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는 여성성을 가지고 있어요. 여성이 아이를 잉태하듯 자연도 생명을 잉태해 생산해내죠.” 정종미(디자인조형학부) 교수는 산수(山水)와 여성이 포괄적으로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본교 박물관에서 4월 12일까지 여성성에 바치는 헌사 4번째 시리즈인 ‘산수 & 여성을 위한 진혼’이 열린다. 이번 개인전에 정 교수는 오색을 이용해 한국의 자연과 여성에 대한 경의를 80여 점의 작품으로 표현했다. “여성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던 조선시대서 희생과 고통을 겪은 여성의 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고 싶었어요. 이번 전시로 여성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 명성황후 전시실에 오색 지화가 깔려있다. 사진│차정규 기자 regular@

기획전시실 1층부터 지하 1층까지 전시장 중앙에는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의 굵은 물줄기가 힘차게 떨어지고 있었다. 산수에 대한 경외로 잔연은 오복을 누려야 한다는 것을 표현한 작품 <오색폭포>다. 정종미 교수는 여성과 산수의 공통점에 대해 말했다. “생명의 잉태는 여성과 산수의 공통점이에요.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산수는 포괄적 개념의 여성이죠.” 정 교수는 서양화에서 낼 수 없는 한국의 미가 있다고 했다. “서양의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분수와 달리 한국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멋이 있어요.” 정 교수는 서양화에서 낼 수 없는 한국의 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한글로 쓰인 ‘어부사시사’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은 우리 재료, 우리 기법으로 산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거에요.”
여성의 혼을 위로하다
전시실 한 켠, 무채색의 치마저고리를 입고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는 여인의 그림이 있었었다. 전시실 바닥엔 감색의 한지, 구겨진 저고리, 회색 빛깔의 속곳들이 흩어져 있었다.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조선 여류 시인 허난설현의 삶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감색의 낡고 발효된 느낌이 허난설현의 삶과 비슷하죠.”
무채색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풍겼던 허난설헌의 전시실과 대조된 오색의 지화(紙花)가 깔린 화려하고 넓은 ‘여성을 위한 진혼-열반’ 전시실엔 일제 침탈로 쓰라린 죽음을 맞은 ‘명성황후’ 작품이 있었다.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부처의 몸을 한 여성들의 초상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정 교수는 이를 여성의 열반이라고 말했다. “한국 여성을 부처의 경지에 올려 경의를 표하고자 했어요. 바닥에 깐 지화는 명성황후의 영혼이 저세상에서 만복을 누리라는 뜻이에요.”
이어 정 교수는 이번 ‘산수 & 여성을 위한 진혼’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은 ‘논개’를 소개했다. 그는 논개를 여성 희생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설명하며, 논개의 죽음을 ‘자유’에 비유했다. 정 교수가 만든 작품 ‘논개’는 바다에 자신의 몸을 던져 죽음을 맞는 논개를 표현했지만, 캔버스를 거꾸로 뒤집어 보면 푸른 창공을 해치고 날아가는 논개의 모습으로 보인다.
정 교수는 ‘논개’의 의미에 대해 말했다. “죽음과 자유, 죽음과 해방이라는 극단적인 개념이 논개에게는 동일시 돼요. 논개의 희생 철학이 오늘날 어떤 의미인지 되짚어 보고 싶었어요.”
여성을 표현한 정종미 교수의 작품의 주재료는 닥나무 종이로 만든 전통 한지다. 정 교수는 한국의 여성성을 나타내기에 적절한 재료라고 설명했다. “부드럽지만 질긴 한지는 한국 여성성의 기질 같아요. 한지를 사용하면 서구화된 삶에 지친 현대인에게 내재돼있는 한국적 그리움을 불러일으켜 감동을 줄 수 있죠. 지난 전시회 때도 한지를 사용했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한국 표준색을 찾기 위한 노력
산수와 여성 작품들 사이에는 지난 3년간 본교 색채연구소에서 연구해 온 성과를 보여 주는 안료와 아교가 전시돼 있었다. 색채연구소는 정종미 교수가 2012년 설립한 연구소로 한국의 표준색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표준색은 조상들이 우리 땅에서 난 재료로 만들고 사용한 색을 의미한다. 정 교수는 한국의 표준색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말했다. “우리나라엔 조상들이 사용한 색을 기록해 놓은 자료가 없어요. 한국의 색을 찾는다면 다양한 산업 분야에 이용할 수 있고 경쟁력도 가질 수 있을 거에요.”
이번 전시회에는 초록색 계열의 뇌록색과 황색이 많이 사용됐다. 바로 색채연구소에서 연구한 색이다. 정 교수는 색채연구소의 목표에 대해서도 말했다. “색채연구소에서 찾은 색이자 단청에 사용되던 초록색 계열의 뇌록색과 황색으로 작품을 만들었어요. 이렇듯 앞으로 한국의 색을 찾는 노력을 계속하고 싶어요.”
20번째 전시회를 연 정종미 교수에게 소회를 묻자 활짝 웃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동안 걸어온 족적을 되돌아볼 수 있었어요. 여성이라는 주제로 작품의 방향을 찾고, 작품에 현시대의 문제를 담아내는 창작 동력을 얻는 계기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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