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흥행하는 드라마 ‘응답하라1988’을 보면서 정이 넘치는 골목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 동네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안락함이 부러웠다. 새삼 대학시절, 내 추억을 간직한 장소를 갖고 싶었다. 하루 살기 바빠 힘이 들 때 ‘그땐 좋았지’하며 위로해줄 수 있는 골목. 고대에도 그런 정 넘치는 골목이 있다.

정문 건너편 골목에 묵묵히 자리 잡은 ‘대학식당’은 우렁쌈밥으로 대학생들의 허기를 달래준다. 친구와 몇 마디 나누는 사이 김형기(남·60) 사장은 검은 뚝배기를 내온다. 자작하니 끓여져 나오는 강된장 위엔 우렁이가 덮여 있다. 강된장은 알싸하면서도 짠맛에 빼꼼 혀를 내밀게 한다. 짠맛의 이유는 이 집 재래된장에 있다. 김 사장의 동생과 지인의 손맛이 담긴 재래된장은 짠맛 속에 구수함을 품고 있다. 5년 동안 숙성시킨 전통된장에 버무린 청양고추는 혀를 꼬집는 듯하다.

이 집 강된장은 국물 한 방울 없다. 재료를 끓이기보단 볶기 때문이다. 육수에 양념을 넣고 끓이는 기본 방식 대신, 약간의 물에 양념과 소고기, 돼지고기, 감자, 호박, 양파, 마늘을 넣고 볶는다. 채소에서 나오는 수분이 육수를 대신해 일반 강된장보다는 되직하다.

하지만 진득한 된장의 생김새에 비해 간이 세지 않다. 우렁강된장은 자극적인 것을 싫어하는 사람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여기에 가치를 더하는 것이 ‘우렁이’이다. 된장과 비슷한 비율로, 아낌없이 들어간 우렁이가 강된장의 염도를 낮춘다. 상추와 깻잎 위에 씨알 굵은 우렁이를 올리고 크게 한 입 채우면 짠맛이 줄고 구수함이 산다.

꼬들꼬들한 우렁이는 강된장만 먹을 때 느껴지는 심심함을 없앤다. 씹을수록 더 씹어보고 싶은 느낌이다. 쫀득함에 호기심이 생기고, 씹을수록 오묘하게 퍼지는 고소함은 즐거움을 더한다. 우렁이는 논산시 강경읍 우렁이농장에서 한 달에 두세 번 직접 공수해온다. 이 씹는 즐거움에 선뜻 삼키지 못하고, 질겅질겅 계속 입안에 남겨놓는다. 간간하게 간이 밴 우렁강된장에 밥을 슥슥 비비면 어느새 한 그릇 뚝딱이다. 이것이야말로 다이어트 중이라면 절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밥도둑이다.

우렁쌈밥정식은 우렁강된장 외에도 명품 조연들이 있다. 가게에서 매일 직접 손질하는 상추, 깻잎, 배추, 치커리는 바닥이 보일 때 쯤 재빨리 채워진다. 강된장과 함께 먹는 매콤한 제육볶음, 우렁 한 움큼이 들어간 된장국도 야무지게 감초 역할을 해낸다.

최신 음악이 나오고 사람 북적한 음식점을 다니다가 이 집을 보면 한산하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문득 이 한산함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릇이 비워질 때쯤 건네는 요구르트 한 개, 마음껏 떠다 먹는 반찬과 밥. 가게 이름처럼 대학가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집이다. 정신없었던 오늘 하루, 배라도 채우고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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