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같은 이야기다. 레스터시티가 창단 132년 만에 EPL(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884년 창단한 레스터시티는 1부 리그와 2부 리그를 오가던, 한 마디로 그저 그런 팀이었다. 이번 시즌 도박사들이 예측한 레스터시티의 우승 확률은 0.02%였고, 우승 시 배당률은 5000배였다. 3만원만 걸면 1억 5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시즌 시작 전까지 레스터시티의 우승을 예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레스터시티는 묵묵히 승점을 쌓아갔다. ‘이제 곧 내려가겠지’라고 예상했던 전문가들도 레스터시티의 승리를 지켜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언더독의 반란은 성공으로 끝났고, 레스터시티 동화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레스터시티의 우승은 여러 요인들이 복합된 결과다. 라니에리 감독의 전술 때문일 수도, 제이미 바디와 마레즈의 재발견일수도, 530년 만에 발견돼 장례가 치러진 리처드 3세의 은총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특히 주목할 것은 EPL의 자본분배시스템이다. 1992년 출범한 EPL은 리그의 근본 원리를 ‘승부의 불확실성’으로 잡았다. 즉, 꼴찌가 1등을 잡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EPL 사무국은 TV 중계권료의 50%를 각 팀에 공동분배 한다. 그리고 나머지 25%는 순위에 따라서, 25%는 방송횟수에 비례해 분배한다. 때문에 EPL에선 1위와 꼴찌의 중계권료 수입 차가 크지 않다. 뿐만 아니라 1부 리그인 EPL에서 2부 리그인 챔피언십으로 강등되면 강등팀에 ‘낙하산 보수’라는 보조금을 지원한다. 따라서 약팀들도 얼마든지 좋은 선수를 영입할 수 있고, 강등되더라도 재기할 기회가 마련돼 있다. EPL이 다른 리그보다 특히 더 치열한 이유이고, 레스터시티 같은 만년 하위 팀이 우승을 할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선 이러한 착한 자본분배시스템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가진 자는 더 가지고 없는 자는 있는 것 마저 빼앗긴다. 대기업은 모든 걸 흡수하며 몸집을 부풀려가고 중소기업은 그들의 수발을 드는 존재로 전락한다. 자본은 한 곳으로 집중되고 나머지 부분은 병들어 간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레스터시티의 우승이 가능했던 것은 중하위팀도 언제든지 치고 올라 올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서다. 약팀이라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을 적절히 분배해 스스로 경쟁력을 가지도록 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것은 결과론이다. 원래 축구공은 둥글고, 언제든 이변이 일어날 수 있다. 앞으로 몇 시즌 동안 강등권을 헤매던 팀이 우승을 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레스터시티의 우승은 그 자체로 감동을 줬고, 희망을 보여줬다. 언제든지 새로운 동화가 쓰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동화의 주인공은 누구나 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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