집어넣었다.
 
 그들이 온다고 했다. 뉴스는 매일 특보를 쏟아냈다. 처음에는 과학의 이름으로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유성군이라고 했다. 다음에는 폐기된 궤도위성 같은 우주 쓰레기들이 대기권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했다. 그 다음에는, 그들이 왔다고 말했다. ‘그들이 왔다’는 타이틀의 뉴스는 ‘인류의 선택’이라는, 제법 장황한 철학적 수사를 서두에 달고 나왔다.

 우주선이 왔다고 했다. TV 속에서 마이크를 잡고 떠드는 외계인의 모습은 내 상상과는 완연히 달랐다. 나는 토끼처럼 새빨간 두 눈과 식빵 같은 머리, 툭 튀어나온 배를 상상했지만, 그들은 강낭콩처럼 새카만 두 눈과 작은 머리, 매끈한 몸과 긴 팔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외계인은 내가 보기에도 흥분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여자 목소리의 더빙이 외계인의 높은 목소리와 섞여 귀에 어지럽게 흘러들었다. 우리는 지구 시간으로 일주일 간 이곳에 머물 예정이라고, 이 우주선을 타면 지구 시간으로 150년 간 은하계를 여행할 수 있다고, 이 흥미로운 여행을 우리와 함께 떠나자고. 다음으로는 두꺼운 안경을 쓴 정부 인사가 나와서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우주선은 각국 주요 도시마다 몇 대씩, 도합 120개국 547개 도시에 3천여 대가 도착해있다고, 여행을 원하는 사람은, 정부와 외계인들 간의 협의가 끝났으니, 가까운 동사무소에 신청서를 제출하면 우주선에 자리를 배정받을 수 있다고. 지친 그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같은 종족인 그가 외계인보다 낯설었다.

 사람들은 미친 듯 날뛰었다. UFO에 납치된 적이 있다고 주장하던 몇몇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서 강연회를 열었고, NASA는 밀려드는 항의전화를 견디다 못해 공식적으로 외계인의 존재를 인정했다. 인터넷에서는 외계 여행이 연일 오늘의 검색어로 선정되었다. 외계인 팬 카페가 생겨났고, TV에 나온 연설 장면을 찍은 캡쳐가 떠돌아다녔다. 외계인 연설이 엉성한 인형극이었다는 주장도 있었고, 반대로 이 장면이야말로 우주 역사의 쾌거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며칠간 계속되던 커다란 혼란이 잦아들자, 이번에는 보다 현실적인 논의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떠날 것인가 말 것인가. 인류가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의견이 있었고, 이 모든 것이 노동력이 부족해진 외계에서 노예 노동력을 손쉽게 구하기 위한 음모라는 설도 떠돌아다녔다. 몇몇은 이 이야기에 겁을 집어먹고 등록을 포기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쪽을 택한 덕분에 전국 각지의 동사무소는 모처럼 붐볐다. 모두들 이곳을 떠날 것이라 호언장담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하나같이 아쉬움이 깃들어있었다. 그리고 이륙 사흘 전이었던 오늘, 은지는 동사무소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은지를 처음 본 것은 올해 초였다. 같은 반 아이들 중에 말수가 가장 적었던 그 애는 친구도 가장 적었다. 많은 얘기들이 뒤에서 오고갔다. 작년에 통칭 ‘변태’인 미술선생님에게 뺨을 맞고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는 말도 있었고, 그 애가 갔다 온 화장실 쓰레기통엔 생리대 대신 콘돔이 있었다고도 했다. 그 애가 그 얘기들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했다. 한동안은.

 열아홉, 고3. 누구도 자기와 관련 없는 일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중간고사가 끝날 무렵이 되자, 그 애가 누군가와 대화하는 일은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처음으로 단 한명의 친구도 없이 점심을 혼자 먹던 날 이후로 은지는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그 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청소나 점심식사를 같이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달뜬 목소리로 조잘대는 그 애는 내가 알던 은지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가면을 쓰고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들을 꾸며내느라 은지는 피곤해보였다. 여전히 아이들은 은지를 신기하고 이해할 수 없는 아이, 그래서 피하고 싶은 아이로 여겼다. 그 많은 날들이 지나고도 은지는 혼자였다.

 내가 옆에 앉았을 때, 은지는 나를 가장 친한 친구처럼 여겼다. 내게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보내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나 자기 생각 따위를 일일이 내게 말했다. 은지의 취향, 태도, 사상에 문득문득 위화감이 밀려왔지만, 나는 은지가 가여웠다. 은지는 내가 미처 알지도 못하던 것들을 좋아했다. 만화책, 외국 CD, 겉표지가 화려한 소설들. 나는 은지가 어떠냐고 물을 때마다 좋다고만 말했다. 그러면 그 애는 작게 웃곤 했다. 하지만 내가 좋았던 것은 알고 싶지도 않던 세계가 아니라 그 애가 웃는 모습이었다.
 
 가는 동안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붉게 충혈 되어 고집스레 창밖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은 이내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며 굳게 감겼다. 나는 기차를 타는 동안 단 한순간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점토에 조각도로 그은 금처럼 주름살이 얼굴 곳곳에 부드럽게 패여 있었다. 누가 저 수많은 금을 그었을까, 저 중에 할아버지의 금은 어느 것일까. 생각해보면 나는 할아버지와 친하지 않았다. 내게 할아버지는 세배하면 세뱃돈을 주는 어른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내려가는 표값이 아깝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나는 방문을 거른 적이 많았다. 아버지는 그 시간들을 후회하고 있진 않을까. 아버지의 주름 가득한 옆얼굴 너머로 풍경이 빠른 속도로 스쳐지나갔다. 칸칸이 회색 건물이 가득한 도시에서 갓 심은 모가 모가지를 쭉 내밀고 있는 시골까지, 다시 시골에서 도시까지. 동대구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을 때, 나는 그를 조심스레 흔들어 깨웠다. 당황하며 깨어난 아버지는 곧 정신을 차리고 내릴 채비를 했다. 그 순간의 눈빛만큼은 잊을 수 없다. 다른 세계에서 갓 넘어온 듯 연약한 짐승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눈빛. 나는 말없이 짐을 들고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다.
 
 병원은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택시기사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저 운전만 했다. 아버지는 육지를 애타게 기다리던 산타 마리아 호의 선원처럼 조수석에 앉아 앞쪽만 바라보았다. 덕분에 차 안은 견고한 침묵이 맴돌았다. 누구도 감히 깨뜨릴 수 없는 침묵. 나는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면서, 병원이 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트렁크를 닫기 전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햇무리가 껴서 잔뜩 흐렸다.

 장례식장은 향내가 가득했다. 조문객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던 친척들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허리를 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낯선 얼굴들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니도 인제 고삼이제? 아이고 마, 고생이 억수로 많제? 공부 열심히 해야할낀데 우짜노… 암튼 잘 왔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인사치레에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척 하고 있는 상황이 불쾌했다. 나는 적당히 인사하다가 친척들이 아버지에게 관심이 쏠렸을 때를 틈타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주머니를 뒤적여 핸드폰을 꺼냈다. 좀처럼 연락이 오지 않는 시계대용의 핸드폰이었지만 웬일인지 문자가 세 통이나 와 있었다. 나는 장례식장 복도를 천천히 거닐면서 하나씩 확인했다.
 
새 메시지 1
정말 안갈꺼야?
7/1 10:43 pm
은지
010-2028-5707
 
새 메시지 2
할아버지돌아가셨
다며?명복을빈다
힘내..이제볼날없
겠네이륙날은학교
휴교래
7/2 9:53 am
은지
010-2028-5707
 
새 메시지 3
그동안고마웠어친
구야 안녕
7/2 9:57 am
은지
010-2028-5707

 
 답장을 할까 전화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문자가 한 통 더 왔다.
 
새 메시지 1
들어와밥먹자
7/2 6:38 pm
아빠
010-6772-7889
 
 나는 장례식장을 찾아 들어갔다.
 저녁상은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나는 아버지 곁에 가 앉았다. 맞은편의 작은아버지는 술에 거나하게 취해 끊임없이 아버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우울한 표정으로 작은아버지의 말을 들으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는 젓가락을 집어 들고 이 반찬 저 반찬 깨작여 보았다. 아무래도 식욕이 나질 않았다. 작은아버지는 내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말을 꺼냈다. 느그 할아부지 참말로 훌륭한 분이셨던 거 니 아나? 형님, 야한테 말 안 해줬심꺼? 나는 작은아버지의 눈길을 따라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없으셨다. 그 새빨간 눈을 보자 밥 먹을 마음이 싹 사라졌다. 목구멍이 밥알도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좁게 느껴졌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잘 먹었습니다, 하고 인사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다들 작은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비록 가실 땐 치맨지 뭔지 뵈기 덜 좋았심니다만…. 우리 아부지가 말임더, 일제시대 때 아부지가 작은 가게를 하나 내갖고 있었는데, 하루는 순검 놈들이 아부지 가게를 덮쳤다 아입니꺼…. 나는 작은아버지의 연설을 뒤로 하고 장례식장을 나갔다.
 
 바깥은 어스름이 깔릴 즈음이었다. 이맘때쯤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면 이목구비가 흐릿하게 섞여버린다. 남들이 볼 땐 내 얼굴 역시 뭉그러진 것처럼 보이겠지. 이 시간대의 매력은 여기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모두가 형체 없는 얼굴을 가지는 시간, 내가 나일 필요가 없는 시간.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일이 이 시간만큼은 비현실적이다.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저녁상 앞에 꼼짝없이 붙잡혀있을 때 걸려온 전화였다. 은지 번호가 찍혀있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은지는 내게 전화한 적이 없었다. 항상 문자로만 대화했기 때문에 나는 그 애의 목소리를 잘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의 목소리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기분은 어떨까.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없는 번호였다. 이미 핸드폰을 해지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라도 150년간 여행을 떠난다면 돌아와서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하는 게 잔뜩 쌓인 고지서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핸드폰을 덮고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불룩해진 주머니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불편하게 꿈틀거렸다.

 내게 아버지만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침묵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대개 다음의 두 질문을 던진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쩌다 헤어졌는지, 아버지만 있는 삶은 어떤지. 나는 답 대신 매번 웃기만 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습관처럼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면 매번 가슴이 철렁했다. 아버지 없는 삶을 떠올려보자면 언제나 지옥이었다. 좋건 싫건 아버지 곁이 내 자리였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떠날 것이다. 나는, 글쎄 나는 어떻게 될까. 은지가 내게 물을 때마다 나는 매번 고민했지만, 여기가 아닌 곳을 떠올리기란 불가능했다. 내가 보고 듣고 만진 모든 것이 모두 이 단단한 지구 위에 있었다.

 이건 일종의 복권 같은 거야, 나는 어릴 적 아버지와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복권을 사러 갔던 일을 떠올리면서 은지에게 설명했다. 더운 여름날이었고, 아버지와 나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나는 가판대를 발견하자마자 아버지에게 음료수를 졸랐고, 아버지는 물을 사면서 복권 두 장을 함께 집어 들었다. 나는 그때 복권을 처음 보았다. 아빠 그게 뭐야? 응, 이건 복권이야. 운이 좋은 사람은 이걸 사면 부자가 될 수 있단다. 은지는 아버지의 근엄한 말투를 흉내 내는 나를 보고 깔깔 웃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아빠는 이렇게 이쁜 딸이랑 함께 있으니 얼마나 운이 좋니, 그래서 사보는 거야. 그 주말 아버지는 금방이라도 TV속으로 들어가 진행자의 멱살이라도 잡을 것처럼 브라운관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자신의 말씀과는 달리 그다지 운이 좋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지구의 법칙을 처음 배웠다. 이 행성에서는 그 누구도 원하는 만큼을 가질 수는 없다고. 은지는 내 마지막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전에 말했던 밴드의 음악이 어땠느냐고 내게 물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카만 어둠이 거기 있었다. 별조차 뜨지 않는 밤, 달빛이 얇은 커튼 뒤에 숨어있듯 흐리게 빛났다. 구름 때문이겠지. 나는 집에 두고 온 천체망원경을 떠올렸다. 어렸을 적 이런 하늘은 내게 절망감을 불러일으켰다. 별을 볼 수 없는 하늘은 결코 내가 가지고 싶던 것이 아니었다. 다시는 하늘이 개이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면 땅이 푹 꺼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오리온자리를 떠올렸다. 내게 하늘을 준 별자리, 맑은 겨울날 저녁이면 늘 내 곁에 있어주던 별자리. 손을 뻗어 아무 것도 없는 밤하늘에 오리온자리를 그려보았다. 모래시계 같은 모양 가운데 허리춤에서 줄지어 빛나는 별 세 개. 여기를 떠나면 내가 보던 오리온자리는 막막한 우주 속에서 잔뜩 일그러진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겠지. 나는 손을 든 채로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아래로 아까 그린 오리온자리가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다른 관점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문제는 간단해졌다. 그러자 답도 간단해졌다. 나는 지구에 남기로 결심했다.
 
 영결식은 오전에 흩날리는 안개비 속에서 무사히 마쳤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아버지는 무덤에 드러눕고 난리도 아니더라. 나는 내가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두운 하늘 너머에서 조금 더 굵어진 빗줄기들이 날아왔다. 아버지는 왠지 말이 많아졌다. 할아버지의 관을 싣고 있던 버스 안의 분위기부터 풍수지리사가 묏자리에 대해 남긴 평가까지 아버지는 자신이 겪은 모든 것을 다 내게 전달해주려는 듯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 나는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며 빗방울이 날아와 버스 창문에 알알이 맺히는 것을 몇 시간 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다시 잠들었다.
 
 터미널에 도착했는지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도착했어요, 일어나세요. 이 아가씨 혼자 오셨나보네. 버스기사였다. 나는 황급히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버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아버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물방울이 맺힌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어렴풋한 바깥 풍경 너머로도 아버지는 없었다. 나는 놀라 버스에서 허겁지겁 내렸다. 아버지의 겁먹은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도 지금 그런 표정이겠지. 겁먹고 놀란 작은 짐승 한 마리.

 비는 그쳤지만 물웅덩이가 여기저기 패여 있었다. 나는 터미널 앞을 철벅거리며 뛰어다니며 아버지를 불렀다. 아빠! 비온 뒤의 축축한 공기가 뺨에 와 닿았다. 아빠! 흙탕물이 발목 높이까지 튀면서 발이 흠뻑 젖었다. 아빠!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많은 사람들 중에도 아버지는 없었다. 목이 아파서 나는 소리 지르는 일을 그만두었다. 숨이 찰 정도로 뛰던 심장박동이 눈앞의 습한 안개로 변할 때까지도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 대합실 의자에 앉았다. 문자가 와 있었다.
 
새 메시지 1
미안하다 우리딸
건강해라
7/3 10:12 pm
아빠
010-6772-7889
 
 아버지가 떠나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떠난 것을 보니 이 상황이 참 당연하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이곳에 발붙이지 못할 사람이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복잡해졌다. 나는 내가 울어야하는지, 혹은 그럴 필요 없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영문도 모를 눈물이 방울지어 치마폭 위로 떨어졌다. 왜 눈물이 나는 걸까, 치마폭에 고여 있다가 무릎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남의 눈물처럼 느껴졌다. 한참 생각해봐도 적당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눈물이 그치자마자 집으로 향했다.
 
 축제라도 벌어진 듯 TV 속의 세계는 온통 시끌벅적했다. 특집방송은 우주선이 이륙할 순간만을 기다리며 밤새 계속될 모양이었다. 새카만 하늘을 배경으로 축하폭죽이 펑펑 터졌다. 폭죽은 순간순간 번쩍이면서 여러 가지 꽃을 닮은 빛의 그림자를 남겼다. 모인 사람들은 두 종류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카메라에 큼지막하게 잡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대와 두려움이 묘하게 섞인 얼굴이었다. 빨강 노랑 파랑 불꽃이 비치는 얼굴들에 환하게 웃는 입과 두려워하는 눈꼬리가 동시에 있었다. 카메라의 배경에는 배웅하러 온 사람들이 보였다. 입을 꾹 다물고, 이제 곧 올 이별의 순간이 조금이라도 늦게 오길 기도하면서 흐느끼는 사람들은 곁에서 기뻐하며 뛰노는 사람들을 힐금힐금 보며 눈을 흘겼다.
 나는 브라운관에서 눈을 뗐다. 아버지가 없는 집은 낯설었다. 불을 켰는데도 거실 구석구석에 아직 어둠이 남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TV에서 나오는 소리 말고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나지막이 은지야, 하고 불러보았다. 대답이 없었다. 나는 아빠, 하고 한 번 더 불러보았다. TV는 다시 축포가 수놓는 하늘을 클로즈업했다. 방충망에 모기가 한 마리 달라붙어있었다. 방충망을 툭 치자 모기는 날아올랐다가 다시 방충망에 들러붙었다. 너는 갈 거야, 안 갈 거야? 모기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방충망을 열어버리고 다시 TV에 시선을 집중했다.

 리포터가 짐짓 들뜬 말투로 이륙장을 여기저기 누비면서 떠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리포터가 한 중년 남성에게 떠나는 소감을 묻는 장면이었다. 뒤편에 작게 아버지가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천천히 걷다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아빠, 나는 작게 소리 내 불러보았다. 아버지는 카메라를 잠시 지켜보더니, 다시 고개를 수그리고 화면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지만, 카메라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화가 나 눈을 돌렸다. 형광등 아래를 모기가 맴돌고 있었다. 나는 모기를 잡으려 손을 들었다. 리포터는 다음 인터뷰를 시작하고 있었다. 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아 전 대광여고 3학년, 이었던 김, 은, 지입니다.

 은지였다. 나는 그 애의 얼굴을 확인했다. 딱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생머리, 테가 굵은 안경, 턱이 뾰족한 얼굴선에 있는지 없는지 모를 쌍꺼풀과 가느다란 입술. 떠나는 사람들이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것 아니냐는 여론이 있죠. 리포터는 카메라를 똑바로 마주보면서 질문을 시작했다. 은지 양은 떠나는 입장에서 미안하다거나 그렇지 않나요? 아냐, 그렇지 않아,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은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하기 시작했다.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복권 같은 거죠. 그 애는 복권을 발음하면서 카메라에 눈을 맞췄다. 저는 떠나는 복권을 샀지만 이게 당첨될 복권인지 아닌지 몰라요. 더 나은 세계를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로 노예로 팔려갈 지도 모르죠. 슬프긴 해도 미안하지는 않아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으면 좋겠네요.
 
 하늘이 밝아오자 이륙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출발! 캐스터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이제 인류는 광활한 우주로 거대한 첫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우주선이 불투명한 유리창처럼 탁하게 빛나는 구름을 배경으로 천천히 날아올랐다. 나는 우주선이 구름 틈새로 사라질 때까지 계속 지켜보았다.
 
 할아버지는 항상 아빠한테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어. 사실은 미안할 게 하나도 없었는데도 말이지. 아빠는 원하던 곳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대학을 나왔고, 결혼도 해봤고, 이렇게 예쁜 딸까지 있는데도 할아버지는 계속 미안하다고 했단다. 아버지가 되어보고 나니까 알겠더라. 그런 게 부모 마음인가 보더라. 그런데 유서를 보니, 상속자는 작은아버지와 고모들로 돼있었어, 내 이름은 없었고. 이상하지, 그치? 이럴 분이 아니신데, 이럴 분이 아니신데….

 흘려듣던 아버지의 말씀을 떠오르는 단어들로 재구성하려고 애쓰며 나는 내가 바라보고 있던 창문을 떠올렸다. 새카만 밤하늘에 가로등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가로등은 버스가 갈 길을 알려주듯 두 줄로 길게 늘어져있었다. 가로등을 하나 둘 지날 때마다 창문에 붙어있던 물방울들은 움직이는 작은 빛덩이가 되었다. 나는 별들이 우리가 가는 길을 비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저 별은 베가성, 아 저 별은 백조자리에서 왔구나. 작은 별을 잔뜩 데리고 왔네. 하나 둘 스쳐가도 우리 앞에는 아직 많은 별이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외롭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내가 지금 우주선에 타고 있다고 생각했다. 구름 너머의 고요한 기류, 손실되지 않고 오롯이 비치는 햇빛. 태양을 직접 쳐다보면 안 된다. 짙은 썬팅이 붙어있는 창문을 통해 왈칵 흘러들어오는 빛을 피하려 눈을 돌린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뿐이다. 긴 여행은 오래도록 고독과 싸우는 과정이다. 이륙할 때의 열정을 잃은 사람들은 하나 둘 지쳐 잠이 든다. 창문을 내다보면 거기 길고 검은 고독이 있다. 나는 절망한다. 내가 산 복권은 결코 당첨되는 법이 없다. 하지만 일단 어둠을 여행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여기저기서 보석처럼 빛나는 별들을 볼 수 있다. 나는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별에 한 번씩 손을 흔들어본다. 여행은 검은 고독을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별과 별 사이를 지나가는 것이다. 나는 내가 지금 상상하는 길이 은지, 아버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할아버지도 한번쯤 지나갔던 적이 있는 별길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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