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를 그리다. 캘리그라피의 의미이다. 필명 ‘글입다’로 활동 중인 안동혁(미디어11) 씨의 캘리그라피는 그림보다는 서예의 느낌을 풍긴다. 특유의 꺾이는 글씨체와 적당히 조절된 잉크의 농담이 정갈하다. 하지만 글씨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유쾌하다. 실제로 만난 안 씨도 그랬다. 단정한 감색 스웨터를 입은 그의 모습은 그의 글씨처럼 정갈했지만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 필명 '글입다'로 활동하는 안동혁(미디어11) 씨가 캘리그라피의 매력을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 김주성 기자


안동혁 씨가 ‘글입다’로 유명해진 것은 직접 쓴 ‘학과별 고백법’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리면서부터다. 예를 들면 신문방송학과 학생은 ‘내 삶의 헤드라인은 모두 너로 채웠다’는 말로 고백한다는 식이다. 안 씨의 작품은 유명세를 타면서 피키캐스트 등에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 ‘글입다’는 1만2000여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안 씨의 페이지에는 많은 캘리그라피 작품들이 있다. 작년 2학기 수강한 ‘PR문장실습’의 과제로 개설한 페이지였지만 꾸준히 작품을 게시하다 보니 지금은 그 수가 수백 개에 이른다. 작품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감성적인 글귀들도 있지만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도 많다. 최근 올라온 ‘엄마, 나 강의계획서 뽑아놓고 두고 왔는데 좀 갖다 줄 수 있어?’같은 글귀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갓 입학한 새내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 웃음 짓게 한다. 인기리에 방영됐던 ‘응답하라 1988’같은 드라마 명대사나 ‘마마무’같은 아이돌의 노래가사 등도 캘리그라피의 소재가 된다. 안 씨는 “사람들이 예쁜 글씨로 쓰는 것은 대부분은 연애 이야기나 명언이었다”며 “꼭 감성적이고 교훈적인 것만 주제로 다뤄야 하나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글씨가 화려한 그림보다 정갈한 서예 같은 느낌을 내는 데는 그가 쓰는 ‘딥펜(dip pen)'의 역할이 크다. 딥펜은 잉크를 찍어 글씨를 쓰는 잉크펜이다. 딥펜보다 대중적으로 쓰이는 붓펜은 획을 자유롭게 그을 수 있어 화려하고 작가의 색을 짙게 드러낸다. 하지만 딥펜을 쓰면 획의 각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글씨 자체가 망가져 딥펜을 주도구로 하는 캘리그라퍼는 많지 않다. 안동혁 씨는 “딥펜은 자유도가 낮아 글씨를 써도 그냥 글씨인지 캘리그라피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매력이라고 했다. 안 씨는 “딥펜은 자유도가 붓펜에 비해서 낮은 반면 정갈하고 깔끔한 느낌이 있다”며 “미세한 필압이나 곡선이 글씨의 느낌 전체를 바꾸는데 그런 섬세함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안 씨의 글씨에는 그만의 색이 잘 녹아 있다. 자음 하나, 모음 하나의 굵기와 크기까지 그의 정성스런 손길이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에게 자신만의 특징을 가진 캘리그라퍼가 되는 방법을 물으니 임서(臨書)를 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임서(臨書)는 다른 사람의 글씨를 모방해서 쓰는 것을 말한다. 그는 “좋아하는 작가의 글씨를 따라 쓰면서 글자 하나하나를 쪼개 분석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며 “계속 연습하다 보면 모방을 벗어나 본인 특유의 글씨체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안동혁 씨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글씨를 좋아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안 씨는 “특별한 철학을 가지고 캘리그라피로 세상을 바꾸거나 사람들을 치유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며 “사람들이 보고 싶은 콘텐츠를 만들면서 내 색을 내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안 씨는 작품을 변형하고 출처를 표기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 공유하는 것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다.

안 씨의 필명 ‘글입다’는 ‘글을 입는다’와 ‘그립다’ 두 가지의 뜻을 가진다. 유쾌한 글에 감성적인 글씨체를 입히는 방식은 그의 독특한 색깔이다. 그는 졸업을 하고 유학을 가더라도 ‘글입다’ 페이지를 계속 운영할 생각이다. 앞으로 그가 입을 글들이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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