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생이 새내기로 대학에 입학한 2015년이 저물어 간다. 15학번이 고대생이 될 동안 96년도에 개업한 정경대 후문 앞 ‘25시 당구장’과 당구장 주인 김비룡(남·53) 씨도 이 자리에서 세월을 보냈다. 요즘 보기 힘든 뚱뚱한 브라운관 모니터는 20년 동안 데스크에서 요금을 계산하고 있다. 이 당구장에서 가장 어린, 1살 된 강아지 ‘초크’는 손님이 오면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왕왕 짖어 반긴다. 당구공이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는 20년 동안 정대 후문 앞을 울렸다.

김비룡 씨는 파란 천으로 쌓인 당구대를 매일 닦는다.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많은 날엔 당구대 천이 먼지를 잔뜩 빨아들여 당구공이 정확하게 굴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당구장 안 모든 당구대엔 공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놀러 오는 학생들이 바로 당구를 치도록 한 작은 배려다. 다만 음료는 셀프다. “서비스하면 손님들이 불편해해요. 당구장은 당구대와 공만 괜찮으면 손님들이 오게 돼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 사진┃서동재 기자 awe@

무뚝뚝함 뒤에 숨은 손님을 향한 배려는 당구 애호가들을 끌어 당긴다. 사장님과 커피 한 잔 마시러 왔다는 본교 직원은 자연스럽게 데스크 앞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7년쯤 된, 개인 큐를 두 개나 가진 단골이자 500점이 넘는 고수다. 그에게 이곳을 찾는 이유를 묻자 “깔끔하잖아요”란 대답이 돌아왔다. “고수는 다이(당구대) 상태만 보면 그 당구장이 좋다 나쁘다 알죠. 사장님이 다이, 큐, 다마(공) 관리는 기가 막히게 하셔요. 치기 좋으니까, 그 맛에 오는 거죠.”

강산이 두 번 바뀐 세월 동안 김비룡 씨는 매년 말에 당구 대회를 열었다. 18회까지 대회를 하면서 많게는 60여 명이 대회에서 실력을 겨뤘다. 김비룡 씨가 직접 가르친 학생들도 대회에 참가해 실력을 뽐냈다. 300점 이상의 실력을 갖춘 그는 10회 이상 오는 학생에겐 원한다면 무료로 당구를 가르쳐 준다. 그에게 당구를 배운 2000년대 이전 학번 학생들은 아직도 일주일에 서너 번 찾아온다 했다. 김비룡 씨는 새로 만든 페이스북 계정에 가득 차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자랑하며 그 애정을 표현했다. 당구가 예의가 엄격한 스포츠인 만큼 그는 예의 바른 학생들을 특히 기억했다. “친한 손님, 안 친한 손님 딱히 구분하진 않아요. 그저 오면 반갑고, 헤어지면 언젠가 다시 한 번 와줬으면 하는 거죠. 그래도 예의 바른 친구들이 아무래도 기억에 남죠.”

사장이 자리에 없을 때면 대신 자리를 지킨 사모 문소윤(여·54) 씨는 당구장을 찾는 남학생의 연애 상담을 전담했다. 그런 학생이 아내를 데려오고, 교우회관에서 결혼식을 하면 찾아가 축하해줬다. 문소윤 씨는 의무감에 이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애들한테 뭘 해준 건 아니지만, 다시 찾아올 자리를 남겨주기 위해 오래 있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장사가 예전만큼은 안 되지만, 이 공간은 추억이잖아요.”

김비룡 씨는 ‘25시 당구장’인 만큼 25년은 채워보고 그다음을 생각하겠다는 농담어린 말을 건넸다. PC방 같은 새로운 오락문화가 생기고, 취업 준비에 바쁜 학생들이 당구장을 찾지 않으면서 손님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변화를 담담히 받아 들였다. 하지만 당구대를 매일 닦는 그의 손길은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는 듯 했다. 당구장 사장은 당구공이 정확하게 굴러가도록 준비하는 사람임을, 15학번 새내기가 졸업하고 나서까지도 그는 몸소 보여주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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