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의 서재] 절망적 삶을 극복하는 운명의 노래
[교수의 서재] 절망적 삶을 극복하는 운명의 노래
  • 고대신문
  • 승인 2014.11.0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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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여름 명량이라는 영화가 극장가를 강타했다. 이보다 10여 년 앞서 이순신 장군을 그린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는 이미 중장년 독자층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삶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은 일상에서 느끼는 바이지만 이 소설은 삶의 중후장대(重厚長大)함을 절감하게 한다. 그러나 그 진중함이 외부로 요란스럽게 표출되지 않고 내면세계에 머물러 있어 무게감은 깊이를 더한다. 인간의 죽음은 필연적으로 슬픔을 가져오고 구슬픈 울음소리를 동반한다. 특히 한국인은 희로애락이 분명한 민족이라 죽음을 울음으로 망각시켰다. 임진왜란 동안에 매일 사람이 가을날 낙엽처럼 죽는 현실에서 이순신은 감정을 절제하고 수많은 적과 싸워야 했다. 그 적은 바다 건너 일본에서 왔을 뿐만 아니라 임금이 포진한 조정이라는 내부에서도 왔다. 이순신은 일본이라는 바다의 적과 일촉즉발 대치 중인 장수에게 면사첩(免死帖)을 내리는 임금이라는 육지의 적에 의해 고독하게 고립되어 있다. 울음과 공허한 수사이외에는 어떤 대책도 없는 선조는 이순신을 의심하였지만 죽임을 감행하지 못한다. 권력은 무력하기 때문에 사악하였다. 왜적 때문에 장수가 오히려 목숨을 부지하는 16세기 우리의 국내정세는 한국인의 치욕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지정학적 중간자인 한국은 항상 과거를 망각하여 미래에 대비하지 못하고 국난을 반복한다. “..... 신의 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에는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임금의 무력한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왜적이었다. 이순신과 임금 그리고 왜적간의 비극적 삼각구도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절묘하게 엮여 있다. 

  조선시대 중기 선조라는 무능한 임금과 관료가 가져다 준 국가위기와 유비무환의 역사적 교훈만으로 글의 깊은 종심(縱深)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썩고 무력한 현실과 현존하는 죽음사이에서 사지를 찾아 헤매는 장군의 모습은 처절하다. 저자인 김훈은 이 소설로 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필자가 <칼의 노래>를 음미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작품은 현실의 고단한 삶이 무의미하다고 절망하는 젊은이들이 사유의 종심을 확대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또한 중장년층에게는 삶의 치열함을 극복하는 의지를 다지게 할 것이다. 삶은 통속잡지의 표지처럼 가겹지 않다는 명제를 소설은 절감케 한다. 소설은 한국인 특유의 민족경박성과 치졸함을 적나라하게 지적하였다. 적은 외부에 있었으나 조정은 내부에 있는 각자의 적을 소탕하는 데만 주력하였다. 다음은 지도자가 최악의 상황에서 행동해야 할 전략과 자세를 보여준다. 모든 문제의 해결 주체는 바로 타인이 아닌 ‘나“ 다 이순신은 냉정하였다. 그는 내면의 삼엄함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는 삶의 무의미와 죽음의 아수라를 칼의 힘으로 돌파하였다. 부실한 군사를 보유한 장군의 전쟁터는 항상 내가 선택하지 못하고 적의 위치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새로운 차원의 역사소설로서 우리 문학의 한 차원 높은 지평을 열었다. 박완서를 비롯한 7명의 기라성 같은 문인들은 이 작품은 과거 전혀 예고된 적이 없는 새로운 세계의 출현으로서 자발적 유배를 택한 작가의 장인적 정신의 승리이자 오랫동안 반복의 늪 속을 부유하고 있는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고 평가하였다. 이는 결국 이순신의 치열한 기록정신이 환생한 것이다. 모든 번뇌의 응어리는 기록으로 승화되었다. 청년장교 시절에는 함경도 근무기록인 <함경도 일기>를 남겼다. <난중일기> 역시 임진왜란의 처절한 기록이었다.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믿을 것은 현실에 대한 실증적 접근이었다. 학생들이여 적자생존을 명심하자. 적어야 생존한다는 것은 자연이나 인간 모두에게 적용된다. 일독을 권한다.

남성욱
인문대 교수·북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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