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서정가제의 확대 시행을 둘러싸고 여러 논란이 일고 있다. 도서정가제란, 도서(종이책 및 전자책)를 발행하는 출판사가 붙인 가격(정가)을 소비자 구매 가격으로 정하는 가격 고정 제도이다. 현재 영어권을 제외한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일본 등 대부분의 문화 선진국들에서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품종 소량 생산(우리나라의 경우 연간 5만 종 이상의 도서가 발행되고, 도서 1종당 평균 발행부수는 2000부임) 제품인 책이 일반 소비재 상품처럼 가격경쟁을 할 경우 자본력과 할인율이 높은 대형 출판사와 인터넷서점 등만이 살아남게 되어 도서 종류와 유통 경로의 다양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의 일반 소비재 상품과는 반대로, 시장실패 가능성이 매우 높은 책의 가격 경쟁은 출판․독서 생태계 전체에 역기능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책 이외의 정가제 상품으로는 우리나라의 경우 일간신문이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은 신문, 잡지와 음악 CD 등 언론 및 문화콘텐츠 상품에 폭넓게 이를 인정한다. 미국과 영국 등 영어권 국가들의 경우 자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시장으로 삼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여 도서정가제가 없어도 문제가 없다. 반면 대다수의 소수 언어권 국가들에서는 도서정가제의 기반이 없으면 가격경쟁으로 인해 생산·유통 단계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구매자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최근 ‘마지막 기회’, ‘최대 90% 할인’을 내세운 전례 없는 광폭 할인이 인터넷서점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 도서정가제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개정된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의 시행일(2014.11.21)을 앞두고, 발행일로부터 18개월 이상 지난 도서(구간)의 무한정 할인 판매가 가능한 현행법 종료 전까지 산처럼 쌓인 재고를 처분하려는 출판사와 시장(고객) 점유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인터넷서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과도기 현상이다. 현행법은 도서정가제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신간에 총 19%(가격할인 10% + 판매가격의 10% 마일리지)의 할인 한도를, 구간에는 무한대의 할인율을 적용한 ‘무늬만 정가제’이다. 실용서와 초등학습참고서, 도서관 및 국가기관 판매 도서 등은 정가제 대상도 아니다. 그 영향으로 가뜩이나 도서 판매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할인 경쟁이 어려운 중소형 서점들이 70% 넘게 문을 닫았다.

  개정법은 발행일이나 출판 분야와 무관하게 최대 15%까지 할인율(가격할인 최대 10% + 마일리지 등)을 인정하고, 18개월이 지난 책의 재정가 책정(선택), 사회복지시설만 정가 판매 제외 기관으로 인정한 것이 뼈대이다. 이에 대해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2의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아니냐며 책값 인상 효과를 우려하고, 출판․서점업계는 시행령에서 우회적인 추가 할인(경품, 카드사 제휴할인 등 경제상의 이익)을 15% 할인 한도에 담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논란은 개정법 시행 이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각종 우회적 할인의 등장은 새로운 불씨를 만들 우려가 크다. 15% 할인율 한도라는 것도 그 만큼의 거품가격을 매겼다가 그 만큼 할인하도록 유도하는 효과 때문에 정가제 본래의 실효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도서정가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흠결이 없는 정가제를 만드는 법 개정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앞으로의 핵심 과제이다. 프랑스의 ‘반(反)아마존법’, 독일의 출판사 공급률 차별 금지 정가제와 같이 저자, 출판사, 서점, 독자 모두가 보다 만족할 수 있고 출판․독서 생태계의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법리를 체계적으로 담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문고본이나 페이퍼백을 비롯한 저렴한 도서 출판의 활성화, 각종 도서관에서의 도서 구입 확대, 서점 육성, 도서구입비 세제 감면 등으로 소비자의 부담은 줄이면서 공익성이 큰 출판의 생산․유통 기능은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적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책값 논쟁이 아니라 책 내용을 가지고 논쟁하는 수준 높은 사회로 진화하기를 바란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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