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삼시세끼’가 MBC ‘무한도전’에 이어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2위를 차지했다. 한국갤럽이 최근에 조사한 결과다. 많은 사람들이 ‘삼시세끼’를 보며 편안함을 느꼈고, 오랜만에 사람 내음을 맡았다고 한다. 프로그램 안에는 크게 웃을만한 것도, 큰 감동으로 우리를 울릴만한 요소도 없었다. 다만, 누구나 그리워했던 그 ‘무언가’가 있었을 뿐이었다.
“대학에 들어와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생겼어요”, “대학생의 인간관계는 너무 피상적이에요”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고등학교 때와 달리 서로 다른 수업을 듣고, 밥 먹는 시간도 달라 약속을 하지 않는 이상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든 게 사실이다. 같이 보낸 시간이 줄다 보니 공통의 관심사가 없어지고, 대화거리도 고갈된다. 이로 인해 서로서로 찾을 땐 ‘그냥 만나고 싶어서’라기 보단 ‘용건이 있어’ 연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대학의 인간관계가 그렇지 뭐’라고 합리화하로 마무리 짓고는 한다.
하지만 용건에 의한 필요가 단순히 이해관계나 요청자의 사심으로만 보는 것은 충분치 않아 보인다. 고대신문의 기자로서 한 기사를 쓸 때, 다섯 명에서 많게는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한다. 연락 전, 취재원이 내가 자신을 필요로 할 때만 찾는다고 느껴 기분 나빠하진 않을까라는 걱정에 빠진다. 가벼운 인터뷰의 경우 10분 정도의 통화로도 가능하지만, 중요한 이야기의 경우 두 세 시간을 마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미안하기도 하고, 피상적 관계를 만들고 있단 생각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필요에 의해 연결된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사가 매개체가 되었지만, 그 기사가 취재원과 내가 갖고 있던 공통점을 발견할 기회를 마련해주었고, 기사가 나온 후에도 가끔 그 때의 감사를 표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쉽게 생각하는 그 필요마저도 우리의 노력으로 충분히 우리 사이의 ‘값진’ 인간다움을 만들 수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용건과 필요에도 사람내음의 출발점이 숨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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