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때는 과외 하는 학생들이 부러웠고, 대학생이 되니 부모님 직장에서 등록금을 지원받는 학생들, 심지어 괜찮은 차를 끌고 다니는 학생들이 부러웠어요. 왜 나는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 한탄도 많이 했죠.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보니 걸림돌이 디딤돌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첫 수능에서 국어영역을 4등급 받았기에 역설적으로 베스트셀러 국어 참고서를 쓸 수 있었고,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에 학과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죠.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지금의 어려움이 상처로만 남지 않을 것이고, 또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대학생이, 그것도 국어교육학과나 국문과도 아닌 대학생이 만든 국어 문제집이 7년 동안 15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가 됐다. <국어의 기술(개정 前 언어의 기술)>의 저자 이해황(물리치료학과 06학번) 씨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에게도 수많은 역경이 있었다. 또, 그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강인한 멘탈이 있었다.

▲ 이해황(물리치료학과 06학번) 씨가 자신의 책 <국어의 기술>을 들고 미소짓고 있다. 사진제공 | 본인

이해황 씨는 보건과학대학이 본교 단과대학으로 통합된 2006년에 입학한 보과대 1회 신입생이다. 삼수 끝에 대학에 입학한 그는 나이 어린 선배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로 보과대의 물리치료학과를 선택했다.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한 대학 생활은 ‘수석 졸업’으로 마무리됐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전액 성적장학금을 받기 위해 시험 기간마다 정말 피 말리게 공부했어요. 그러다 보니 수석으로 졸업했죠. 자랑스러운 기록이자 4년 동안 등록금 걱정에 시달렸던 흔적이에요.” 어려웠던 집안 형편으로 그에게 동아리는커녕 동기들과의 술자리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남들이 새내기 생활을 즐길 때, 그는 자신과 같이 집안 형편 때문에 학원이나 과외를 꿈꾸지 못하는 학생들이 독학할 수 있는 책을 만들자고 결심했다.

“처음 본 수능에서 언어 4등급을 받았어요. 그런데 다음 해 수능에서 언어 상위 1%가 됐어요. 1년 동안 기출문제를 반복해서 풀며 여러 가지를 깨달았거든요. 왜 이런 내용을 가르쳐주는 책은 없을까 늘 안타까웠어요.” 그는 수능 공부를 하며 깨달은 것들을 입시사이트에 올리곤 했다. 그런데 그 자료에 대한 반응이 엄청났다. 재수생, 삼수생 신분의 학생이 만든 자료를 수만 명이 읽었고, 많은 댓글이 달렸다. 국어 과외를 문의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집안 형편상 돈이 필요했기에 그는 수험생 신분으로 수험생 과외를 했다. 그렇게 여러 과외를 통해 체계적으로 정리된 내용들이 모여 초기 <언어의 기술>이 완성됐다.


지금은 전국 어느 서점에서나 이 책을 찾아볼 수 있지만, 처음 출판하기 전까지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대학교 1학년 말, 그는 <언어의 기술> 1권 분량을 들고 한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 반응은 ‘당연히’ 거절이었다. 대학생에, 생뚱맞은 전공에, 일반 문제집과 너무 다른 책 내용까지. 첩첩산중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쓴 책에 대한 자신감 하나로 대범하게 1인 출판을 시작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며 구청에서 출판사를 등록하고, 고대 앞 사거리 쪽 ‘프린트매니아’에서 책을 30부 인쇄했다. 구색을 갖추기 위해 한국문헌번호센터에서 바코드를 다운받기도 했다. “인터넷을 통해 판매를 시작했어요. 첫 30부가 다 판매돼 또 30부. 그다음에 50부. 또 100부. 그러다 매번 300부씩 인쇄하기 시작했죠. 별 관심 없으시던 ‘프린트매니아’ 사장님이 매주 100부씩 인쇄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도대체 무슨 책이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교보문고에도 책을 넣었고, 그렇게 1년 반 동안 1만 5000부가 판매됐죠. 정말 놀랐어요.”

책이 입소문을 타자 몇몇 출판사에서는 이해황 씨에게 정식으로 출간제의를 했다. 그중 한 곳과 계약해 3학년 말이던 2008년 12월 정식으로 <언어의 기술>이 출간됐다. 반응은 뜨거웠다. 첫해에만 15만 부가 판매됐고, 온라인 서점에서 수능 전체 서적 1위를 차지했다. “처음에는 정말 기뻤죠. 기적이었으니까요. 출판사에서 안 될 거라고 거절당했던 책이, 학생들에게 이렇게 많이 인정받으니 뿌듯했고요.” 그는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그의 책으로 공부하고 힘을 얻었다고 할 때 큰 위로와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6학년도 수능이 끝나고 한 학생은 그에게 ‘책 속에서 저를 도와주시려 하는 따뜻하고 친절하신 선생님의 모습을 느꼈다’며 ‘가고 싶었던 대학에 진학하도록, 또 제게 꿈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책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기껏해야 대입 수험서일 뿐인 자신의 책에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제 책은 경쟁을 뚫고 한정된 의자에 앉게 해줄 수는 있어도 의자 자체를 만들어내지는 못해요. 기형적인 입시 구조에 기생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 때 괴로워요.”


이해황 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지난날을 기억하며 매년 1000만 원씩 기부 활동을 한다. 그는 어려웠던 시절 자신을 도와줬던 한 출판사 대표로 인해 기부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수험생임에도 과외를 하며 생활비를 보태는 제 사정을 알게 된 한 출판사 대표님께서 매달 10만 원과 교사용 수험서를 지원해 주셨어요. 너무 힘들어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고 절망할 때였는데 정말 큰 위로와 힘이 됐죠. 나중에 돈을 갚으러 갔을 때, 그분께서 한사코 받지 않으시며 더 큰 인재가 돼 베풀라고 하셨어요. 이게 기부를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됐죠.”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가 자신과 같이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알바를 병행하며 학업을 이어 가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다는 말이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 축사에서 한 말이기도 하다. 인생의 점들이 어떤 식으로든 미래에 연결될 것이라는 신념이 힘들었던 수험생 시절부터 책 출간까지 그를 버티게 한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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