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이 얼굴도 화사해 보이는데 보라색 옷을 입고 와서 칙칙해 보이면 어째.” 불쑥 ‘사진 찍으러왔다’며 법대후문에 있는 ‘호랭이 밥그릇’에 얼굴을 들이민 기자를 향한 말에는 약간의 원망이 섞인 듯 했다. 나이 들어도 여자는 다 같은 마음이라며 다급하게 용모를 가꾸는 최정희(여·60) 사장에게서 영락없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고려대와 동고동락하며 17년의 역사를 함께하고 있는 ‘호랭이 밥그릇’ 최정희 사장은 학생들에게 늘 친근하게 대한다.

▲ 사진|유민지 기자 you@

1998년 3월, 최정희 사장이 안암에서 밥집을 차린 것은 고려대에 입학한 조카의 ‘밥 먹을 곳이 마땅치 않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 때 주변에 밥집이 몇 개 없었지. 조카도 그렇지만 학생들이 밥 먹을 공간이 많이 없었어. 그래서 시작했지.” 고려대의 상징인 호랑이를 넣어 ‘호랭이 밥그릇이 어떻겠냐’는 학생들의 제안에 간판을 내걸게 됐다. 그렇게 지어진 이름은 어느덧 학생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는 존재가 됐다. 졸업 후에도 안암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줌마가 그립다’며 ‘호랭이 밥그릇’으로 향하는 학생들이 많다. 직장을 다니는 학생이 가끔 얼굴을 보러 오는가 하면 매일같이 와서 밥을 먹던 학생이 애인이 생겼다며 여자 친구 손을 잡고 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멀리 떠나보낸 자식 보는 기분이라 참 좋지. 나를 엄마로 생각해주니 고맙기도 하고.”

최 사장은 학생들의 고민해결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취업시기가 되면 넥타이를 못 매겠다며 찾아온 학생에겐 손수 넥타이를 매주기도 하고 면접스타일 좀 봐달라며 찾아온 학생에게 ‘이것을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며 조언해주기도 했다. 그동안 감사했다며 학생이 손에 주스 한 상자를 들고 오면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에 최 사장은 크나큰 보람을 느꼈다. 학생들과 있었던 추억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호랭이 밥그릇’은 학생 뿐 아니라 교수, 교직원을 위한 밥그릇이 되기도 했다. 법대에서 수업을 하던 한 교수님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데리고 밥을 먹으러 오는가 하면, 아침을 먹기 위해 매일 이곳을 찾는 교수도 있다. 10년 째 단골손님이자, 주변을 지나칠 때마다 최 사장과 악수를 잊지 않는 이기수 전 총장도 그 중 한 명이다. 이 모든 이들이 최 사장에게 손님이라기 보단 이웃이나 다름없다. ‘배고플 때 생각나는 집밥’, ‘집 같이 편안한 쉼터’로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는 최정희 사장. 그는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호랭이’에서 고대와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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