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SNS에는 방학을 맞아 여행을 계획하는 학생들의 글이 보인다. 선배, 혹은 전문가가 꼽는 ‘20대에 꼭 해봐야 할 것’에는 항상 여행이 포함된다. 그들이 항상 강조하는 여행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떤 영향을 끼칠까.

▲ 소예니 씨는 2012년 겨울, 4개월 동안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여행했다. 이르크츠크에서 만난 친구들과 바이칼 호수에서 찍은 사진.
  소예니(정경대 정외11) 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역마살이 낀 사람으로 통한다. 예니 씨는 2012년 1월 히말라야 등반에 도전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혼자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싣고 유럽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2014년 3월, 그는 태국 메솟 지역의 국경마을에서 3개월 동안 아동난민을 가르치는 교육봉사를 다녀왔다. 겨울방학을 앞둔 지금, 한 곳에 머무는 게 싫다고 말하는 소예니 씨에게 여행의 여정과 의미를 물었다.

 마지막 고비에서 멈춘 히말라야 등반
  보통 사람들은 히말라야 등반을 동상과 조난, 고산병 등 위험요소가 많은 도전으로 여긴다. 부모의 반대는 없었냐고 묻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제가 여행을 많이 다니게 된 건 지속적인 가내 투쟁의 결과에요. 매일 아침마다 엄마에게 히말라야에 가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럼 엄마는 처음에는 ‘말도 안 돼. 안 돼’ 하세요. 그럼 다음 날 아침에 또 얘기해요. 계속 그렇게 얘기하다 보면 결국 ‘그래. 가라’고 하셨죠. 이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시고 안일하게 준비하면 ‘장난하냐, 제대로 해라’라고 하세요(웃음).”

  예니 씨는 결과적으론 히말라야 등반에 성공하지 못했다. 정상을 앞둔 마지막 베이스캠프인 5000m에서 고산병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사람이 갑자기 고도를 높이면 쇼크가 오기에 하루에 800m씩 고도를 높이면서 1주일에 거쳐 산을 올라갔죠.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사람마다 고산병이 한 번씩은 오는데, 전 마지막 고비인 5000m에서 경험하게 됐죠.” 마지막 베이스캠프에서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린 지 4일 째, 그의 동료들은 자정 무렵 정상을 향해 떠났다. 고산병으로 괴로워하던 그는 혼자 베이스캠프에 남았다. “다 같이 자다가 혼자 남으니까 춥고 외로웠어요. 밤에 12시간을 걸어서 정상을 오를 텐데 고생할 게 뻔하잖아요. 그걸 안 해도 된다는 안도감도 들었고 동시에 굉장히 아쉽기도 했어요.”

 시베리아 횡단열차부터 무작정 유럽까지
▲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만난 예니 씨를 친딸처럼 여겼던 니카 아줌마와 찍은 사진

  등반 후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예니 씨는 홀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 왜 하필 시베리아 횡단열차였냐는 물음에 예니 씨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돈이 없어서요. 돈이 없어서 오래 여행을 하려면 가까운 나라 밖에 못 가는 상황이었는데 그게 러시아였어요.” 기자의 의아해 하는 표정에 예니 씨는 말을 이었다. “배랑 기차를 타면 러시아도 비싸지 않아요.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는 배가 17만원이에요. 거기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는데 모스크바까지 30만원 들어요. 저처럼 중간 도시에 내리지 않으면 6일 정도 걸리죠.”

  예니 씨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설명하기 위해 ‘충격적’이라는 단어를 먼저 꺼냈다. “저는 돈 아끼려고 꼬리칸, 3등석을 예약했는데 말이 6인실이지 통로에 문이 없어서 60인실이라고 보면 돼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예니 씨가 내리려던 첫 도시인 이르크츠크까진 80시간이 걸렸다. 그 오랜 시간동안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묻자 그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처음에는 ‘난 누군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해 고민했는데 생각해도 별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나중엔 아예 생각 안 했어요.” 그는 혼자 생각하기보다 같은 칸의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그때가 10월이었는데 제가 탄 3등석에 저 빼고 거의 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었어요. 임금 노동자들이 1년 내내의 일을 끝내고 겨울에 접어들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저는 러시아 어를 한마디도 못하니까 창밖에 눈 오면 ‘와, 예쁘다’하면서 서로 박수치고(웃음), 간단한 러시아어를 배우기도 했고요. 이런 식으로 80시간을 보냈죠.”

  이 기나긴 여행에서 얻은 것을 묻자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꿈에 대한 회의감이 해결됐죠. 여행 중 만난 러시아 친구가 파울로 코엘료의 ‘알레프’라는 책을 줬어요. 그 책에 ‘Life is the train and not the station’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삶은 변할 수 있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집착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기차 안에서 했던 것 같아요.”

  여행을 다녀와서 변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어디를 갔다 온다고 바뀌는 건 없어요. 물론 시야가 넓어지는 건 맞지만 여행 전의 나와 여행 후의 나가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하지만 여행은 그의 삶에 분명히 영향을 끼쳤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간 뒤 그는 계획에 없던 유럽에 갔다. 그리고 터키 이스탄불에서 꽤 오랜 시간 머물렀다. “이스탄불은 물가도 싸고 국경을 접한 나라도 많아서 굉장히 다양한 친구들이 오래 머물러요. 저는 거기서 저처럼 정치학을 공부하는 오스트리아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에게서 난민캠프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됐어요. 이야기를 들으며 다양한 사람의 경험이 제 가치관에도 영향을 끼쳤죠. 이후 저도 난민캠프에 가게 됐으니까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예니 씨에게 저렴하게 여행하는 방법을 묻자 그는 카우치 서핑을 애용하는 것을 꼽았다. “시베리아 기차 타고 처음 내린 도시에서 만난 친구들이 유럽에 오게 되면 자기 집에서 묵으라고 했어요. 제가 러시아 여행 이후 간 유럽에서 한 달에 생활비로 100만 원 밖에 안 썼는데, 그 이유는 남의 집에 묵어서죠(웃음).” 그는 겨울방학에 여행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덧붙였다. “즐기다 오세요. 돈 잃어버리지 말고 몸 조심히 놀다오셨으면 좋겠어요.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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