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했다. 무거운 몸을 숙여 스케이트 줄을 힘껏 잡아당긴다. 발목이 아플 정도로 스케이트를 조이고 빙판에 발을 내디딘다. 부드럽게 나아가는 느낌이 좋았다. 친구들과 함께 아이스링크장에 갔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친구들은 내 모습을 보며 연신 놀라워했다. “이야, 김태언 진짜 잘 타는데!”

▲ 사진 | 서동재 기자 awe@

스케이트를 좋아하는 만큼 이번에는 빙판 위에서 색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문득 떠오른 게 아이스하키였다. 왠지 모르게 자신이 있었다. 곧바로 여러 곳에 연락했다. 아마추어 아이스하키팀 ‘아이언비’, ‘모노 플레인’, ‘몬스터’, 본교 내 ‘티그리스’까지. 그들은 모두 흔쾌히 나의 체험을 허락했다. 그렇게 총 4주간, 5번에 걸쳐 아이스하키를 체험했다.

 

8월 12일 오후 11시 깜깜한 밤. 광운대학교 아이스링크장은 시끄럽다. 쉬리릭. 하키 날이 얼음에 긁혀 여기저기 흩뿌려진다. 쿵. 퍽이 벽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아이스링크장 안에는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저마다 스케이팅 연습을 하고 퍽을 치며 웃고 있었다. 그 역동적인 분위기에 신이 났다. 신나는 감정은 아이스하키용품들을 보면서 흥분되기 시작했다. ‘내 생애 이런 무장을 해볼 때도 있구나!’ 하며 용품 가방을 열었다. 아이스하키를 하는 데 필요한 용품은 생각보다 많았다. 무릎부터 종아리까지 보호해주는 신가드, 가슴팍과 어깨를 보호하는 프로딕, 팔꿈치와 손목을 위한 엘보우, 그리고 헬멧과 스케이트까지. 입는 데만 30분 남짓 소요됐다. 상체만 보더라도 속옷, 프로딕, 엘보우, 겉옷까지 무려 4겹이나 입었다. 이렇게 보호 장비가 많다는 건 그만큼 운동이 과격하다는 뜻일까. 약간은 두려운 마음이 생겼지만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여장군 같았다. 떡 벌어진 어깨, 2배는 커진 허리둘레. 움직이는 것이 낯설었고 무겁기만 한 무장이 불편했다.

 

가장 먼저 연락이 닿았던 광운대 아이언비에서 초보반에 들어갔던 나는 스케이팅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그냥 미끄러지듯이 타는 것이 잘 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초반부터 당황했다. 처음 배운 스케이팅은 모델 워킹처럼 발을 엇갈리게 해 앞으로 나아가는 크로스오버 스케이팅이었다. 내 발에 내가 걸려 휘청거리기도 했고, 중심을 못 잡아 비틀대기 일쑤였다. ‘난 스케이트 잘 타’라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한참을 스케이팅만 연습하다 드디어 스틱을 사용하게 됐다. 두 손으로 스틱을 쥐고 퍽을 링크장 끝에서 끝으로 운반했다. 퍽은 스틱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스틱으로 퍽을 칠 때면 헛스윙만 날렸다. 가볍다고 생각했던 스틱은 어느샌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고, 1시간 반 동안 계속해서 팔이 저려왔다. 연습이 모두 끝나고 스케이트를 벗자, 엄지발가락이 빨갛게 부어있었다. 발톱은 금방이라도 빠질 듯이 아파왔다. 그날 저녁 잠을 자다가 팔다리가 저릿해 잠에서 깼다. 그 후로도 ‘삭신이 쑤신다’는 말을 몸소 느낀 일주일이 이어졌다.

 

한 주 한 주 스케이팅에 조금씩 익숙해지며 어느새 넘어지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런데 모노플레인에서 연습할 때 장민아 부주장은 내게 넘어져 보라고 권했다. 무조건 앞으로, 다리부터 전신이 바닥에 닿게 엎어지라고 가르쳤다. ‘왜 부끄럽게 엎어지라고 하지?’라고 생각할 때, 발을 헛디뎌 뒤로 넘어졌다. 무장하지 않은 등과 엉덩이를 바닥에 부딪히니 타격이 컸다. 꼬리뼈부터 허리까지 통증이 심했다. ‘잘 넘어지는 법’을 배우는 게 왜 중요한지 바로 깨달았다. 자만하지 않기 위해 아픈 꼬리뼈를 부여잡고 오기로 다른 선수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마치 운동화를 신고 뛰는 듯 자유자재로 빙판에서 자기를 다스리는 그들을 보며 나도 더 열심히 움직였고, 스틱을 더 많이 휘둘렀다.

땀이 주룩주룩 나는데 이날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하키에 집중했다. 점점 이 운동에 매력을 느끼고 빠져드는 나 스스로가 신기했다. 함께 아이스하키를 탔던 직장인 이주희(여·26) 씨도 옆에서 “아이스하키는 팀 훈련이라 기량이 발전하는 것을 보면 보람차고 배울 것이 많다”며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몇 번의 연습을 바탕으로 사람들과 팀을 나눠 경기를 해보기도 했다. 꽤 많이 연습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엉성했다. 정말 순식간에 움직이는 퍽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눈이 따라가질 못했다. 패스에 패스가 이어져 허둥지둥하며 공중에 스틱을 휘두를 뿐이었다. 그때 퍽이 내게 날아왔다.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면서 배웠던 것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우왕좌왕했다. 그런 상황은 몇 번이나 반복됐다. 그때마다 퍽을 한 번이라도 더 차지하고 싶어 열심히 쫓아다녔다. 어느 순간 사람들의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경기를 뛰면서 가장 부러웠던 건 스탑을 잘하는 선수였다. 나는 앞으로 갈 줄만 알지 어떻게 멈추는지를 몰라 벽과 부딪히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번 부딪히고 나면 속도를 내려고 해도 체력이 떨어져 힘들기만 할 뿐이었다. 퍽 한 번 쳐보겠다고 앞으로 돌진하다가 사람을 보지 못하고 심하게 부딪혀 그대로 고꾸라지기도 했다. 무릎은 물론 가슴, 머리도 빙판에 박았다. 잠깐이었지만 가슴이 짓눌린 느낌을 받았고, 정신은 여전히 멍했다. 아마추어 선수단에서도 부딪히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선수들은 얼마나 많은 위험요소를 무릅쓰고 뛰는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벤치에 앉아있는 동안에도 언제 어디서 나와 교체를 원할지 모르기 때문에 정신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선수들은 수시로 교체를 하며 체력을 보충했다. 내가 본 경기장의 모습은 그야말로 생동감 그 자체였다.

 

3분 정도 경기에 임했다. 숨이 차기 시작했고, 땀이 났다. ‘3분밖에 안 뛰었는데 정말 저질 체력이구나’, ‘아이스링크장에서 그냥 타고 노는 것과는 정말 다르다.’ 오만가지 생각이 났다. 점점 지쳐가는 내 모습을 보며 ‘패스를 잘 못 하면 팀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정말 못하는데 퍽을 쳐도 되는 걸까?’ 등의 생각은 자꾸 내 자신감을 떨어뜨렸다. 그때 99학번 선배가 건넨 한마디가 나를 위로했다. “실제로 아이스하키는 체력 소모가 커 선수교체가 빠른 거로 유명하단다. 배운지 얼마 안 됐는데 이렇게 왔다 갔다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했어.”

5번의 아이스하키 경험으로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의 모습은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주어진 일만 하며 사는 내게 동기부여가 됐다. 땀 냄새나는 옷들, 닳아진 글러브가 그들의 열정을 보여주는 듯했다. 1학년 때부터 티그리스에서 활동했다는 최정민 부주장은 “아이스하키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이스하키는 아직 사람들에게 생소한 종목이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다. 경기를 직접 한 번이라도 보면, 아이스하키의 매력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 일 거라고. 1시간 동안 하얀 빙판 위에서 선수들이 보이는 날렵하고도 강렬한 움직임에 분명 매료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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