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칼 융은 “죽음은 출생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게 누구이든, 유명인이건, 보통사람이건, 죽음은 그 자체로 그의 가족과 친지뿐 아니라 사회와 때로는 국가와 인류 전체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죽음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가족과 친지 나아가서 사회 전체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는 암 환자와 가족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전체의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의학이 극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는 과거에 비하여 편안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매스컴에서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새로운 항암제를 비롯한 각종 약과 치료 기술에 대한 소식은 마치 어떠한 질병이라도 잘 치료하여 죽음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헛된 희망과 욕망을 부채질하고 있으며, 인공호흡기와 심폐 소생술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어서 불필요하게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기도 한다. 의학의 발달은 삶을 연장 하려는 헛된 희망을 부추겨, 환자에게는 불필요한 고통을 안기게 되고, 가족과 사회에는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부담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오랫동안 평안한 삶을 살아오던 사람이, 질병과 그에 따른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삶은 물론 그의 가족과 친지의 삶까지도 오랫동안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고통으로 망쳐지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중환자실에서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지내다가 돌아가신 가족에 대한 죄책감, 정신적 충격, 경제적 고통으로 방황하는 가족도 수없이 많다. 이는 21세기 첨단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현대의학이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비극이다.
호스피스는 의학은 기계 장치에 의존하는 인위적인 생명연장을 거부하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자는 현대의학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모든 사람이 살아있을 때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편안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돕는 것이 호스피스의 원칙이다. 누구나 오래 살기를 갈망하지만, 어떤 시점에 이르면, 사는 것보다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호스피스의 정신이다. 더불어 행복한 삶을 완성하고, 죄책감, 비탄, 고통, 두려움으로부터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보호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의학이다.  
“죽음을 자연스러운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호스피스 정신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게 마련인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임으로써, 존엄하고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는 것이 호스피스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호스피스 운동은 편안하게 잘 죽도록 남을 돕는 운동이 아니다. 현대의학을 보완하는 대체의학도 아니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인 편안하고 존엄한 죽음을 누구에게나 보장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죄책감,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형태의 현대 의학이다. 호스피스 의학은 역설적이게도 의학 기술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최근에 시작된 새로운 현대의학이다.
자신과 가족 친지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호스피스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공부해보고, 봉사활동에도 참여할 것을 권한다.

신상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내과 교수
(전)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호스피스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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